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목사 ‘부산서 대구’ 베어드 순례길 걸어
“선교사 발자취 좇아가며 목회 여정 새힘 결단”


 
▲ 베어드 순례길 마지막 장소인 대구제일교회 옛 예배당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병희 목사. 김 목사는 도보로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영남지역 선교에 공헌한 베어드 선교사의 발자취와 선교정신을 찾아 나섰다.
미국 북장로교로부터 파송을 받았던 윌리엄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는 한국기독교사, 특히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역의 교회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미국북장로교를 비롯, 호주빅토리아장로교,미국남장로교, 캐나다장로교 등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4개의 장로교 선교부가 1893년에 조직한 선교사간의 연합체인 ‘선교사공의회’에서 효과적인 선교활동과 인적·재정적 낭비를 막기 위해 선교지역 분담정책인 ‘예양협정(Comity arrangement)’에 따라 베어드 선교사는 부산선교지부를 호주빅토리아장로교 이양하고 경상도 북부지역 선교지부를 물색하기 위해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다.

1893년 4월 17일 서경조 조사와 함께 부산을 떠난 베어드 선교사는 부산의 동래 온천을 시작으로 밀양-청도-대구-상주-안동-의성-영천-경주-울산을 거쳐 다시 5월 20일경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때의 전도여정은 1240리(487㎞)였다.

역사가들에게는 당시 베어드 선교사가 전도여행을 위해 걸었던 길은 이른바 ‘베어드 순례길’로 불린다. 이 베어드 순례길을 오롯이 도보로 걸으며, 역사적·선교적 의미를 되새기는 목회자가 있다. 김병희 목사(서변제일교회)가 그 주인공. 김 목사는 대구에서 담임목회를 하는 목회자이자, 한국기독교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회사학가이다.

김병희 목사는 지난 5월 4일부터 7일까지 부산에서 대구제일교회까지 베어드 순례길을 걸었다. 구체적으로 부산 동래의 온천장역을 출발해 범어사, 사송리, 양산, 물금, 원동, 삼랑진, 밀양, 유천, 청도, 팔조령, 대구 건들바위, 대구약전골목, (구)대구제일교회까지 총 128.36㎞를 걸은 것이다. 만만찮은 거리를 그것도 최소한의 경비를 들고 홀로 걷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동안 구체적으로 실증된 베어드 순례길을 찾아 걸은 경우가 없는 상황에서 3년 전부터 계획했으나 두려움과 강의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었습니다. 마침 연휴가 있어 직접 걸으면서 베어드 순례길을 실증하고, 묵상하기 위해 이번에 용기를 낸 것입니다.”

순례길 여정에서 김 목사가 얻는 유익은 생각보다 컸다고 한다. 그는 “이번 여정은 고행과 내려놓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중세 교회개혁을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빈자의 길을 떠난 개혁가들의 심정을 작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길이었지만 주님과 교제하며 말할 수 없는 평안을 경험하면서 나를 내려놓는 좋은 기회도 됐습니다. 앞으로 성실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걷겠다는 개인적 다짐도 해 보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선교사의 순례길 여정 속에서 만난 강렬한 도전이나 잔영이 남는 장소가 있었을 터. 김병희 목사는 물금에서 삼랑진까지 이어진 ‘잔도’길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잔도란 말 그대로 험한 벼랑에 암반을 굴착하거나 석축을 쌓아 길을 낸 것으로, 영남대로상에는 황산잔도, 작천잔도, 토끼벼로가 대표적이라 한다. 황산잔도는 현재 물금읍의 황산역에서 원동에 이르는 낙동강변가의 절벽에 만들어진 길이고, 작천잔도는 양산 원동(용당리)의 하주막에서 밀양의 삼랑진에 이르는 벼랑길을 지칭한다. 과거 한 수령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익사했을 정도로, 그 당시 사람들이 이 길을 다닐 때는 두려운 걸음으로 다녔다고 한다.

“베어드 순례길은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라 목숨과 연결된 길이었습니다. 베어드 선교사의 처남인 아담스 선교사가 대구선교지부를 이양받기 위해 대구로 오는 길에 유천교를 지나던 중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쳐 부산으로 돌아가 몇 달을 치료를 받고 낙동강을 통해 대구에 온 일도 있을 정도로 당시의 선굣길은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복음을 향한 목회자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할지를 생각하게 한 장소였습니다.”

김병희 목사가 이번에 걸었던 여정은 그가 임의로 설정한 총 4코스의 베어드 순례길 중 1코스에 불과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던 순례여정을 직접 체험하면서 선교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깊은 깨달음과 결단도 가졌다. 그래서 그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남은 코스를 걸을까 합니다. 걸을 때 주시는 세밀한 깨달음과 은혜를 생각하며 걷고자합니다. 향후 기독교 순례길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욕심도 갖게 되는군요.” 김병희 목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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