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혁주의 장로교 말씀 주해 ⑧오직 성경으로:개혁주의 성경론

성경과 성령은 개혁신학 두 축 … 성령 감화에 순종하는 지식만이 하나님이 주신 지식
성경의 궁극적인 해석자는 성경 그 자체 … 오직 ‘성경의’ 신학만이 ‘성경적’ 신학이다



1.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원리: 성경의 기본 가르침

▲ 문병호 교수(총신대·조직신학)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기치로 내세웠다. 개인적인 자질이나 선행(善行)의 공로가 없어도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생명의 복음이 천년의 중세 암흑기를 뒤로하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로마 가톨릭의 우상숭배와 면죄부에 파묻혀 살던 사람들이 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전하기 시작하였다. 중세의 ‘보는 예배’가 이제 ‘듣는 예배’로 바뀌었다. 각국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고 신앙고백서와 신앙교육서가 저술되었다. 성경주석이 앞다투어 집필되었으며 설교집이 속속 발간되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로마 가톨릭의 핍박으로 인하여 많은 순교자가 속출했지만,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롬 1:16).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구호로 시작되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17의 말씀이 그 근간이 되었다.

‘오직 믿음’은 교회의 전통이나 의식(儀式)이나 교황이나 사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을 믿음’을 뜻했다. 그리하여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구호가 뒤따랐다.

‘오직 성경을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을 뜻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롬 10:17. 참조. 눅 24:27; 요 5:46). 그리하여 ‘오직 그리스도로(solo Christo)’라는 구호가 뒤따랐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은 ‘오직 은혜를 믿음’을 뜻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의를(요 19:30) 값없이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며, 영화롭게 된다(롬 8:30).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로 “많은 사람”이 새 생명을 얻게 된다(롬 5:15). 그리하여 ‘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구호가 뒤따랐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에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을 찬미하는 송축과 송영이 필히 수반된다(롬 4:6).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대속의 의를 이루게 하시고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은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엡 1:6).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이라는 구호가 뒤따랐다.

이상 다섯 가지 종교개혁 원리 중 ‘오직 성경으로’가 전체를 포괄한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 안에 나머지 네 가지 원리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리를 한 문장에 묶어보면 다음과 같다.

오직 말씀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오직 믿어, 오직 은혜로, 거저 구원을 얻었으니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자!
 
2. 성경의 무오:영감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계시(自己啓示)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이시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기록물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권위(authority)는 그 저자(author)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서부터 비롯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인간 저자들을 감동시켜 기록하게 하셨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성령의 기관(器官)들로서 사용되었다.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한 영의 조명(照明)과 감화(感化)로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즉 수납(受納)된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감동”은 ‘성령의 호흡을 불어넣으심(in-spiration)’ 곧 ‘영감(inspiration)’을 뜻한다. 성령의 영감은 계시구술(啓示口述)의 영감과 계시기록(啓示記錄)의 영감을 포함한다. 계시구술의 영감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작용하는 성령의 내적역사를 뜻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사”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되”와 같은 전형적인 표현들이 이와 관련된다.

계시기록의 영감은 받은 말씀을 기록하는데 작용하는 성령의 내적역사를 뜻한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단지 기계와 같이 성령에 의해서 진술된 대로 개성 없이 대서자(大書者, amanuensis)와 같이 받아 쓴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 가운데 자신들의 성격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문화, 어휘, 문체, 스타일 등을 사용하여 계시를 기록했다. 그들은 신앙 경험(특히 시편 기자), 목도한 것(누가), 역사적 상황(특히 선지서들) 등을 반영한 기록을 남겼다. 성령의 영감은 계시구술과 계시기록, 계시의 내용과 그 문자들에게도 미치는데, 영감된 문장과 어휘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성경저자들에게 공급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 영감(有機的 靈感, organic inspiration)이 있으며, 영감으로 인해 표현된 성경 저자들의 독특한 인격성을 반영하는 기록은 오류가 없다.

성령의 영감은 성경 전부에 미친다. 사상이나 규범이나 도덕과 함께 역사적 과학적 사실에도, 내용과 함께 문장과 어절과 자구(字句)에도 미친다. 성경에 미친 성령의 영감이 전체적(plenary)이고 축자적(逐字的, verbal)이므로 성경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무오(無誤)하다. 그러므로 소위 ‘정경 속의 정경’을 말하면서 성경의 일부를 부인하거나, 폐기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초대교회 말씨온(Marcion)은 구약은 전부 부인하고, 복음서 가운데는 누가복음만 받고, 바울의 서신 가운데는 10개만 수용한다. 루터(Martin Luther)에게도 이러한 경향이 남아 있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설교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지 않는 성경은 배격한다’는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의 “심장과 골수”로서 요한복음, 요한일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베드로전서를 들고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주요한 책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다.

이들이 정경을 축소해서 보는 반면 로마 가톨릭은 외경(外經, Apocrypha)을 “이차적 정경”이라고 해서 받아들인다(토빗, 유딧, 마카베 상, 마카베 하, 솔로몬의 지혜, 시락 혹은 집회서, 바룩). 그러나 우리가 따르는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신앙고백서) 제1장 2-3조는 신구약 66권만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외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아무 권위도 없고 여느 인생의 글과 다를 바 없이 여기며 그 이상으로 달리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3. 성경과 성령:개혁신학의 두 축
 
성경과 성령은 개혁신학의 두 축을 형성한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성령의 조명과 감화에 복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의 제자가 된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모든 지식은 순종으로부터 태어난다”고 하였다. 우리가 받은 보혜사 성령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 14:6) “그리스도의 영”이시므로(롬 8:9; 빌 1:19), 우리 가운데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신다(요 14:17, 26; 15:26; 16:12). 성도가 타고 있는 배가 말씀이라면 그것은 오직 성령의 방향타(方向舵)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성령의 통치로 말미암아 성경은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성도에게 작용한다. 성경은 인생의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으로 독해할 수 없다.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화에 따른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 곧 계시로 받아들여진다. 말씀을 들음은 성령의 언어적 감화에 순종함이다(롬 1:5). 성령의 감화가 있을 때 성경은 혼란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아서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뜻을 보여주는 “안경”의 기능을 하며, 불가해한 미로(迷路)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는 “실(絲)”의 역할을 하고, 언약의 백성이 자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별한 학교”가 된다.

성경은 살아계셔서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살아있는 말씀이다. 성경은 성령의 내적이며 은밀한 증거에 의해서 우리에게 진리로서 확증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스스로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 편에서 만들어지거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객관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새벽빛과 같이 어김없이 우리에게 임한다(호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9:21).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가 객관적으로 인정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확신에 이르게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의 하나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이 지금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게 한다(딤후 3:14).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지식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 지식이다.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 명료하고 간결하게 제시되어 있으므로 택함 받은 백성은 누구든지 성령의 감화로 그 진리를 온전히 수납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완전하고 충족한 계시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계시는 없다. 성경의 궁극적인 해석자는 성경 자체이다. 성경은 성경 가운데 읽어야 한다. 세상의 사조나 철학이 성경을 규정할 수 없다. 오직 ‘성경의(of the Bible)’ 신학만이 ‘성경적(Biblical)’ 신학이다. 성경은 “믿음의 분수대로”-곧 신앙의 유비-로 받아들여야 한다(롬 12:6).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벧후 1:20-21). 신구약 성경은 함께 읽어야 한다. 성경은 구원의 지식, 영생의 지식을 담고 있으므로 고백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 말씀이 우리의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입술에, 우리 마음에 있다(신 3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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