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청중의 입장서 ‘듣는’ 설교학 필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설교자의 설교 사역을 위한 관점에서 청중 분석의 필요성과 그 근거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 청중의 입장에서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 즉 원리적 이유와 실천적 이유가 있다. 첫째, 청중의 입장에서 설교 청취가 필요한 원리적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특정 개인(설교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실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의 설교를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교회 공동체의 영적 자산이다. 왜냐하면 태초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교회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온 세상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선포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마 28:19~20, 막 16:15). 그러므로 설교의 청중인 성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청중의 입장에서 설교 청취를 논의해야 할 실천적 이유로서, 현대 교회는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바 청중들의 건강한 설교 청취 훈련이 결핍되어 있다. 하나님 말씀의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설교자들을 위한 설교의 기술 또는 설교학 책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지만, 청중들의 올바른 설교 청취를 위한 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설교자나 목회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하는’ 설교학이 아닌, 청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듣는’ 설교학이 필요하다. 청중이 설교를 바르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설교자는 더욱 좋은 설교를 위한 도전과 격려를 받기 때문이다.

설교 청취에 있어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다. 우리 각자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듯이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는 설교청취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요소이다. 만일 설교자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나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귀는 선입견에 의해 설교자의 메시지에 대해 이미 닫히고 만다. 이것은 연약하고 부패한 성정을 지닌 우리 모두의 현주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일차적 전제 조건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설교자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와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처럼, 설교자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고전 4:1),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의 대사로 여겨야 한다(고후 5:18~20).

성경은 청중의 입장에서 설교 청취에 대해, 다시 말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반복적으로 교훈한다.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주의하라”(눅 8:18). “귀 있는 자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3장). 바이올린 연주자는 연주하기 전에 반드시 네 개의 줄(G, D, A, E)을 정확한 음으로 맞추는 작업을 한다. 아무리 탁월한 연주자라 할지라도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악기로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를 바르게 듣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사현줄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맞추어 조율해야 한다.

첫째, 설교를 경외함으로 듣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의 설교된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살전 2:13). 이는 경외함과 겸손함, 그리고 믿음으로 들었다는 의미인데, 바울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존전(Coram Deo)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설교의 청취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잊고 만다. 현대 교회가 직면한 커다란 위기 가운데 하나는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부족이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성경에 대한 설교자의 견해나 해석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되는 설교 시간은 우리 영혼의 천국과 지옥, 영생과 영벌이 가름되는 엄숙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의 말씀을 사소한 인간의 이야기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롯의 사위들은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다가 소돔 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다(창 19:14).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히 11:6, 참조, 막 11:22, 행 16:31).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믿지 않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다가오는 주일에는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은혜를 풍성히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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