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개혁주의 장로교 교리 ③ 오직 믿음으로:단번에 주신 믿음의 성도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 … 오직 믿음을 보시고 무조건적 은총을 베푸셔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 믿음과 소망은 같이 있으되 오직 사랑으로 역사한다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 문병호 교수(총신대·조직신학)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신약시대에는 물론 구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합 2:4; 롬 1:17; 갈 3:11).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시대에는 행위로 구원에 이르고 신약시대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그릇된 교리에 빠져있다. ‘믿음의 장’이라고 일컫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서 우리는 구약시대 “선진들”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히 11: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히 11:8). 믿음으로,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만들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히 11:27). 믿음으로, 사라는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히 11:11).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실 줄 생각하고 바쳤다(히 11:19). 믿음으로, 모세는 위에서 베푸실 상을 바라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욱 즐거워하였다(히 11:25-26).

과연 믿음이 무엇인가? 우리는 ‘신자(信者)’이자 ‘성도(聖徒)’로서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은 믿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믿음밖에 없다. 어떤 공로, 자질, 족보, 신분도 찾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어도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

예수님이 유일하게 칭찬하신 것이 믿음이다. 힘이 있다고, 돈이 있다고, 똑똑하다고 칭찬하지 아니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라고 하시면서 믿음을 칭찬하셨다. 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열 두해 혈루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라도(막 5:25-34), 맹인 거지 바디매오도(막 10:46-52), 이방 백부장이라도(눅 7:2-10), 믿음만 있으면 칭찬하셨다. 반면에 주님은 믿음 없음만 나무라셨다. 무능하다고, 게으르다고, 천하다고, 가난하다고, 문제 삼지 아니하셨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눅 9:41),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8:26) 하시면서 불신(不信)을 책망하셨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믿음만 헤아리신다. 무조건적인 은총을 베푸시되, 오직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하신다. 믿음이 공로는 아니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히 11:6). 어거스틴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주지 않으신 것은 찾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게 하시고, 우리 안에서 믿음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믿음도 은혜이며, 은혜가 믿음보다 앞선다. 달리 말하면, 믿음은 오직 은혜로만 역사한다. 그러므로 이를 극단적으로 왜곡하여 믿음에서 공로의 요소를 찾고자 하는 로마 가톨릭이나 요사이 논란이 많은 ‘소위 바울신학의 새 관점’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들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한(롬 4:6) 무지(無知)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2. 믿음의 본질:성령의 역사(役事)로 말미암은 말씀의 감화
 
믿음은 오감(五感)을 통한 지각적인 인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照明)과 감화(感化)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내적 정서 혹은 상태를 뜻한다(롬 1:5). 믿음의 자리는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롬 10:10).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부여된다(살전 1:4-5; 딛 1:1).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로 성도는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생명의 길에 서게 된다(유 1:3).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마 15:13), ‘참 믿음’을 가지고 끝내 파선(破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딤전 1:19; 3:9).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도의 구원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인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1:23).

믿음이 “지식” 혹은 “인식”이라고 불리는 것은(엡 1:17; 4:13; 골 1:9; 3:10; 딤전 2:4; 딛 1:1; 몬 6: 벧후 2:21; 요일 3:2),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동과 확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믿음을 지식이라고 할 때, 이는 단지 감각적인 지식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서는 믿는 것이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올바로 인정하는 ‘아멘’이 믿음의 본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 하나님께 속한 비밀스러운 경륜이 우리 안에서 계시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우리는 성령의 내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시는 객관적 진리로 시인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고유하게 주시는 주관적 진리로서 확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시 12:6; 18:30; 잠 30:5)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게 된다(골 2:2; 살전 1:5; 히 6:11; 10:22). 믿음에서 확신이 생기고 확신에서 “담대함”이 생긴다고(엡 3:12) 사도는 말한다. 성령은 우리를 정결케 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우신다. 그리고 아는 바대로 지키며 살게 하신다(딤후 1:14).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갈 3:2; 롬 10:17). 이는 믿음이 선행(先行)하고 성령의 임재가 후속(後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성령의 임재가 확정됨을 뜻한다. 우리에게 임한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이다(요 14:16-17; 15:26; 16:13).

말씀은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한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고(롬 1:17; 빌 3:9), 오직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알게 된다(히 11:3). 믿는 것이 아는 것이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모르는 것을 믿지 않고(요 3:22), “영과 진리”로 알고 믿는다(요 3:24). 세상에서는 보아서 알고 믿지만, 우리는 믿어서 알고 본다(요 14:7-9). ‘오직 믿음(sola fide)’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믿는 것이다. 마치 거울이 빛에만 반응하듯이 믿음은 말씀에만 반응한다. 말씀은 믿음으로만 깨달아진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보증”이신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치시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부른다(엡 1:14; 고후 1:22; 롬 10:8; 딤전 4:6;).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과 내 입에 가까이 거한다(신 30:14).
 
3. 믿음의 비밀: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써 구원을 얻는다(롬 10:6). 성도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에 행위를 더함은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믿음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한다(고전 2:4-5). “믿음의 역사”는(살후 1:11)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오직 성령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찰한다(고전 2:10-16).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는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롬 8:15; 갈 4:6).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심을 확신하고 그가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된다(골 2:3; 요 14:20, 26; 갈 2:20).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취게 된다(고후 4:6).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이는 우리가 그 비밀인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기 때문이다(골 2:2; 요 1:12; 13:20).

믿음은 은혜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 곧 우리 속에 믿음이 있음을 믿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주시지 않은 것은 찾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찾으신다. 그 믿음을 겨자씨만큼이라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과 같이 사람에게 맞고, 물에 빠뜨림을 당하고, 광야에 팽개침을 당하고, 먹지 못하고, 속에 눌리는 것이 많아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다(고후 11:23-28). “믿음의 비밀”은(딤전 3:9)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 나아갈 수 없으나 나아가는 것, 도무지 거동도 할 수 없는 감옥에서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리라”고 외치며 나아가는 것에 있다(빌 4: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 곧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요 6:29). 주님에게 믿음의 칭찬을 받은 사람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던가? 열두 해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무엇을 했는가? 소경 바디매오는? 백부장은? 그들이 한 일은 한 가지 밖에 없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같이 그들은 나아갈 수 없는 가운데 주님께 나아갔을 뿐이다. 주님은 오직 믿음만을 칭찬하신다. 오직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만을 기뻐하신다.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나아오라고만 하신다. 목마른 자도, 돈 없는 자도 나아오라 하신다.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신다(사 55: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만 그 믿음이 있다(히 11:6). “내게 오는 자”가 “나를 믿는 자”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믿음은 주님을 바라며 나아가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곧 소망의 실상이다(히 11:1).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고 참는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참 소망이기 때문이다(롬 8:24-25). 믿음과 소망은 같이 있으되(벧전 1:21)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한다(갈 5:6). 이렇듯,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모두 전적인 은혜로다(살전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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