최상태 목사(화평교회)

100회 총회에서도 ‘목회자 윤리강령’이 또 기각되고 말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2년 전 98회 총회시 ‘목회자 윤리강령’ 채택 여부를 놓고 한참 결의하려고 하는 순간 어느 총대가 나와서 반대의견을 발의하였다. 그 내용인 즉, 자신은 중형교회에서 현재 목회하고 있는데 장로 한 분이 몇 년마다 고급 승용차를 새롭게 구입해 주는데 윤리강령이 채택되면 목회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안건에 대하여 총회장이 허락 여부를 물으니 총대들은 기각시키는 것을 ‘허락’이라고 답하였다. 이번 100회 총회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몇몇 노회에서 ‘목회자 윤리강령’제정에 대하여 헌의안이 상정되었는데 정치부에서는 기각하는 것을 본회에 보고하였다. 헌의한 노회 총대들이 오늘의 시대 상황에서 이번 만큼은 반드시 윤리강령이 채택되어야 함을 호소했으나 총회장은 기념 선언문에 윤리강령 내용이 제시되어 있으니 그것으로 대체하고 기각시키자고 제의 하였다. 결국 ‘허락’하는 것으로 결의되고 끝이 났다.

<왜, 도덕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달은 “윤리·도덕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실 성경보다 더 큰 법이 어디 있으며 삶의 법칙과 규범이 되는 강령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하면 따로 윤리 강령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윤리강령은 채택되어야 했다.

첫째, 교단의 많은 목회자들이 삶의 원리와 기본이 되는 성경과 헌법을 충실히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대적 요구이다. 목회자의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윤리 강령은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하고 신실하고 정직하게 살겠다는 목회자의 몸부림의 표현이며 새 결단과 의지를 보여주는 선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윤리강령이 필요하다. 생각해보자, 한국교회 지도자들 안에서 봇물 터지듯이 일어나고 있는 각종 비리 문제는 우리 교단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장자교단이라 목회자의 숫자가 많아서 그런가?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그동안 교단 내에 일어났던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 아이티 구호헌금 전용 및 횡령 사건, 성적 비행, 총신대학에 관련된 모든 사항 등 모두가 윤리 도덕에 관련된 것들이다. 기본이 잘못된 곳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가 외적인 면에서 장자교단이라고 자부하지만 모든 부정과 비리 문제에서도 부끄럽지만 장자교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 교단 목회자들은 영성만 부르짖지 말고 인성을 갖추자. 하나님과 직통하는 수직적 관계만 강조하지 말고 사람과의 바른 관계인 수평적 관계 증대를 위하여 노력하자.

거룩성은 총회, 노회, 교회의 생명이며 그리스도인의 표지이다. 목회자로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윤리도덕을 지키지 않으면서 ‘구원 받았다, 중생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타종교를 향해 ‘이단이다! 이교이다!’라고 정죄하면 그 말이 무슨 구속력이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교단이 결코 어두운 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회를 참석하면서 우리 교단 안에 이 시대의 남은 자 같은 신실한 사람들, 개혁과 변화의 의지가 있는 여러 총대들이 있는 것을 목도하고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보기도 했다.

비록 100회 총회에서도 ‘목회자 윤리 강령’이 채택되지 않았지만 성령 안에서 윤리와 거룩을 생명처럼 여기며 거룩성 회복에 목회를 걸고 이 시대 남은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교단 목회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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