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 목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최근 신경숙 씨의 표절문제로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 그것보다 몇 달 앞서 몇몇 신학자들의 저서에 대한 표절 문제 제기가 기독교계의 핫이슈로 부상했다.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목사들의 설교표절 문제는 이전부터 종종 지적되어왔지만, 신학자들의 저서에 대한 표절 시비는 한국 신학계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신학 저서에 대한 표절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저자들은 그 기준에 동의할 수 없기에 어떤 조치를 취하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나 책의 저자들, 그리고 출판사가 뒤엉겨 씨름하고 있는 와중에 이 문제의 광의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신학교와 신학계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서로 친분관계로 얽혀 있기에 섣불리 개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사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지금 이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설령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금처럼 개인이나 사적 그룹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사후조치는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 대 개인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거나, 여론재판에 의해 객관성보다는 주관적인 의혹제기와 그로 인한 인신공격이 난무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현 상황이 안타깝지만 오히려 이번 사태를 전향적인 조치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예전에 표절이 큰 이슈가 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2007년에 ‘저작권법상 표절 기준 및 표절 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표절 검색 시스템’을 구축하고 ‘표절 심사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하였다. 비록 예산상의 이유로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표절문제 근절을 위한 정부의 의지 표명 이후 초중고를 비롯하여 많은 대학들에서 국제적인 표절 검색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자체적으로 표절을 검사할 수 있게 하였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표절 문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소한 표절 방지를 위한 시스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많은 관계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신학교나 기독출판사 협회, 그리고 신학회 차원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표절 검색 시스템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할 뿐이다. 해석하고 사후조치를 취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표절 문제를 다룰 공신력 있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경숙 표절 사건으로 인해 ‘한국문인협회’나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등이 표절 문제를 다룰 ‘문학표절문제연구소’를 설치하고 표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교계와 신학계도 표절의 기준 설정, 표절 여부에 대한 판정, 표절 확인 후 사후 조치와 같은 이슈들을 총망라해서 다룰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교단 연합 차원에서 일이 진행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신학교 연합이나 신학 학회(예를 들어, 기독교학회나 복음주의신학회) 차원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표절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는 개인의 비리를 찾아내 망신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정직한 저술 풍토를 만들어야 한국 신학계가 더욱 발전하고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문제는 이제 봇물이 터졌다. 앞으로 계속 더러운 물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합리적이고 진실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서 교회와 신학을 정화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에 겪는 일은 산고의 진통처럼 값진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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