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남 목사(김제연정교회)

기도하면 여호와가 더불어 싸우십니다
환난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적이 삶에 언제든 일어나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6)

노아홍수 이후에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인류는 다시 문명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왕권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모여 바벨탑을 쌓으면서 국가를 이루게 되고 하나님은 이들을 언어로 흩어버리십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고대 바벨론제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도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기로 계획하십니다. 세계에 흩어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창조주 되시며 세상의 왕 되심을 전하라고 한 나라를 계획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람을 불러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약속하신 땅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서 후손들이 번성할 때 애굽으로 이민을 갑니다.

애굽에서 약 430년 동안 인구가 약200~25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출애굽을 합니다. 목적지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 아브라함이 살았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을 주시기 위해서 가장 알맞은 장소 시내산으로 이들을 인도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시내산에서 법을 받기 전에 르비딤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전쟁할 때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하고,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전쟁은 산꼭대기에서 높이 든 모세의 손에 의해 결정되어집니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싸움에서 능한 장군이라도 싸우는 것만으로 이길 수 없고, 어떤 무기나 전략, 군대의 수가 전쟁을 이기는 것이 아니고 이 전쟁의 승패는 모세의 손이 올라갔느냐, 내려갔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게 되자 함께 있던 아론과 훌이 각각 모세의 팔을 붙잡았더니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터가 두 곳입니다.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직접 싸운 산 아래와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한 산꼭대기입니다. 성경이 이 두 개의 전쟁터를 보여주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두 개의 전쟁터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삶의 영역이요 다른 하나는 신앙적인 영역입니다. 일상적인 삶의 영역은 여호수아가 산 아래에서 전쟁을 하는 것처럼 내가 힘쓰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의 힘과 방법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앙적인 영역입니다. 일상적인 삶의 영역은 기도에 의해 좌우됩니다. 잠언 16장 9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했습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승리의 원리를 책에 기록하고 기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게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마다 승리의 원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모세는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승리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 전쟁은 군대나 무기와 같은 군사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에 그 길을 지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이사야 45장 11절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개역-내게 부탁하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장래에 관한 일을 나에게 물으라 하십니다.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부탁하라 하십니다. 땅도 내가 만들었고, 사람도 창조하였고, 하늘도 내가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너는 내게 물으라고 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세상만사는 인간의 마음대로 인간의 노력대로 되지 않습니다. 개인의 생사화복과 가정의 길흉, 그리고 국가와 세계 역사의 운명 등 만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누누이 증거합니다. 사무엘상 2장 6~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어 가시기도 하시는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죽을 자리에서 살려주시고, 살려고 발버둥 쳐도 데려가기도 하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임의로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한순간 욥을 가난하게 하셨고 연단하신 후에는 다시 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요셉은 한순간에 아버지의 사랑받던 아들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습니다. 또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때가 되자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그를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낮아져 있던 사람도 능히 높여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삶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꿈꾼다고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시 37:5),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잠 16:3), ‘너의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벧전 5:7),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 지어다’(벧전 4:19).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맡기라고 하십니다. 왜 맡겨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시 55:22),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시 37:5)고 했습니다.

계획이나 시작은 내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눈에 보이는 것 없고 귀에 들리는 것 없고 가슴에 뜨끈뜨끈 한 것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역사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적이 우리의 삶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 출애굽기 17장 16절을 통해 하나님은 ‘일상적인 삶의 영역은 기도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이 원리대로 살면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의 목회현장은 사람이 없고, 젊은이도 없고, 아이들도 없고, 희망이 없고, 그래서 안 된다는 농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대로 목회하니 하나님께서 썰물 같던 목회현장을 다시 사람들이 돌아오는 밀물 같은 희망의 현장으로 바뀌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들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우리 육신의 근육을 기도의 체질로 바꾸십시오. 기도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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