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설교자여, 이 땅의 신문을 읽어라”
 

설교란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동적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설교란 설교자가 하나님의 회중이 모인 장소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풀어 해설하고 오늘의 청중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설교에는 설교의 주도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제외하고, 수평적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세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다. 바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 메시지인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듣는 ‘청중’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설교자를 중심으로 설교자의 소명과 권위, 설교자의 자격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해야 하며,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언제나 배우기를 힘쓰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제부터 말씀을 듣는 청중에게 관심을 기울여보자.

기본적으로 설교자가 청중을 알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교사가 학생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는 학생에 대한 이해와 능력 평가가 기본이다. 마찬가지로 설교 사역을 위한 설교자의 청중 이해와 평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회중에 대한 이해나 분석 없이 함부로 달려드는 설교자의 일방적 소통은 무모하기 짝이 없고,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회중 이해와 평가는 잘못된 목표를 지향하는 설교를 산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중평가는 설교자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며 직무라고 언급한 로이드 존스는 지적은 올바른 것이다. 미국의 강해설교 학자인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역시 “강해설교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메시지만큼이나 그 메시지를 듣는 자신의 청중들을 알아야 하고, 그런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과 회중 모두를 주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회중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설교자에게 올바르고 적실한 적용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흔히 ‘영혼의 의사(physicians of souls)’라고 불렸던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설교자들은 목회자가 반드시 연구하고 알아야 할 두 개의 책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이자 말씀인 성경책과 인간의 마음이라는 책을 언급하였다. 필자의 청교도 설교 연구에 의하면 그들은 이 두 책의 전문가요 대가였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성경의 전체 주제만 아니라 성경의 구석구석까지 훤히 아는 소위 ‘걸어 다니는 성경(Walking Bible)’이었다. 그들이 설교 중에 인용하는 성경 본문과 단어들이 과연 성경에 나와 있는지 확인하느라 필자는 셀 수도 없이 성경을 들춰보았다. 이렇게 확인하면서 그들에 비해 성경을 너무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Bible Works를 비롯한 뛰어난 성경 프로그램을 가진 설교자들은 언제든지 찾고 싶은 성경 단어를 검색하기만 하면 단번에 찾을 수 있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누리는 환경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전원이 나간 상태에서 컴퓨터나 Bible Works는 허망하게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 육신의 마음 판에 새기고 묵상함이 더욱 필요하리라! 전기가 나간 캄캄한 밤에, 그리고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말씀을 간직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한다.

성경을 밝히 아는 청교도 설교자들은 또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영혼의 의사’였다. 그들은 사람이 다양한 처지에서 가질 수 있는 온갖 마음의 경향들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아는 심리학자였다. 그들은 인간 공통의 기쁨과 슬픔, 소망과 절망, 질병과 고통 속에서 일어나는 각기 다른 욕망들을 낱낱이 아는 신학자요, 목회자요, 상담자였다. 그들은 “영혼의 거울”(어거스틴) 혹은 “영혼의 해부도”(칼빈)라고 불린 시편의 대가들이었다. 동시에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진단하며 마음의 훈련에 힘쓴 성도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설교 속에 나오는 간절한 호소와 간청은 청중들의 폐부를 뚫고 들어가 은밀한 거짓과 탐욕의 암 덩어리를 말씀의 메스로 사정없이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청교도의 후예인 19세기 영국의 찰스 스펄전이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성경만 아니라 세상 속의 청중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성경과 신문』이라는 책에서 존 뉴턴(John Newton)의 말을 인용하면서 서문을 시작한다. “내가 신문을 읽는 것은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스펄전은 이것이 “진실로 매우 탁월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젊은 신학자들에게 “성경과 신문, 둘 다 읽으시오. 하지만 여러분의 성경으로 신문을 해석하시오”라고 조언하였다.

과연 하늘의 진리를 오늘의 청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설교자는 이 땅의 신문을 읽어야 하리라. 성경의 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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