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석 목사(남산기독교문화운동본부 이사장)

역할을 감당하는 사회적 도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과 목적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필요적인 존재’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혼선 없이 어떻게 구분하여 잘 대처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 두 가지 가치의 혼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 가운데도 나타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사역에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곳으로 착각했다. 자신들의 민족과 예루살렘 없이, 하나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교만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태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돌들을 들어서라도 찬양받으실 수 있는 하나님에게 예루살렘은 그저 필수가 아닌 필요한 존재였을 뿐이다. 참된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지 못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게 내린 징벌은 멸망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교단들과 총회를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착각과 교만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교단과 총회가 영원히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을 하나님의 필수적인 조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시대적 변화 앞에 나태하며 대안과 미래가 없는 소모적 논쟁을 일삼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필요와 요구에 부합한 유용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목마름 없이는 한국교회의 미래도 예루살렘과 별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이 가을 우리를 채찍질 해주기를 바란다.

14일부터 한국 장로교회를 비롯해 여러 교단들이 총회를 시작했다. 한국교회와 성도, 하나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각 교단 총회가 내부적 의제에만  발이 묶여 지루한 논쟁의 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장의 동력을 잃고 침체기에 들어선 한국교회와 정체된 목회현장, 설자리를 잃어가는 젊은 사역자들에게 총회는 이 세대에 주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분별해 내야 한다.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위한 전환점이 되도록 다음세대를 위한 거시적 안목과 비전을 제시해 주는 지도자 집단으로 변모해야 한다.

또한 최근 한국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민감한 시대적 문제에 교단은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실질적인 사회운동의 하나로 전개될 안티 기독교 문화에 대한 대응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종교인 과세에 관한 문제, 동성애를 합법화 하려는 차별금지법 문제 등은 성도들이 피부로 느끼며 해답을 원하는 주요 사회관심사의 하나이다. 이에 각 교단은 분명하고 명확한 신학과 신앙의 잣대를 소유하여 감정적 대응이 아닌 법적 위상을 동반한 신념과 철학으로 세밀한 현장의 소리와 실효성 있는 실천의 과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계가 시대에 건강한 영향력을 미칠 때 성도들은 이 교단을 필요적인 조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 더, 많은 교단이 총회를 앞두고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은 조직과 시스템의 변화에서 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역사적으로 개혁은 사람이 바뀌었을 때 일어났다. 정치를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정책가가 될 순 없다. 정책총회가 개혁의 시작이라면 정책을 펼칠 다음세대가 준비되어야 한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얻을만한 분량의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역할을 가데스바네아까지로 규정했다. 모세 같은 지도자란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의 성과는 새로운 정책수립과 헌법의 수정, 다수의제의 해결에 있지 않다. 사람의 변화가 핵심이다. 이 변화를 우리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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