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기도 없는 설교는 영혼 죽이는 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기도를 소홀히 여기는 설교자는 찰스 스펄전이 지적한 것처럼 마치 ‘절름발이’와 같다. 그의 기도가 설교보다 짧기 때문이다. 기도에 관한 깊은 통찰력으로 교훈을 주는 바운즈(E. M. Bounds)는 <기도의 능력>에서 기도의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뿐 아니라 “기도가 없는 설교”는 “영혼을 죽이는 설교”라고 거침없이 폭로한다. 왜냐하면 기도의 골방에서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설교자가 빚어지고, 기도의 골방에서 비로소 진정한 설교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개혁주의 신학자인 푸치우스(G. Voetius)는 서재의 수많은 책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더 바르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동일한 맥락에서 스펄전 역시 기도의 골방을 강조한다. “우리의 모든 책들과 학문은 우리의 기도의 골방에 비하면 그저 헛된 것에 불과하다.”

필자가 이것을 언급한 이유는 설교자에게 학문과 연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설교를 위한 주석과 학문에만 의존한 채, 기도로 촉촉이 적셔지지 않은 메마른 설교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설교자에게 기도의 중요성은 교회 역사에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설교자에게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애굽기 34장 29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번째 돌 판을 들고 내려올 때에 자신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한다.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난 까닭은 모세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현상이었다. 즉 모세는 여호와와 대면하여 말하였기에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얼굴 피부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난 것이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설교자는 십계명에 기록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전하기에 앞서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도의 골방이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사하기에 앞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의 교제를 가져야 한다. 기도의 골방을 지난 설교자는 비록 스스로 깨닫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자연스럽게 배인 거룩의 체취가 묻어나게 된다.

이처럼 기도란 설교자에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설교자들이 왜 기도에 실패하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 지구촌 여러 나라의 목회자들과 달리 매일 새벽기도와 정기적인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를 갖는 한국의 설교자들은 기도에 실패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규적 기도시간이 기도의 영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가 기도에 실패하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목회사역의 분주함, 게으름, 쳇바퀴 돌듯 파묻힌 일상의 삶 등등. 하지만 설교자들이 기도에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의 영적, 내면적 특성에 있다. 목회자의 여러 외적인 활동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만, 기도는 그 영적인 특성상 내면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설교자의 기도의 영성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실상 목회자의 삶 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도의 영성인 것이다. 모세가 여호와와 대면하였기에 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듯, 기도의 골방을 지난 설교자는 비록 자신이 깨닫지 못할지라도 그의 설교를 비롯한 모든 사역 가운데 거룩의 영성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이다. 기도의 향기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고,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

바이올린 연주자들 사이에 잘 알려진 금언이 있다.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연주자 본인이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지도 교수가 알고, 사흘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섬세한 음을 연주하기 위해 정확하게 손가락을 짚어야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훈련이 필요하다면, 영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짚어야 하는 설교자에겐 더더욱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설교가 결코 사람의 “설득력 있는 지혜로운 말로” 성취되지 않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성취된다면(고전 2:4, 10), 설교자는 성령의 은혜를 갈구하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설교 사역이 사람의 노력이나 재능에 의존하는 인간적 경영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수행되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라면, 설교자는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골방을 통과한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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