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시대이다. 비록 기세가 한 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메르스라는 이름 앞에 사람들은 여전히 몸서리친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가까웠던 사이들을 떨어뜨려 놓았다. 한 사무실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직장 동료나,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며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들, 오랫동안 한 교회에서 믿음의 교제를 해 온 교우들마저도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모시켰다.

상황이 이 정도니 하물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마치 교도소 죄수들 마냥 그저 숫자 몇 번으로 불리는 익명의 환자들 그리고 잠재적 보균자나 다름없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은 오죽할까.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단지 메르스 자체만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확산되는 불안 그리고 원망으로 우리 사회의 연대가 무너지는 일을 어쩌면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완치판정을 받은 환자의 신상을 함부로 공개하고,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철주야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 자녀들의 등굣길을 가로막는 행태들.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도 느꼈듯이 타인이 겪는 고통이나 아픔에는 공감하지 못한 채 그저 내 입장만 챙기고 애먼 피해자들을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대하며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 등골이 서늘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공포에 주눅 든 채 손 놓고 있거나, 피해의식에 몰입한 집단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불분명한 소문과 괴담에 휩쓸려 비난하고 배척할 대상을 찾는데 골몰하는 게 우리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어느 목사님이 보내온 편지의 일부를 소개하며, 한국교회가 민족을 치유하는 자기 자리를 침착하게 찾기를 기원한다.

“행여 메르스 사태가 중동과 교역하려는 정부 그리고 동성애주의자들의 퀴어 축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판단을 유보했으면 합니다. 기독교인은 의인에 자리에서 그들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책임 있는 죄인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부디 금번 메르스 사태를 교훈 삼아 국민 보건 증진에 획을 긋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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