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개혁주의 설교 ① 연중 설교 구성을 위한 본문 선택 방법

교회력 맞추어 성경서 선별·배열한 성구 모음집 … 체계적이며 균형잡힌 설교 도와
‘사용하되 전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탄력적 활용 중요…신학적 검토 등 논의 시작해야

 
▲ 김창훈 교수(총신대·실천신학)

설교자에게 있어서 본문 선택은 설교를 위해 첫 단추를 꿰는 것과 같다. 본문 선택하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서 세 가지 정도다. 하나는 성경의 한 권을 택해서 연속 강해 설교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역사적으로 초대 교회의 설교자들 그리고 칼빈과 쯔빙글리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연속 강해 설교를 하는 경우에 본문 선택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설교자가 임의로 본문을 정하여 설교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설교자가 목회 계획에 맞추어서 또는 교인들이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특별한 주제나 목적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본문을 택하여 설교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같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설교자가 필요에 따라 매 번 임의로 본문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또 하나의 설교를 위한 본문 선택의 방법이 ‘렉셔너리(Lectionary)’에 의한 것이다. 이 방법에는 최근 들어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우리 교단은 다른 교단에 비해 비교적 적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 렉셔너리란?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즉,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 등)를 매년 시간을 정하여 규칙적으로 기념하고 재현하기 위해 교회가 정한 달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렉셔너리는 기본적으로 교회력에 기초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교회력을 정하여 지키는 것은 구약 성경에 기초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여러 가지 절기들(유월절, 맥추절, 장막절, 안식일, 월삭 등)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회력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재현함으로 성도가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을 바로 섬기고 미래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은혜의 방편이다.

오늘날의 교회력으로 정착한 것은 4세기 후반이다. 그것은 크게 두 개의 주기로 발전되었다. 먼저는 부활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순절-부활절-오순절 주기인데, 이것을 일반적으로 ‘부활절 주기’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성탄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림절-성탄절-주현절 주기인데, 이것은 ‘성탄절 주기’라고 부른다. 이러한 두 주기를 중심으로 교회력에 맞추어 일년 동안(혹은 다년간) 예배 시간의 말씀 선포와 개인적인 묵상을 위해 성경에서 선별하여 배열한 성구 모음집이 렉셔너리이다.
 
2. 렉셔너리의 발전

그러면 렉셔너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초대교회에 렉셔너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렉셔너리에 대한 증거들은 4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다. 또한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아 중세 시대의 교회는 여러 개의 렉셔너리들을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하지만 중세 시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사를 중심으로 한 교회력과 렉셔너리의 본래 모습을 상실하고, 성자들의 기념일들이 교회력을 채우게 되었고, 성경 낭독과 설교는 성자들의 생활담이나 전설로 대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본질이 상실된 렉셔너리를 배척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대신 쯔빙글리, 칼빈 그리고 부처 등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 전권을 차례로 설교하는 연속적 성경읽기를 선호하였다.

그런데 20세기에 이르러 장로교의 본산인 스코틀랜드 교회가 예배회복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940년에 공식적으로 교회력과 렉셔너리를 채택하였다. 하지만 렉셔너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사용은 천주교에서 제기되었다. 천주교에서는 1964년 18명의 전문위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스코틀랜드 교회의 렉셔너리를 비롯한 지금까지의 렉셔너리를 검토하고 많은 개신교 학자들의 자문을 구해 마침내 1969년 5월에 <미사 독서 예식서(Ordo Lectionum Missae: 이하 OLM)>를 공포하였다.

OLM에 도전을 받은 북미의 교회는 교회력과 렉셔너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단별로 렉셔너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미국 성공회, 루터교회, 미국의 연합 장로교회, 남장로교회, 컴벌랜드 장로교회, 연합 그리스도 교회, 감리교 등이 가톨릭의 렉셔너리를 수정 보완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 중반에 미국과 캐나다 교회들의 예배 갱신을 위해 조직된 ‘공동본문협의회’는 1978년 3월에 모임을 갖고 모든 교단들이 수용할 수 있는 교회력과 렉셔너리를 만들기 위한 ‘북미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4년간의 연구 끝에 1982년 <공동 렉셔너리(The Common Lectionary: 이하 CL)>를 만들었다. 특별히 CL은 그리스도 예표적 관점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가톨릭의 구약 선택을 거부하고, 구약을 주제와 내용별로 재구성함으로 성경이 한 부분에만 치우치지 아니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였다. CL은 시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많은 개신교 교단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CL은 좀 더 보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1992년 드디어 오늘날 많은 교단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정 공동 렉셔너리(The Revised Common Lectionary: 이하 RCL)>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교회력의 회복과 렉셔너리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성탄절과 부활주일을 제외하고는 교회력과 렉셔너리에 큰 관심이 없었던 한국 교회는 최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교단과 학자들이 RCL에 근거하여 연중 설교를 위한 본문과 설교 개요와 보조 자료들을 출간하고 있다.
 
3. 렉셔너리의 사용에 대한 평가

이상에서 우리는 간략하게 렉셔너리의 발전 과정과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러면 본문 선택의 방법으로서 렉셔너리를 사용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먼저,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구원역사와 관련된 여러 절기들을 명령하면서 기대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사와 연결된 교회력에 근거한 렉셔너리를 잘 활용하여 메시지를 선포하면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를 기억(되새김), 회복 또는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기 때문에 동료들이나 주변 지역 교회의 목회자들과 함께 설교를 준비할 수 있다. 다른 설교자들과 함께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자신의 설교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더욱 풍성한 설교를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렉셔너리를 위해서 출판된 많은 설교 보조 자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로 설교자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본문과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편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렉셔너리는 성경 전체를 어느 정도 골고루 설교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에 렉셔너리를 따라 설교하면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설교를 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가 피하고 싶은 본문이나 주제도 설교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덤으로 본문 선택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덜어 준다.

하지만 렉셔너리를 본문 선택의 방법으로 결정하면 몇 가지 한계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바람직한 설교는 목회적 상황과 오늘날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와 사건들을 민감하게 반영해야 하며, 때로는 그러한 내용들이 설교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렉셔너리에서 제시된 본문을 따라 설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설교 또는 시사성이 결여된 설교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렉셔너리는 사회적 상황과 목회 현장이 고려되어 본문이 배정된 것이 아니라 교회력만 반영하여 본문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같은 차원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없는 독특한 교회 문화, 국경일(삼일절, 광복절 등) 그리고 명절(추석, 설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사용되는 RCL은 그러한 것들이 전혀 고려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회나 성도들이 처한 상황이나 필요에 겉도는 설교가 될 수 있다.

또한 혹자는 렉셔너리에 포함된 본문보다 포함되지 못한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강단에서 렉셔너리에 포함되지 못한 많은 본문이 설교에서 외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기억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는 렉셔너리를 사용하되 렉셔너리에 전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나 행사가 없으면 렉셔너리를 따라 설교하되, 주목할 만한 사회적 이슈나 사건 등이 발생하거나 교회의 특별행사가 있거나 고려해야 할 교회의 문제가 있으면 얼마든지 렉셔너리에 얽매이지 않고 거기에 맞는 본문을 정해 설교하면 된다.

다음으로,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렉셔너리에 근거한 본문으로 설교하고 다른 예배 시간에는 렉셔너리와는 별도로 연속적으로 강해 설교를 하거나 필요에 따라 주제를 정하여 설교하면 된다.
 
4. 우리의 과제

필자는 이제 우리 교단도 단순히 부활절과 성탄절에 한정되어 있는 교회력의 공식적인 확대와 교회력에 근거한 렉셔너리의 공식적인 사용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회력의 회복과 렉셔너리의 사용이 활성화되기에 앞서 우리 앞에 놓인 몇 가지 과제가 있다.

먼저, 오늘날 다양하게 제시된 교회력에 대한 신학적 검토를 통해 우리 교단의 신학에 부합한 교회력의 범위와 의의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문화(국경일 그리고 명절)와 한국교회의 상황을 고려한 렉셔너리의 개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렉셔너리의 내용에 있어서 성경 전체에서 소외된 부분을 최소화하고, 신약과 구약이 균형을 이루도록 배치 해야 한다.

아무쪼록 본고가 우리 교단 안에서 교회력의 회복과 력셔너리의 활용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교회력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렉셔너리의 사용이 주는 유익을 모든 설교자와 성도들이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