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대 선교사(GMS 일본)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선교에 적신호가 온 셈이다. 한국교회는 오해로 일본 선교에 소홀한 편이다. 선교열정이 세계 어느 교회보다도 뜨거운 한국교회는 원수 사랑을 가르치면서도 일본만은 쉽게 용서가 안 되는 모양이다. 과거사나 영토분쟁, 우익들의 망언 등 때문이다. 게다가 선교의 효율성마저 떨어진다.

일본은 신기할 정도로 결신율이 낮다. 많은 이유들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선교 초기 상황은 훨씬 조건이 안 좋았다. 모든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만드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불순종 아래 가두어 두심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다.(롬11:32) 일본 선교사들은 열심히 땅을 파고 거름을 주었는데도 원체 척박한 땅이다 보니 좀처럼 열매가 맺히지 않는 답답한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일본선교 무용론을 말하기도 한다.

일본은 잡신들을 많이 섬긴다고 하지만 필자가 친근하게 지내는 일본인들에게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본인들 절대 다수가 무신론자들이다. 미신이 성행하지만 거기에는 진정성이 전혀 없다. 일본선교의 진정한 난점은 기존 종교를 고집하는 보수성과 복음전파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다. 지인이 아닌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무례로 생각하고 다시는 만나주지 않는다. 관계형성이 되었을 때에 복음전파가 가능한데 그나마도 좀처럼 결신하지 않는다. 어렵사리 교회까지 데려왔는데도 몇 년이 걸려도 안 믿어진다면서 세례를 거부하거나 출석을 중단한다. 왜 그들이 쉽게 결신하지 않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할 뿐이다.

필자가 일본선교를 결정한 동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원수사랑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효율성보다는 순종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는 입장에서 잘 안 되는 선교이기에 오히려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일본은 인구 1억 3000만 명 중, 개신교 복음화율이 0.44%밖에 되지 않는 거대한 미전도 종족이다. 선교적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은 적대국이 아니라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불쌍한 이웃이다. 거기에도 누군가가 가야 한다면 순종할 뿐이다. 선교는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의 위엄과 사랑 앞에 무릎 꿇리는 행위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하심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거사 때문에라도 한국교회를 통해서 일본 복음화를 이루시려 할 것 같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이 제대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효과적인 장소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양떼를 찾아오라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구석구석 숨어있는 양떼들을 다 찾아오라는 것이다. 일백 마리 양 중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그냥 두고 험산준령을 헤매던 목자의 비유를 생각한다면 생명의 문제는 숫자로 따질 수 없는 문제이다. 일본선교에 대한 우리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하실까? 단 한 사람의 잃어버린 바 된 자기 백성이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하실 것이다.

시대에 따라 선교 부흥지가 서향하면서 이동해 왔음을 생각한다면 일본선교도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일본에서 서양 선교사들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끈기 있게 버티고 있는 선교사들은 한국 선교사들이다.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효과(Pygmalion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선교에 좀 더 기대를 걸어주고 당장의 결과에 관계없이 칭찬이 있을 것이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격려해 주고 소신껏 복음을 외치며 보람과 기쁨이 있는 선교 현장이 되도록 힘껏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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