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그의 총신 사랑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총신대학교 100년사> 화보집에 보면 42쪽에, 총신대학 초대 재단이사장을 시작으로 제6대 재단이사장까지 21년간(1967. 5. 2~1988. 9. 10) 정직과 성실로 총신대학교를 섬겼다. 그는 성지 순례도 마다하고, 회갑, 고희 기념식도 못하게 하고 절약하여 총신을 위해 헌신하였다(<믿음의 사람 백남조>, 332쪽). 총신대학장을 지낸 고 김희보 박사는 백 장로가 사업이 어려울 때에도 총신을 위해 헌신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앞의 책 309쪽). 학기를 마칠 때마다 교수들을 격려하는 식사의 자리를 베풀었던 재단이사장이었다. 또한 매일 낮 12시 가정 기도회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총신을 위해 기도한 장로였다. 정성구 박사도, 배태준 장로도 우연히 부산을 방문했다가 이 기도회에 참석한 바 있다(앞의 책 313, 316쪽).
<총신대학교 100년사>의 647쪽에 보면, 1965년 3월 22일 오후 3시, 사당동 캠퍼스의 기공예배에 이환수 목사는 이렇게 개회사를 했다. “… 이는 우리 총회와 신학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섬겨오신 백남조 장로님이 1만여 평의 대지를 준비하여 신학교에 바쳤고,” 지금도 총신은 이런 헌신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할 때에, 칼빈신학교가 속한 CRC(Christian Reformed Church)교단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재산을 학교를 위해 기증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장학금도 많았다. 필자가 섬기던 교회의 전도사가 풀러신학교를 마치고 칼빈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전액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제공받았는데 이런 재원은 성도들의 기증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올해는 고 효암 백남조 장로님이 총신을 위해 헌신한 사당동 대지에 신축기공예배를 드린 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다시금 그가 그리워진다. 우리 교단에 이런 지도자가 많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우리 총신이 미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리더를 배출하는 더 좋은 모판이 되길 바란다. 신학교를 가리키는 영어 세미너리(seminary)는 라틴어 세미나리움(seminarium)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모판(seedbed)이다. 모판이 병들면 농사는 망치는 것이다. 건강한 모판이 되도록 총신을 위해 기도하고 총신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미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살리는 일이다. 다시 한번 50년 전, 고 효암 백남조 장로의 총신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순수한 마음과 넘치는 헌신이 그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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