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개혁주의 장로교 교회정치 ③ 장로교 정치제도

직분과 치리 한계 인정하고 반성 가능성 확보하여 그리스도 주권 침해 최대한 방지
교회는 ‘영적 유기체’ 라는 가르침에 집중, 주장과 권한 스스로 낮추는 노력 계속해야



1. 사상을 담는 그릇으로서 제도

 
▲ 김요섭 교수총신신대원·역사신학
제도는 사상이라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한 시대에 영향을 끼친 사상들은 추상적으로 말이나 생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실천을 위한 제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에 증거할 사명을 가진 교회 역시 증거하는 가르침의 체계성이나 고상함만큼이나 그 실천을 위한 바른 제도의 확립과 건전한 운영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어야만 한다. 그러나 제도의 성공적 운영과 효율적 운영에만 집중하는 가운데 이 제도가 본래 어떤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세워졌는지를 망각하는 것은 더 심각한 실책일 것이다. 목적을 망각하면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의 현황을 바르게 진단해 평가하고 더 바람직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중 나타난 여러 전통들 가운데에서도 개혁신학의 전통은 성경적인 가르침에 따른 교회의 모습을 시대의 상황 속에서 세우기 위한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는 목적과 수단 사이의 우선순위를 뚜렷이 강조해 왔다.

장로교 제도는 개혁교회가 바른 신학적 이해를 제도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시작되고 발전해 왔다. 종교개혁 이후 지난 500년 동안 개혁교회가 제도의 발전 가운데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은 어떤 특정한 제도나 실천의 행태보다는 장로교 제도의 기초이며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구현 노력이었다. 그리고 개혁교회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성경의 가르침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삼은 그의 몸이라는 교회에 대한 이해였다.(엡 4:15)
 
2.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라는 종교개혁의 구호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이라는 구원론의 요리(要理)임과 더불어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의 교회론과 세계관을 위한 중심 교리였다.(골 1:17-18) 종교개혁자들을 계승한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로마 교황주의의 교황 수위권 주장에 맞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교회와 신학,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주인이심을 강조했다. 최초의 장로교 총회를 구성했던 프랑스 교회의 갈리아 신앙고백으로부터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벨기에 신앙고백,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이르는 16-17세기의 거의 모든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은 교회를 정의할 때, 그리스도께서만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는 성경적 이해를 분명히 밝혔다. 이 공통의 고백 위에서 각국의 개혁교회들은 밖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국가 감독주의자들의 독재적 위계 제도를 비판하고, 동시에 재세례파 등 급진 주장이 불러올 수 있는 무정부 상태를 경계했다. 또 안으로는 지속적인 교육과 대화를 통해 ‘오직 그리스도’라는 이 교회론적 고백 위에서 교회의 법적 정치적 제도를 실제적으로 수립하려 최선을 다했다. 개교회의 사역에 따른 다양한 직분의 수립과 대의제도에 의한 민주적 운영, 그리고 3심제로 대표되는 장로교회의 치리 제도 등 장로교회의 특징적인 제도들은 모두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유일한 주권에 따라 그의 몸을 세우기 위한 실천 노력의 결과들이었다.(엡 4:11-12)
 
3.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의 통치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이라는 원리는 곧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만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는 유일한 결속이시며, 교회의 생명력을 공급하는 유일한 원천이심을 의미한다.(롬 12:4-5) 또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교회와 함께 하셔서 말씀의 홀(笏)이라는 자신의 통치 수단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신뢰함을 의미한다.(엡 2:20) 이 원리에 입각해 개혁교회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주권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정치 제도를 세우려 최선을 다했다.

칼빈은 통치 수단으로서의 말씀 사역의 중요성과 관련해 교회의 모든 정치 제도는 말씀의 사역에 의해서 수립되며, 말씀의 사역은 인간의 고안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직무라고 말했다.(엡 4:11) 개혁신학은 목사의 직분을 그리스도의 말씀의 사역을 위해 교회 안에 제정된 직무로 이해하며 중시한다.(고전 4:1, 딛 1:9) 개혁교회가 역사적으로 목사의 직무를 특별히 중시한 것은 교회의 여러 직원들 가운데 말씀의 사역을 맡은 목사 사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목사의 인간적 자격에 따라 교회 안에서 독특한 권위를 소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직분들과 마찬가지로 목사의 권위는 파생적이며 의존적이다. 즉 목사의 권위는 목사 개인의 자격이나 임직 절차에서 나오는 것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목사에게 위임한 말씀 선포 사역에서 나온다. 따라서 목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소명 의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전 4:2) 교회 모든 지체들은 말씀 사역을 수행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세우셨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목사가 선포하는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따라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에 힘써야 한다.(딤전 5:17) 제도적인 차원에서 교회 전체는 목사 임직 과정에서 질서와 공의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딤전 5:21-22) 그러나 교회 안에서 각 구성원들의 유기적인 헌신을 통한 건강한 제도 수립과 운영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얻거나 외적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바른 제도 수립과 운영을 위한 노력은 다만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 사역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시며 그 말씀을 통해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다는 성경적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4. 장로교회의 민주적 정치 제도
 
장로교 정치 제도는 교황제를 비롯한 감독제도가 취하는 위계체제보다는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인 방식을 취했다. 실제로 개혁교회는 종교개혁 시기부터 이미 교회 내의 직분을 위계체계가 아닌 역할에 따른 수평적 개념으로 분화하고 목사 임직을 비롯한 중요한 결정을 교회 구성원 전체가 참여해 이루어지도록 규정했다. 한 예로 칼빈이 제네바에서 체계화하여 실천한 네 직분론은 목사직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목사에게 교회 운영의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지 않고 교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 직분으로 교회 내의 직분을 나누고 각 직분에게 구별된 사역들을 할당했다.

이와 같은 역할에 따른 수평적 직분 수립이나 민주적 결정 시행은 단순히 제네바와 같은 도시 국가의 정치구조에 순응한 것이었거나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현실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 제도를 선택한 것은 소극적으로는 로마 교황제도와 급진 개혁 세력의 인간 중심적 교회 제도가 빚낸 독재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전 14:33) 또 적극적으로는 각 직분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교회의 중요 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를 세움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한 통치가 교회 구성원 전체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었다. 교회의 모든 직분들과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 함께 말씀의 기준에 비추어 교회의 한계와 오류들을 함께 깨닫고 반성하며 개혁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함께 지어져 갈 수 있다.(엡 2:21-22)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당회의 운영이나 상위 치리 기구로서의 노회, 대회, 그리고 총회의 3심제를 선택한 장로교의 정치 제도 역시 모두 제도를 시행하는 인간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교회 전체에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한 주권이 실현되게 하려 했던 실천 노력들이었다.

즉 각 직분과 치리 단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말씀에 따른 반성의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사사로운 개인이나 특정 계층의 주도에 의해 말씀의 질서가 손상되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침해당할 가능성을 최대한 방지하려 한 것이다.(고전 2:5)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31장의 규정들이 지방 회의들과 총회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회의들의 오류 가능성과 권한의 한계를 명확히 밝힌 것은 이와 같은 개혁신학의 교회 이해를 잘 보여준다.
 
5. 장로교 정치 제도의 실천을 위한 노력
 
근대 민주주의 사상이 등장해 자리 잡기 이전에 장로교회는 공동체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사상적 기초와 제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민주적 제도를 수립함에 있어 근대 민주주의 제도와는 구별되는 신학적 이해를 그 기초로 삼았다. 그것은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통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교회론적 이해였다. 종교개혁 시대 이후 다양한 발전과 적용 속에서도 장로교 제도가 영적으로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개혁신학의 분명하고 일관된 교회론과 그 구현을 위한 실천 노력이었다.

현대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도 장로교회가 정치 제도와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개혁신학의 역사적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는 인간의 합의로 만들어진 합의체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원 역사의 성취를 위해 세우신 영적 유기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집중이다. 한국장로교회가 이런 개혁신학의 역사적 유산 위에서 “개혁된 교회를 항상 개혁하는(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종말론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자신의 주장과 권한을 스스로 낮추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체들이 경쟁의 대상이나 인간적 성취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함께 온전하게 자라나야 할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와 자매들이며 동역자임을 기억하고 사랑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바른 연합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말씀에 따른 영적 질서를 실제로 드러내야 할 지상 교회의 과제는 각 개인들의 헌신뿐 아니라 바른 교회 정치 제도의 수립과 개선을 위한 교회 전체의 노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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