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태 목사(울산태화교회)

십자가 사람은 하나님의 힘이 생깁니다
과거 못 박고 현재 살아내며 미래 전망하는 십자가의 자리 지켜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신학자 A.W. 토저는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한 방향만 보는 것’, 두 번째는 ‘뒤로 후퇴할 수 없는 것’, 세 번째는 ‘오직 십자가만으로 충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십자가만 봅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보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과거가 없습니다. 과거를 다 십자가에 묻어버렸습니다. 부끄러워 할 것도 없고, 괴로워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이제는 오직 십자가만을 생각합니다. 십자가 이상 앞으로 나가지를 않습니다. 십자가 이외에 더 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하나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아래서 사는 것이라”를 고백하고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사람이 되려면 십자가에 담긴 비밀들을 깨달아야합니다.
 

첫째, ‘십자가는 나의 과거를 장사지낸 자리’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말씀은 내가 지금은 2015년을 살고 있지만, 2000년 전 예수님과 함께 그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강도처럼 달렸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달려서 죽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죄를 가진 나’가 죽은 것입니다.

죄는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모든 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신학적 의미의 죄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정직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곧 사망입니다.

죄는 열매의 문제가 아니라 나무의 문제, 즉 생명의 문제입니다. 열매를 다 따내어도 그 나무를 죽이지 않으면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손과 발을 씻으려 합니다. 행동을 회개하고 상황을 정리하려 합니다. 그러나 죄는 손과 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건과 상황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죄는 열매의 문제가 아니라 나무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를 해결할 것입니까? 우리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입니다. 죄를 없애기 위해 힘쓴다고, 나를 다듬고 수양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죄를 해결하려면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사탄을 멸하는 곳은 한 곳 뿐이요, 한 분 뿐입니다. 그 곳이 십자가요, 그 분이 바로 십자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바로 2000년 전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나의 죄가 죽고 죄인인 내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십자가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나의 현재를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본문에 내가 주 안에 주님이 내 안에 라는 말씀은 ‘이제 나는 내 인생에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주님이 내 삶에 새 주인이 되시는 영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나오라 내 배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강을 마셔라”, “여호와는 내게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케 하는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가셔서 마음과 생각과 계획을 다스리시는 주인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새 주인이 되신 주님은 여러분 안에 거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선포하시며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걸작으로 빚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여전히 육체가운데 삽니다. 세상 가운데 삽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사람들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삶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의 삶은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하루를 살아도 목적이 분명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목적에는 찰나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찰나적인 목적은 당장 목전에 있거나 삶의 방편이라면, 영원한 목적은 영원을 살게 하는 것이요 뿌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찰나적인 목적을 붙들고 죽을 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허공을 친 자기 인생을 발견하고는 통탄합니다. 그 말로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찰나적인 목적과 영원한 목적 둘 다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간순간 목적을 알려 주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으로 절묘하고도 은혜롭게 십자가의 사람들을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의 삶에는 하나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저는 성도들을 방문해서 기도할 때마다 놓치지 않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어도 영혼에 기쁨과 평강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가정의 모든 식구들 가운데 영혼의 기쁨을 주시고 영혼의 평강을 주옵소서.”

십자가의 사람들에게는 이런저런 기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평강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초월하여 좋은 일에도, 궂은일에도, 밤에도, 낮에도 항상 내 마음을 지배하고 사로잡는 평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힘이 생깁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인생이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힘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죄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장 크게 실감하는 것은 죄에서 자유하게 된 심령과 삶입니다. 죄는 인생을 파괴하는 가장 근원적인 곳에 있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교묘한 존재로서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되는 순간부터 죄가 나에게서 손을 놓게 된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내 손을 붙들고 나의 영혼을 자유케 하는 것을 순간순간 경험하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한 방향만 보는 것’입니다. ‘뒤로 후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무엇입니까? 과거를 못 박고,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모두들은 십자가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원토록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가공할만한 하나님의 능력이 항상 우리의 삶에 임하시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죄의 권세와 결과와 영향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성령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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