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이 말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던 조선인에 대한 또 다른 슬픔의 대명사이다. “나는 귀추 없이 떠돌아다니는 바람꽃! 바람이 불어 왔던 곳과 바람이 자는 그곳 두 세계 중 어느 한 곳에 머무르거나 또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 채 두 곳을 끊임없이 우왕좌왕했었다.”

이 글은 조선족 여류작가 허련순이 지은 장편소설 <바람꽃>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작가 허련순이 말하는 바람꽃들의 고통 이야기는 1930년대 만주국으로 그 연원을 찾아가야 한다. 만주국은 1932년 3월 1일 중국 동북 지방에 수립된 나라였다. 이 나라는 일본의 관동군이 세운 자치국가로 1945년 8월 18일 296년 동안 지속되었던 청조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푸의의 퇴위 선원과 함께 사라졌다. 13년 5개월이라는 짧은 시기동안 존재했던 만주국은 명목상 통치자가 푸의였다. 하지만 사실상의 모든 실권은 일본의 관동군들이 독점한 나라였다. 만주국은 총면적이 130만 제곱킬로미터나 되는 광대한 지역으로 68만 평방킬로미터의 일본에 2배나 되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만주국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외에도 유대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타라르인 등 50여 민족에다 45개의 언어가 상재하는 나라였다.

194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은 82만 명, 조선인은 145만 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본은 만주국 건설 이후 중국의 동북인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와 식량기지로 활용했다.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서 일본 신민이 될 수 없었던 저들은 정착이냐 귀환이냐의 기로에서 방황하여야 했다. 저들 만주의 이민자들은 이런 속에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면서 자신들의 공동체에 대한 귀속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귀속감의 대표적 예가 민족혼의 순교자로 불리는 시인 윤동주이다. 1917년 북간도 용정(룽징)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법적으로 만주국 국민인 동시에 일본국민이라는 이중국적을 가져야 했다. 이들 이민자들의 후손인 조선족들은 중국 공민이라는 국민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 정체성 사이에서 광복 70주년이 된 오늘까지 바람꽃으로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재외 식민지 후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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