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장합신 이대위 공청회로 곤혹치르는 두날개선교회 김성곤 목사

당시 특별한 문제없이 사용되던 용어…문제 지적하면 끊임없이 수정·감수 통해 새 교재 발간
‘여러 이단내용 모방했다’ ‘교회 틀 파괴한다’는 주장은 큰 오해…무고한 비판은 법적 소송할 것

 

▲ 예장합신 이대위로부터 오해받고 있는 김성곤 목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합동 총회의 중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18일 일방적으로 강행된 예장 합신 이대위의 ‘두날개 이단성에 대한 공청회’ 내용에 대해, 당사자인 두날개선교회 대표인 김성곤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두날개측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김성곤 목사와의 인터뷰는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이메일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했다.
 
▲합신측 이대위의 공청회 직전 기자회견을 열어 공청회 취소를 요청했다. 한편에서는 오히려 공청회를 통해 두 날개의 정당성을 주장하면 좋은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현재 제가 속한 합동 교단은 물론 ‘두 날개의 이단성 공청회’를 강행해 마치 두 날개가 이단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고의적으로 신문에 공고를 내고 공청회를 강행한 합신 등 여러 교단의 교회들이 ‘두 날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목회자는 물론 그 교회에 속한 교인들에게 사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공청회는 신학적 문제를 논박하는 자리이기에 제한된 시간 내에서 충분히 사실 여부를 가리기 전에 공청회를 주관하는 편의 일방적 주장만 관철될 소지가 크다. 그래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합신 이대위측에 두 날개의 문제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가급적 서면이나 제가 직접 합신 이대위의 질의에 응답해주겠노라 했다. 뿐 만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재 전부를 합신 이대위에 보내기도 했고, 수차례 전화도 했으며,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청원을 했다.

그 이전에 온갖 이단들과 유사한 용어 등을 사용한다며 저와 두 날개 교회들에 대해 왜곡되게 비난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 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는 물론 두 날개 지역장 목사님들에게도 억울하고 논박할 말이 있어도 댓글을 달지 말 것을 부탁드렸다. 왜냐하면 인터넷에 댓글이나 악플로 불이 붙게 되면 결국에는 두 날개를 하는 교회들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서다. 사람들은 사실 여부를 정확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이고 좋은 말보다는 부정적이고 비판하는 말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에, 두 날개를 향한 비판들에 대해 모르던 교인들의 마음에게까지 상처가 갈 것을 염려해서 철저한 침묵을 했던 것이다.
 
▲합신 이대위 공청회 중지 요청이 합동 교단의 노회와 총회 차원에서, 심지어 소속 합신 총회 차원에서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합신 이대위는 공청회를 강행했다.
=공청회 사회를 맡으셨던 합신 이대위의 유영권 목사님은 공청회를 하는 이유에 대해 합신 교단에 두 날개를 하는 교회들에게 바른 선택의 기회를 주어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며, 두 날개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활성화되도록 돕기 위한 목적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하지만, 저는 과연 공청회의 실제적인 내용과 결과가 그리했는지를 묻고 싶다. 오히려 공청회를 통해서 두 날개를 하는 교회들은 물론 합동과 합신 교단간, 심지어 합신 교단 안에서 어려움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결과가 뻔히 예상되기에 합동뿐만 아니라 합신 교단내 두 날개를 하고 있는 교회들이 합신 이대위의 그동안의 비판과 공청회 등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 달라는 내용의 헌의가 노회들에 올라왔었다.
 
▲이번 공청회와 관련해 세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요약적으로 합신 이대위 공청회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합신 이대위분들에게 저의 진정성을 설명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두 차례 합신 총회 이대위를 만났다. 문제가 되는 것들을 질문해 주고 지적해주면 답하고 고치겠다고 부탁했다. 저는 목회자이지 신학자가 아니니까 지적을 하면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합신 이대위에서는 공청회하기 전에 저에게 줄 질문지를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해놓고서는, 이번 공청회에서는 두 날개에 대해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다는 말을 한 것으로 들었다. 또한 이번 공청회 때 지적한 내용들은 작년 합신 총회 현장에서 뿌리려고 준비해 왔던 내용들과 다르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발표했다.

합신 총회 이대위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그분들에게 제 나름대로 준비한 답변서를 드리면서 “혹시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답을 할테니 제발 제 진정성을 좀 들어봐 달라”고 했다. 하지만 공청회때 사회자가 저의 답변서의 내용들은 합신 이대위가 생각지도 못한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고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이번 공청회때 발표했던 내용들은 이미 그때 제가 줬던 답변서의 내용들이기에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합신 이대위분들은 저에게 공청회를 열어야한다면서 공청회에서 절대 ‘이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두 날개에 대해 문의해오는 사람들에게 두 날개를 잘 이해해서 오히려 두 날개가 더욱 활성화되도록 하는 공청회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해주었다. 그러나 공청회 공고문을 합신 교단 신문에 고의적으로 ‘두 날개의 이단성에 대한 공청회에 초청합니다’라고 낼 때부터 약속을 깼다. 공청회 내용은 아예 저를 국내 수많은 이단들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모방한 사람으로 몰기 위해서 작정하시고 편집해 발표했다.

저의 아버님이 목사님이시고, 제 아들과 사위도 총신신대원출신의 전도사와 강도사다. 7살인 손주 역시도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 저는 제 자녀와 손주에게 좋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되고 싶고, 모범이 되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항상 바르게 하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공청회에 발표된 내용에 대해 개인적인 심정은 어떤가.
=수차례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목회자이지 신학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성경 외에는 절대 불변하는 진리는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하기에 문제를 지적 해오면 신학적으로 논박하기 보다는 서슴지 않고 수정해 왔고 앞으로도 수정할 것이다. 심지어 수 천 권에 달하는 기존의 교재들을 다 폐기해가면서까지 수정 편집해 새롭게 인쇄했다.

사실 합신 이대위가 지적한 대다수의 문제들은 교재를 만들 당시에는 특별한 문제없이 사용되던 표현들이었다. 예를 들면 ‘쓴 뿌리’, ‘견고한 진’, ‘가계에 흐르는 죄’, ‘중보기도’ 등이 그러하다. 사실은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이러한 용어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저는 그러한 문제들이 지적되자 서슴지 않고 아예 삭제하거나 수정해 왔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20년의 임상에 걸쳐 나온 결과들을 3년 여간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연구하여 26권의 ‘세계비전두날개프로세스’ 교재 전권을 새로 작성했다. 이 교재들을 새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펼쳐 놓고 교리적인 뼈대를 세웠으며, 오해를 살만한 모든 표현들을 새롭게 정리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중보기도’를 우리 교단에서 결의해 사용하기로 한 ‘도고기도’로 수정하고, 그 외 모든 표현들도 수정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내용에 있어서도 한 권, 한 권 모든 교재들을 박형용(웨신대 전 총장)·정인찬(웨신대 총장)·정일웅(총신대 전 총장)·김성수(고신대 전 총장) 박사님들을 비롯한 18분의 각 교단 신학 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의 현직 교수님들에게 감수를 의뢰해서 수정해준 내용들을 100% 수용해 새 교재를 발간했다.

그럼에도 합신 이대위는 새 교재가 아닌 예전의 교재 내용들에서 문제를 삼았다. 사실 지적한 대부분의 내용들은 예전의 ‘전인적치유수양회’에서 사용하던 내용들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내용들은 예전에는 큰 문제없이 사용되던 표현들이었지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에 모두 수정한 내용들이다. 심지어 2008년 중간에 수정해 출판하였던 교재들의 내용을 이번 ‘세계비전두날개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편찬해낸 교재들의 내용인 것처럼 말하면서, 새롭게 만든 교재들에서도 표현만 다르지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라는 억울한 말을 하고 있다. 실제 전쟁터에서도 백기를 드는 사람을 쏘는 것은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예전에 지적한 내용들을 수용해 수정함으로써 백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이단이라며 집중 사격을 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합신 이대위측은 목사님께서 여러 이단들의 내용을 모방해서 두 날개 제자훈련을 만들어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 그분들이 주로 지적하는 것은 이단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하기에 그 이단들의 영향을 받아 모방했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셀’을 말함으로 두 날개는 ‘셀 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두 날개 교회들은 셀 교회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교묘한 논리로 엮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두 날개 교회가 셀 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의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와 같은 정상적인 교회의 치리 기능을 부인하며, 심지어 셀 자체 내에서 세례를 베풀며 기존 교회의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라 오해하게 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저는 오히려 셀에서 서로를 위해 병 낫기를 기도하더라도, 교회에는 질서와 덕이 더 중요시되어야하기에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셀리더들에게 교육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셀리더들에게 그렇게 말한 내용의 앞과 뒤는 잘라내 만든 녹취록을 들이대며, 많은 이단들의 특징처럼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고 뒤에서는 마음껏 하라고 한다며 비난하였다. 이번 합신 공청회 내용을 보면 제가 말하였던 실제 내용과 정반대되는 내용들을 교묘히 편집하고 다른 이단들의 주장들을 마치 제가 주장하는 내용처럼 만든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이제부터 공청회에서 제기된 내용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겠다. 우선 ‘공동체 삼위일체론, ‘죄의 유전성’ 등에 대한 목사님의 주장은 어떠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분들은 제가 말하려고 했던 진정성을 살펴보지 않고 마치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해 동조하거나 모방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고의적으로 이단들의 내용을 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말씀하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의 결론은 저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어서 공청회를 연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동안 지적되어진 내용들에 대해 계속해서 수정해 교재를 출판했고, 심지어 26권에 달하는 ‘세계비전두날개프로세스’ 교재를 새롭게 써서 출판했다. 이러한 저의 노력에서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의 진정성을 보여드릴 수 있는지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합신 이대위 박형택 목사님이 지적한 ‘공동체 삼위일체론’은 정말 무서운 오해다. 저는 개혁주의 신학을 한 사람으로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우리가 삼위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의 친밀함과 같이, 하나됨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친밀해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공동체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결코 제가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다른 저서들도 많이 있는데 한 번도 그런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오해다. 굳이 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경륜적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내재적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그 상호적 관계, 즉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관계성을 가지고 셀모임의 공동체성이 제자들의 공동체로서 관계적 친밀성을 가진 소중한 것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비유적으로 설교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왜곡하여 마치 셀모임이 ‘존재론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내부에 직접 연합되는 것이라고 제가 가르쳤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곡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셀모임에 가둔다고 갇히시는 분이 아니지 않는가? ‘경륜적 삼위일체’와 ‘존재론적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은 합동신학원의 이승구 교수가 저술한 『개혁신학 탐구』의 제1부 3장 ‘삼위일체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과 제4부 12장 ‘새로운 십자가 신학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상술하고 있는 것처럼 상호 공동체성의 원형적 관계이며 구원의 원천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저는 존재론적인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밀하심 같이 교인들이 서로 친밀해야 한다는 말은 경륜적 삼위일체론이라는 개혁주의 신학 사상으로도 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공동체 삼위일체론’이라는 기묘한 어휘까지 만들어내어 저를 마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처럼 매도하였다.

또한 ‘죄의 유전성’을 가르쳤기에 심지어 통일교의 이단 사상을 모방했다고 한다. 저는 결단코 통일교에서 주장하는 실제 혈액적 유전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제가 총신 신대원에서 배웠던 루이스 벌콥의 원죄의 부작용으로 인류가 갖게 된 죄의 유전성을 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장황하게 설명한 다음, 제가 사용했던 표현들을 그들이 사용하는 표현들과 연관시켜 마치 그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주장하는 것처럼 발표했던 것이다. 그분들이 나중에는 이단들이 ‘십자가’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용어를 사용한 제 설교나 강의 내용들을 녹취해서 저도 알지 못하는 온갖 이단들의 모방자로 몰아세우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다. 공청회 당시 방청객에서 질의를 하셨던 어느 목사님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목사님께서 공청회를 다 듣고 나신 이후에 “만일 합신 이대위가 지적하는 문제들이 정말 이단적 요소라면 한국교회가 다 이단이”라면서 “합신 이대위가 지적하였던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복음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 ‘전도함으로서 불신자들을 예수 안에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을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연관시켜 이단이라고 한다면 이단이 아닌 목사들이 누구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제는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님의 <평신도를 깨운다> 교재 1장 ‘광인론’에서 “제자훈련에 미쳐야한다. 제자훈련이 대안이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해 교회 문을 개방함으로 그 이전까지 있었던 소그룹 모임과 제자훈련이 무너졌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러면 옥한흠 목사님도 합신 이대위의 비판적 기준에 의하면 이단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그분의 말씀에 깊은 공감을 한다.
 
▲공청회때 ‘가계에 흐르는 저주’, ‘견고한 진’, ‘쓴 뿌리’에 관한 표현도 문제 삼았다.
=거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동안 참 바르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왔다. 제 강의나 교재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늘 귀를 기울여왔고, 문제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고쳐왔다. 이 분들이 교재를 가지고 지적을 하는 부분들은 오래 전에 있었던 내용들이다. 이번 공청회에 다룬 것은 전부 <두날개양육시스템> 옛 교재에 대한 부분들이다. 구 교재의 최종적으로 고친 부분들도 택배로 그분들에게 다 보내드렸다. 그런데도 이전에, 그러니까 벌써 오래 전에 사용했던 내용들을 가지고 문제 삼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구 교재에 있었던 내용들도 공청회에서 제기한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해 저는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죄를 끊는 구속과 은총을 믿기에 오히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주장하는 내용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강의와 설교를 해오고 있다. 그러니까 ‘전인적치유수양회’에는 예수 믿은 지 한 달 이내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온다. 그분들은 아직도 구습과 세상적인 관점에 많이 사로잡혀 있다. 그 사람들은 늘 집안에 내려오는 저주 같은 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예수를 믿으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다 끊어진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인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을 염려해 아예 그 내용 자체를 빼고 교재를 완전히 수정했다. 저는 개혁주의 신학을 한 사람이다. 제 강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인정한 강의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을 오해하거나 모함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부분이 아예 없도록 책을 수정했는데도, 이번 공청회 때 보니까 아주 오래전 내용을 가지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인정하고 있다고 저를 비난했다.

‘견고한 진’이나 ‘쓴 뿌리’ 등의 용어들도 마찬가지다. ‘견고한 진(Strongholds)’와 같은 단어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고후10:4)일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와 종교가 융합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히 반대하는 세력이나 복음전도를 방해하는 강력한 세력을 일컫는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쓴 뿌리’라는 용어(히 12:15)는 기독교 상담학에서 “무의식에 뿌리 내리고 있는 마음의 상처나 핵심역동(Dynamic Drives) 혹은 트라우마, 곧 내적 상처의 근원”의 의미로 이미 선교학계, 기독교 상담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설령 그러한 용어를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두날개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 것이다. 그 밖에 지적한 용어들은 실제로 한국교회가 사용해 오던 것이었지만, 추후에 불건전한 용어로 논의된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피해자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괜히 이슈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되지 않고, 필요 없는 논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 교재에서 그 용어들을 다 삭제하거나 대체했다. 그러나 이전의 내용을 가지고 이번 공청회 때 비난하는 것을 들었다.
 
▲합신 이대위는 두날개의 목적이 마치 기존 교회의 틀 파괴하고 두날개 지상주의를 이루려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실제 그런가?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기독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의 한국교회가 어려워지게 된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서 주일 예배뿐 아니라 소그룹으로 모이는 셀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공청회 때 합신 이대위 서기인 김성한 목사님이 제가 기존 교회의 틀을 파괴하고 개혁하고자 두날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큰 오해다. 저의 저서와 컨퍼런스 및 집중훈련 때마다 주요한 주제로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 변화는 개인의 내면적 변화를 말한다. 지나친 성령 운동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추구하는 외면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적 변화가 아니다. 제가 주장하는 개혁적 변화는 교회의 전통적인 조직과 제도의 개혁이 아니다.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다. 저는 제 자신이 30년 동안 변화되지 못한 것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저의 책만 제대로 읽어도 잘 알 수 있다.

또 두날개를 ‘목사교’라고 표현한 것은 상당히 지나친 표현이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런 말은 안티기독교 세력이 잘 쓰는 표현이 아닌가? 그리고 교재인 셀가족모임에서 고백을 통한 회복의 내용을 마치 공개자백이라고 한 것 역시 상당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성도가 은혜를 받아 믿고 신뢰하는 성도들과의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하는 것을 공개자백이라고 하는 것은 편협한 오해다.

두날개 지상주의는 오해의 극치다. 저는 목회초기부터 지금까지 신약의 성경적 교회를 추구해 왔다. 아마 목회 현장에 계신 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말씀과 성령의 균형 잡힌 건강한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하셔서 부족하지만 국내외 목회자분들을 섬겨왔던 것이다. 두날개로 전통교회의 틀을 개혁하고 두날개 교회를 이루는 것처럼 주장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한 모델로서 두날개를 제시한 것을 지나치게 오해하신 듯하다.
 
▲두날개의 의미인 소그룹 셀모임과 주일 축제예배, ‘기복주의적 복음’ 및 ‘삼분설 인간론’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먼저, ‘셀교회’ 이론에 대해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외국에서 와이셔츠를 사서 입어보면 목은 맞는데 소매길이가 맞지 않거나, 소매길이가 맞으면 목이 안 맞는 것은 그들의 체형과 우리의 체형이 다르기 때문이고 문화도 다르다. 외국에서 교회성장프로그램이 들어오면 반드시 걸러야 한다는 말이다. 신학을 걸러주어야 하고, 임상을 해서 우리 몸에 맞춰야 한다. 셀교회 이론도 마찬가지다. 셀교회 이론을 보면 소그룹을 회복시키는 아주 좋은 부분들도 많지만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경청의 방’이라든지, 랄프 네이버 박사나 빌 벡햄 박사의 셀이론은 셀 자체를 교회로 규정하는 부분은 우리 개혁주의 신학과 맞지 않다.

저는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목사로서 분별하여 좋은 것은 수용하고 우리의 신학에 안 맞거나 제도에 맞지 않는 것, 우리 문화에 맞지 않는 것은 걸러내야 한다고 본다. 소그룹에 대한 이론, 서로가 상호책임지고 상호의존하고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47절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좋은 이론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부분이나 성령 사역 등 이런 부분들은 우리의 신학과 맞지 않았다. 셀에서 성찬식도 셀리더가 진행을 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와 맞을 수 있겠나? 단지 소그룹의 성경적인 이론만 수용한 것이다. 수용을 해서 상호책임지고 상호의존하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 소그룹에서 회복시키고자 했다.

물론 ‘셀그룹’이나 ‘두날개’라는 용어는 성경에 없다. ‘삼위일체’나 ‘선교’라는 용어 역시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건전한 신앙과 간단한 신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이해하는 단어들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학적 내용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새롭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교회사의 신학적 내용들을 장황히 서술하지 않아도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국교화가 가져온 성경적 교회론의 문제성은 교회사를 공부한 목회자들에게는 상식과도 같은 내용이다.
축제예배에 대해서도 잘못 오해한 부분이다. 축제예배는 열린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심령이 회복을 경험함으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기쁨의 예배를 표현한 말이다. 기존 교회의 설교와 예배를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틀을 흔들라고 한 적이 없다. 우리 교회 역시 장로교의 예전을 그대로 잘 준수하고 있다.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를 잘 수용한 영감 넘치는 예배를 추구하고 있다. 도리어 오늘날 사라져 가는 수요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저녁예배를 고수하고 계승해 가고자 더 노력하고 있다. 비판하는 분들은 제발 와서 보고 그런 말을 하시면 좋겠다.

그리고 제가 선포한 복음이 현세적 복음이고, 기복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고 지적한 것도 잘못된 것이다. 두날개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정반대인 고난의 신학이라는 것을 저의 수많은 설교와 책에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과 고통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던 초대교회 신앙인들 같은 고난의 신학을 강조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현장인 세계선교와 교회 구성원인 셀원 및 새가족들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더 열심히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구하며 나눌 것을 말하지만 결단코 이 땅에서의 부유함과 물질 자체를 구하는 기복 신앙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치유사역 역시 마찬가지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사용하는 것이지 치유사역을 신비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제가 삼분설을 주장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저는 신학을 하지 않은 평신도의 쉬운 이해를 위해 루이스 벌콥의 이분설에 가깝게 인간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인간론은 개혁주의 신학자인 안토니 후크마의 인간론 곧 ‘단일체 전인론’이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삼분설의 핵심적 문제는 영혼육이 통합된 존재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의 구원이 혼과 육의 구원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 아닌가? 곧 영의 구원이 사람의 마음이나 육체의 선한 행위로 된 것이 아니기에 한 번의 회개와 구원 이후 어떠한 마음이나 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구원파의 주장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평신도를 위해 쉽게 예를 들면서 설교하고 강의한 말을 앞뒤 잘라내고 신학적 잣대를 대어 비판한다면 과연 몇 명의 목회자들이 그러한 외곡된 관점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두날개는 G12, 신사도운동의 아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보다 저는 말씀과 성령의 균형 잡힌 제자훈련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지나친 성령 운동으로 치우치는 것을 항상 경계해 왔다. 그 예로 제가 처음에 ‘D12(Disciple12)’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제자훈련 시스템이 점차 알려질 때에, 지금은 신사도운동으로 이단시된 G-12와 명칭이 유사하기에 오해를 받지 않도록 ‘두날개’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12의 영향을 받아 그것을 모방해서 두날개양육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거짓된 모함의 글이 인터넷상에 올라온 것을 보았다. 또한 이단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두날개가 사용하는 용어가 유사하다며 교묘히 연관을 지어 저와 두날개양육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교회들을 유사이단운동인 것처럼 모함하는 글도 보았다. 그 외 인터넷 등에 제가 오히려 반대로 강조했던 내용들의 앞과 뒤를 잘라내어 교묘히 편집하여, 사실 내용 여부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제가 이단들에게서 배우고 모방해 만든 것이 두날개인 것처럼 모함하는 내용들도 보았다.

저는 결코 신사도운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씀과 성령의 온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은사주의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신비주의자가 되어도 안 된다. 신사도운동을 지적할 때 쓰러지는 현상들을 보면서 신사도운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저도 안수를 한다. 그러나 쓰러지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성향에 따라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자들과 집중훈련할 때 보면 오순절파 목사님들도 오고, G12했던 분들도 오고, 신사도운동 했던 분들도 온다. 초교파 사역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들이 오시는데, 이 분들은 안수만 했다하면 쓰러지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오해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저는 결코 사람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안수해 본 적이 없다. 디모데후서 1장 6절 말씀처럼 바울이 디모데 안에 은사가 불 일 듯이 일어나게 하고자 안수를 한 것이지 쓰러뜨리기 위해 안수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에는 신사도운동은 사도직분이 있는 것 같다. 사도직이 초대교회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 이후에 끝났다고 개혁주의 신학에서 배웠다. 그러니까 결코 저는 신사도운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사도는 직통계시를 지금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저는 그런 부분을 한 번도 말하거나 주장한 적이 없다. 저는 현상 위주의 은사 또한 따라가지 않는다. 말씀과 성령이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공청회에서 지적하기를 제가 방언을 따라하게 함으로써 성령의 은사를 사람이 연습하고 훈련해서 받아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는데, 그러한 의미로 말한 적이 없다. 성령의 은사들은 절대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고 믿고, 또한 그러한 의미로 가르쳤다. 말하자면 제자훈련이라는 것은 말씀과 성령이 충만해야지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충만함은 말씀의 충만함이요, 말씀의 충만함은 성령의 충만함이라고 말씀과 성령의 두날개를 항상 가르쳐 왔다.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은사주의자, 현상을 따라가는 것은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셀에 대한 용어만 같지, 내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국교회의 실상에 맞고 성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교회운동을 설명한 것처럼, 신사도운동이 사도의 기능과 직분으로 두날개를 말한다고 제가 말하는 두날개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합신 이대위가 부당하게 공청회를 강행했던 것에 대해 혹시 더 추가하실 부분이 있다면.
=두 가지다. 제가 말한 것이 오해해서 왜곡되게 받아들인 부분이 있고, 교재가 이미 다 수정이 되었는데도 이전 교재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에 굉장히 마음이 상했다. 사실을 왜곡되게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 다른 것보다도 진정성이라고 본다. 제가 부족한 목회자지만 나름대로는 바르게 하려고 애를 써왔다. 최종적으로 틀린 게 있다고 지적하면 또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분들은 단 한 번도 소명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자신들이 문제시하는 내용들에 대한 질문지조차 보내준 적이 없다. 그리고 두날개를 하는 교회들이 각 노회에 헌의해 교회들을 이단성 시비에서 보호해달라는 청원으로 우리 교단은 물론 합신 교단 내에서도 중지할 것을 요청한 공청회를 무리하게 강행한 저의가 무엇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전 교재를 수정한 것에 대해서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요리조리 용어를 고치면서 숨바꼭질 하듯 속이고 있다고 했다.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다 부정하게 보인다. 저의 신학적 사상은 그분들이 공청회를 시작하면서 인용하셨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개혁 선언문의 내용에 결코 어긋나지 않는다. 곧 개혁주의의 신앙의 특징, 하나님의 절대주권, 성경의 객관적 권위, 구원의 전적 은혜성,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으로서의 교회 등을 신봉한다는 내용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학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서 용어상 오해를 줄 수 있는 것을 고친 것을, 그분들은 반대로 사상은 변하지 않고 용어만 고쳤다는 식으로 제 진정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고 자신들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안타깝다.
 
▲지난 3월에 <교회와 신앙>에 성명서를 냈다. 어떤 경위로 내게 됐나.
=<교회와 신앙>에 올라온 글이 부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글을 올린 분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이번 공청회의 합신 이대위가 주장하는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부당한 부분들이 있는 글들이 많이 올라옴으로 두날개를 하는 교회들에게 많은 피해를 줄 것을 우려하여서 이런 부분들을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내려주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내용증명을 글을 올린 분과 <교회와 신앙>에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두날개교회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법적인 조치의 절차를 밟아갈 때에 이단연구가 분들이 중재에 나서서 우리가 지난 교재에 이런 오해를 살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는 성명서를 내면 <교회와 신앙>에 있는 비난하는 글, 글을 올린 이인규 권사님이 운영하는 카페에 있는 글도 다 삭제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우리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성명서를 내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와 신앙>에 올라간 글도 내리고 우리를 비난했던 권사님의 운영하는 글들도 다 내려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명서는 두날개를 적용하는 교회들을 보호하기 위해 올린 것이었다.
 
▲합신 이대위는 그럼에도 두날개가 좋은 전도 프로그램으로 교회에 유익이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평가했다. 그동안 두날개를 통해 일어난 유익했던 부분을 꼽는다면.
=2002년부터 컨퍼런스와 집중훈련을 통해 두날개양육시스템을 가르쳐 왔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제자훈련 두날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전세계 50여 개국 1만 5000여 교회가 컨퍼런스에 참여했으며, 6000여 교회가 집중훈련 전 과정을 수료하였다. 두날개는 전 교우가 주일에 모이는 대그룹 예배와 삶의 현장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합심하여 전도하며 서로 섬기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한국에서 자생한 건강한 교회운동이다. 그동안 제대로 적용한 국내 외 많은 교회들의 괄목할만한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그 예로 대만은 2008년에 복음화율이 2.8% 정도였는데 두날개를 배워간 교회들의 변화와 성장으로 지금은 복음화율 6.4%에 이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대만 목사님들의 간증을 통해 들었다. 이러한 일들은 중국, 일본, 필리핀 등에서도 많은 간증과 사례들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끝으로 합신 이대위의 부당한 공청회 결과에 대해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교회를 보호하고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를 살려야 된다고 본다. 이번 공청회로 빚어진 오해들로 인해 두날개를 제자훈련으로 사용하는 교회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지금이라도 합신 이대위가 저의 진정성을 꼭 받아들여서 지금까지 바르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이해해 주시고 오해를 풀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정정해서 보도하면 좋겠고, 9월에 있는 합신 총회에서 두날개가 바르게 하고자 한다는 의도를 충분히 고려해주기를 바란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18명의 신학자들의 감수를 받아서 2014년에 26권의 새로운 <세계비전두날개프로세스> 교재를 출판하게 되었다. 이 교재는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신학적으로도 튼튼하게 교재의 완성도도 높이고 이 시대의 교회와 사회 상황에 잘 맞는 제자훈련 프로세스를 출판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돕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도움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자하는 두날개의 진정성을 합신 이대위나 합신 총회측에서 잘 수용해주시고,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시고, 애쓰고 힘쓰는 저희들을 잘 지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도 개종을 시켜서 새사람을 만들어 쓰는데 하물며 어떻게든 바르게 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을 이렇게 배척해서 이단성이 있다고 하면 적군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저는 아군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하나님 나라를 허무는 이단 세력들과 사단적 문화 세력들에 대항해 힘을 합쳐 싸워야한다. 아군을 이단으로 내치면 결국 자기 살을 물고 뜯는 결과로서 한국교회만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스스로를 허무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두날개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날개 지역장 목사님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날개로 제자훈련하는 교회들과 함께 연대해 인터넷 등에 두날개를 무고히 비판하거나 퍼 올린 글 등에 대해서는 지난 4월 16일 발표된 정부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의거해 명예훼손 등 법적소송을 진행할 것이다.

끝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지도를 해주시고, 바르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선한 방법으로 교회를 선한 길로 교회가 더 든든히 세워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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