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 있자면 설교가 설교집이 되어 여전히 쏟아져 나오는 게 마뜩찮다. 일테면 정치인들이 때가 되면 집집마다 돌리는 의정보고서를 보는 느낌이다. 저자 이름을 가리면 누구의 것인지 변별하기 힘든 구성과 내용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설교집은 저자와 출판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대표적인 출판 관행이다. 보통명사가 된 ‘출판 불황’ 시대에 생존을 위한 몇 안 되는 숨구멍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몇몇 파워 있는 저자를 제외하면 설교집은 편하지만 해묵은 옷과 같은 만듦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인터뷰에서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평가를 듣는다’는 질문에 대한 송태근 목사의 답변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목회 초기 송 목사는 맹인교회에서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설교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한테 불이 났다고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묘사로는 그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문자로 된 것을 전부 입체화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어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을 13년 동안 했다.”

‘말이 글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장르의 문제다. 언어인 설교의 감동을 문자인 설교집에 담는 건 훨씬 어렵다. 설교를 필사하듯 옮겨놓은 게 설교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송 목사가 글을 입체화하여 말로 전달했듯 말을 입체화하여 글로 표현해야 한다.

설교집이 좀 더 친절하고 예뻐지고 다양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초판인 설교 원문을 뛰어넘는 전면개정판을 제작한다는 심정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진이나 그림 자료, 주해는 물론 설교현장의 분위기 혹은 교인들의 반응 등을 넣어 제작하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았던 품이 들어가도 설교집이 별책부록이 아닌 별도의 완성된 단행본이 되어야 한다. 당장 범람하는 설교 동영상과 설교 팟캐스트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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