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100회기 특집-복음과 함께, 겨레와 더불어] 역대 총회 주요 결의

▲ 조선예수교장로회 창립총회가 열린 1912년 9월 평양여자성경학교 앞에 선 제1회 총회 총대들의 모습.

잇따른 이단 규정, 신앙 지키다 … 신사참배 가결, 부끄러운 결의
한기총 인준, 연합 활동에 앞장 … 개혁총회와 합동, 새도약 시동


1. 중국선교사 파송(제2회 총회)

독노회 시절 한국 장로교단이 최초로 결의한 내용 중 하나는 한국인 최초의 목사 7명 중 하나인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통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조직 직후인 제2회 총회에서 박태로 사명순 김영훈 선교사를 중국에 파송하는 결의로 이어진다.

아직 겨우 총회의 형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여전히 외국 선교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국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총회는 3회에는 길림성 만주 동경 등지에, 11회에는 시베리아에 선교사나 전도목사를 파송하는 등 복음사역의 지경을 계속해서 넓혀갔다. 그런 노력들이 씨앗이 되어 훗날 총회세계선교회(GMS) 창립(제83회 총회)이라는 숲이 자라게 된다.
 

▲ 1933년 9월 평북 선천남교회에서 소집된 제22회 총회에서 선출된 임원진들의 모습. 당시 총회에서는 이용도 등에 대한 이단 지정 등을 결의했다.

2. 이용도 등 이단 지목(제22회 총회)

초대교회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이단과의 투쟁은 한국교회 초창기에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확고한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싸움이었다. 신비주의에 빠져 소위 예수교회라는 교파를 창설한 이용도 백남주 한준면 이호빈 등과, 삼각산기도원을 세운 황국주가 제22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결정된 게 신호탄이었다.

이후 박태선(제41회) 문선명(제68회) 김기동(제74회) 이장림(제76회) 이만희(제80회) 류광수(제81회) 말씀보존학회(제83회) 등에 대한 이단 결정 혹은 그에 준하는 결의들이 총회에서 이루어졌다. 이단세력의 계속적인 확산은 교단 내 이단조사연구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는(제79회, 제91회) 결과를 가져왔고, 제92회 총회에서는 이단관련 각종 위원회들을 이단대책상설위원회로 통합해 현재의 총회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위원회(약칭 이대위)가 만들어진다.
 

▲ 경북 안동교회에서 회집한 제39회 총회에서 총회 임원들이 회의하고 있다. 당시 총회에서는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된 이원영 목사가 총회장에 선임됐고, 신사참배를 참회하는 기도회도 열렸다.

3. 신사참배 가결(제27회 총회)

가장 깊은 암흑기에, 가장 부끄러운 결의가 1938년 평양서문밖교회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일이다. 양보해선 안 될 신앙을 현실 권력 앞에 굴복시키고 만 것이다.

그 해에 평양신학교와 숭실전문학교 등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스스로 폐교하고, 이듬해부터 외국 선교사들의 대거 출국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제30회 총회에서는 전 총대들이 개회 다음날 아침인 1941년 11월 22일 평양 신사에 참배하고, 제31회 총회에서는 개회 전 일제의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하는 굴욕을 자행한다.

이후 1943년부터 3년 동안은 총회 자체를 열지 못하다가, 해방 후인 1946년 제32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회개하고 취소하는 결의를 한다. 그러나 당시 결의의 진정성은 여전히 의심을 받는다. 신사참배 결의를 반대하다 제명된 교역자와 선교사 그리고 성도들의 기록이 취소된 것은 그로부터 7년이 더 지난 제39회 총회에 가서야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 제비뽑기 방식으로 총회 임원을 선출하는 최초의 기록을 남긴 제86회 총회. 첫 번째 당선자는 한명수 목사였다.

4. 한기총 인준(제74회 총회)

초창기 한국 장로교단의 역사에는 감리교를 비롯한 다른 교파와의 연대 활동이 자주 눈에 띈다. 감리교단과의 연합 기관지 기독신보를 창간하고(제5회) 교파를 망라해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조직하는(제12회)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신학 파동과 WCC 가입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다른 교단과의 교류는 점점 위축되었다. 그 결과 신학적 순수성은 지킬 수 있었지만, 한국교회 전체를 끌어가는 장자교단으로서 책임감과 지도력은 발휘되지 못했다.

1980년대까지 이어지던 이 같은 흐름은 제74회 총회에서 초교파 조직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인준하고, 총회장이 대정부 대외관계에 자유로이 참여하도록 결의하면서 반전된다. 한기총을 통해 총회는 교회 연합 뿐 아니라 이단대처, 대북구호 등 한국교회 주요 활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기총 내부 갈등과 혼란으로 지난해 제99회 총회에서는 한기총 탈퇴를 결의한 상태이다.
 

▲ 교단 합동의 큰 과업을 이룬 제90회 총회에서 총회장 서기행 목사(왼쪽)와 홍정이 목사가 손을 맞잡고 있다.

5. 개혁총회와 합동(제90회 총회)

혹자는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를 교단 분열의 역사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신학적 차이 혹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장로교단은 끊임없이 분화의 길을 걸어왔다. 고신(제36회) 기장(제38회) 통합(제44회)과 결별에 이어 제64회 총회에서는 방배동측(훗날 개혁총회)과도 헤어졌다.

물론 관계회복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통합 측과는 제52회 총회에서 합동을 결의하고 추진 작업이 벌어졌지만 결국엔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제90회 총회에서 이루어진 개혁총회와의 합동 성사는 한국 장로교회 역사에 빛나는 결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 제100회 총회는 교단 합동이 이루어진 지 10년째가 되는 시점, 하나 된 힘으로 더 높은 비전을 향해 도약할 때이다.

 

역대총회 결의(1회~100회)

회수 연도 장소 총회장 결의사항
1 1912 평양신학교 원두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조직
2 1913 서울 소안동교회 왕길지 중국에 박태로 사명순 김영훈 선교사 파송
3 1914 재령 남산현교회 배유지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 조직
4 1915 전주 서문밖교회 김필수 만국주일학교에 대표 2명 파송
5 1916 평양신학교 양전백 기독신보(장로교·감리교 기관지) 창간
6 1917 서울 승동교회 한석진 함경노회(함북·한남) 전라노회(전북·전남) 분립
7 1918 신천 북교회 김선두 신학지남 창간
8 1919 평양신학교 마포삼열 교계신문 및 잡지 발행
9 1920 서울 안동교회 김익두 산서노회(남만·산서) 분립
10 1921 평양 장대현교회 이기풍 경북노회(경북·경안) 평남노회(평양·평서·안주) 분립
11 1922 서울 승동교회 김성택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창립
12 1923 신의주교회 함태영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조직
13 1924 함북 신창리교회 이자익 교회 설립과 폐지는 노회 권한임을 확인
14 1925 평양 서문밖교회 임택권 한센씨병근멸회 조직
15 1926 평양 서문밖교회 김석창 금강산 교역자수양소 설치
16 1927 원산 광석교회 김영훈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사업회 조직
17 1928 대구 신정교회 염봉남 각 노회 농촌부 설치하고 농보 ‘농민생활’ 발행
18 1929 서울 새문안교회 차재명 총회 사무국 설치
19 1930 평양 서문밖교회 홍종필 ‘종교교육’ 창간
20 1931 금강산수양관 장규명 총회 3차년도 진흥계획 수립
21 1932 평양 창동교회 남궁혁 기독교교육연맹 창립
22 1933 선천 남교회 장흥범 이용도 백남주 한준명 이호빈 황국주 이단 결정
23 1934 평양 서문밖교회 이인식 총회 50년 약사 및 화보 출간
24 1935 평양 서문밖교회 정인과 신편찬송가 400장 편찬 간행
25 1936 광주 양림교회 이승길 장로교·감리교 선교구역 철폐
26 1937 대구 제일교회 이문주 농사 연중행사표 보급
27 1938 평양 서문밖교회 홍택기 신사참배 가결
28 1939 신의주 제이교회 윤하영 경성에 조선신학교 설립
29 1940 평양 창동교회 곽진근 이기풍 목사 총회 원로목사로 추대
30 1941 평양 창동교회 최지화 총회 창립 30주년 기념예배 드리기로
31 1942 평양 서문밖교회 김응순 총회회의록 일본어로 정리
32 1946 서울 승동교회 배은희 신사참배 회개하고 취소하기로
33 1947 대구 제일교회 이자익 한국 자주독립을 위한 성명서 발표
34 1948 서울 새문안교회 이자익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찬송가 합동
35 1949 서울 새문안교회 최재화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변경
36 1950
1951
대구 제일교회
부산 중앙교회
권연호 고신측과 분립
37 1952 대구 서문교회 김재석 목사가 관공리나 국회의원 전직시 목사 성직 사직
38 1953 대구 서문교회 명신홍 기장측 분열
39 1954 안동 중앙교회 이원영 신사참배 거부 교역자 선교사 등 제명 기록 취소
40 1955 서울 영락교회 한경직 무교회지역 500개 면에 1교회씩 신설 운동
41 1956 서울 새문안교회 이대영 박태선씨 이단 규정
42 1957 부산 중앙교회 전필순 십자가를 강단에 부착하지 않기로
43 1958 서울 영락교회 노진현 계단공과 발행
44 1959 대전 중앙교회 양화석 통합측과 분립
45 1960 서울 승동교회 고성모
한상동
고려파와 합동하기로
46 1961 부산 남교회 한상동 ICC(국제기독교연합회)와 우호관계 단절
47 1962 서울 승동교회 이환수 고신측 환원
48 1963 서울 승동교회 이수현 개혁파교회 세계대회에 가입
49 1964 서울 성도교회 김윤찬 목사 장로 시무정년제 폐지
50 1965 서울 승동교회 정규오 기독신보(현 기독신문) 인가
51 1966 광주 중앙교회 박찬목 보수교단 연합기구 조직
52 1967 서울 평안교회
대전 중앙교회
김윤찬 통합 측과 합동 추진
53 1968 부산 초량교회 손계웅 대회제 실시
54 1969 서울 장충교회 문재구 WCC NCC 노선 가담 목사를 강사로 초청 않기로
55 1970 대구 서현교회 김창인 칼빈신학교 등 지방신학교 인준
56 1971 대전 중앙교회 정규선 총회센터 건립하기로
57 1972 서울 충현교회 박성겸 대회제 폐지
58 1973 인천 제이교회 박요한 학생신앙운동(SFC)를 학생면려회(SCE)로
59 1974 서울 평안교회 최동진 미주노회 조직
60 1975
1976
서울 승동교회
총신 강당
장성칠 일만교회운동 추인하고 적극 추진하기로
61 1976 총신 강당 황금천 찬송가 합동위원회 조직
62 1977 총신 강당 이기하 총회 전도부 산하에 부흥전도단 두기로
63 1978 부산 부전교회 한병기 표준예식서와 학습세례 문답서 사용
64 1979 대구 동부교회 한석지 방배동 총신(개혁측)과 분열 수습위한 전권위원 선출
65 1980 부산 부전교회 이영수 총신대학과 신학부 분리 운영하도록
66 1981 대전 중앙교회 최성원 전국남전도회연합회 규칙 인준
67 1982 군산 개복교회 김현중 한국찬송가공회 조직
68 1983 서울 평안교회 배재운 무지역노회 속한 시일 내에 지역노회로 귀속키로
69 1984 대구 서현교회 최 훈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예배
70 1985 서울 청량교회 박명수 외국영주권 및 시민권 가진 자 국내목회 못하도록
71 1986 서울 승동교회 안중섭 이중국적자 국내 목회 제한 해제
72 1987 서울 신림동교회 김길현 지방신학교 신학부 학제를 4년제로 변경
73 1988 대구 서문교회 이성헌 찬송가 261장 교회에서 부르지 않기로
74 1989 서울 평안교회 이성택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인준
75 1990 김제 중앙교회 유인식 은급국 설치하기로
76 1991 대구 동신교회 이봉학 공예배시 개역성경만 사용하도록
77 1992 인천 제이교회 이삼성 전도국 설치하기로
78 1993 광주 동명교회 최기채 70세 정년제를 총회산하 모든 공직에 균일하게 적용
79 1994 대구 동부교회 김덕신 선거공영제 실시
80 1995 서울 충현교회 정석홍 21세기 교단부흥발전기획단 구성
81 1996 청주 중앙교회 김준규 총회주일 1월 3째 주일에 실시
82 1997 서울 충현교회 신세원 빈야드운동 참여나 동조자 징계하기로
83 1998 서울 왕성교회 길자연 총회세계선교회 설립
84 1999 정읍 성광교회 김도빈 열린예배 금지하기로
85 2000 진주교회 김동권 총회 임원선거를 제비뽑기로
86 2001 서울 충현교회 예종탁 총회교육개발원 설치
87 2002 수원 창훈대교회 한명수 사회법정 상습고소자 엄중징계키로
88 2003 대구 동신교회 임태득 지역노회에서 무지역노회로 이거할 수 없도록
89 2004 서울 충현교회 서기행 상비부장과 총회 기관 이사장 등 제비뽑기로 선출
90 2005 대전 중앙교회 황승기 개혁총회와 합동
91 2006 부산온천제일교회 장차남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예배 개최
92 2007 성남 연정교회 김용실 이단관련위원회를 이단대책상설위원회로 통합
93 2008 제주 국제컨벤션 최병남 총회주일(세례교인헌금) 시행 강화
94 2009 울산 우정교회 서정배 구제부 횡령사건 처리 위해 특별재판국 설치
95 2010 홍천 비발디파크 김삼봉 임시목사 관련 헌법 정치조항 수정
96 2011 전주삼성문화회관 이기창 총회와 노회 교회자립지원위원회 시행
97 2012 대구 성명교회 정준모 총회 임원선출방식 제비뽑기와 직선제 절충형으로
98 2013 수원신텍스컨벤션 안명환 절충형 선거방식 총회 산하기관에도 확대
99 2014 광주 겨자씨교회 백남선 총회정책연구소 설치
100 2015 대구 반야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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