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선교사 제도적 뒷받침 급하다”
뛰어난 행정 역량 발휘, 선교사역 최전선 … “남성 중심 규정 바꿔야”


 

▲ 배영선 선교사는 뛰어난 행정력과 강직한 성품으로 개척사역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어떤 의미있는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어지는 든든한 얼굴. 배영선 선교사(총회세계선교회)가 그런 인물이다.

배 선교사는 1987년 선교사역을 시작했을때부터 지금까지 개척의 일선에 서서 일했다. 그는 오엠에프선교회(OMF) 소속으로 대만의 한 침례교회에서 현지인 목회자와 동역을 했다. 그곳에서 한국의 제자훈련 교재 3권을 번역했으며 제자훈련을 전파했다. 그 결과 20명이었던 교회가 120명으로 부흥했다.

두 번째 사역지도 대만의 오순절계통의 개척교회였다. 배 선교사는 현지인 전도사에게 사례를 받지 말고 성도들을 가족처럼 섬기라고 조언했다. 또 제자훈련 사역을 도왔다. 2년여 동역을 했을 때 교회는 부흥했고 현지인 전도사는 한 신학교의 교육위원이 될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대만과 중국을 오가면서 사역을 하다가 귀국하여 오엠에프선교회 훈련원의 책임을 맡았다. 또 중국인 유학생 교회에서 중국어로 설교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담임 사역자로서 사역했다. 그는 국내 사역을 마치고 중국 본토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오엠에프선교회를 사직하고 총회세계선교회(GMS)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배 선교사를 본 총회세계선교회 선교사들은 현지 사역보다 선교회 본부에 근무하면서 자신들을 후방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다. 배 선교사의 뛰어난 행정력을 높이 샀던 때문이었다.

배 선교사는 선교사들의 간곡한 요청을 이기지 못하고 총회세계선교회 본부의 중국담당 국장과 행정국장으로 사역을 했다. 한때 신설됐던 여성과의 과장으로서 여성선교사들의 리더십 향상을 위해 일하기도 했고, 이때 지역선교부 운영 매뉴얼을 만들었다. 총회세계선교회에서 해외구호를 위해 한민족사랑네트워크를 만들었을 때는 사무국장이 되어 국제구호사역에도 뛰어들게 된다. 이후 이 한민족사랑네트워크는 해피나우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고 그는 상근을 하면서 아이티 재난 구호를 위해 전국교회의 도움을 호소하는 데 앞장섰다. 배 선교사는 역량을 십분발휘해서 손 대는 것마다 작품을 만들어 냈으나 그가 입은 상처는 적지 않았다. 한편 그는 공부하는 선교사이기도 했다. 중국 남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Ph.D)를 수여받을 정도의 석학이다. 그가 쓴 논문은 <헨리조지 사상과 중국토지 개혁방안>이다.

배 선교사는 말한다. “지부장, 지역장, 본부부서장은 목사만 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총회세계선교회의 관련 규정을 삭제해야 합니다. 전문인 평신도 선교사와 여성선교사들도 리더로 세워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줘야 합니다.” 또 그는 “독신여성 선교사와 사모 선교사들도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면서 “여성선교사들은 여성선교사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선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2400명에 달하는 총회세계선교회 선교사 가운데 독신을 포함한 여성선교사의 숫자는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116개 선교지부 가운데 여성 지부장이 있는 곳은 3군데이며 16개 지역선교부에서 여성지역대표가 나왔던 경우는 대리로서 단 한번 뿐이었다. 선교사회 임원으로 부회장까지 역임한 경우는 배 선교사가 유일하다. 65세로 은퇴가 몇해 남지 않았으나 배 선교사가 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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