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렬 목사(군산개복교회)

거룩은 중생한 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명령
항상 말씀과 기도에 힘써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영광 놓치지 맙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습니까? 혹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지는 않습니까? 삶의 현장에 눌려서, 혹은 내 성취욕에 몰입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이 준엄한 명령을 잊거나 관심 없이 살 때가 많습니다. 안 됩니다. 다른 것은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명령은 가슴에 새기고 이루며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고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룩하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 즉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는 절대적이고 영원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됩니다. 부모와의 만남, 남편과 아내의 만남,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형성되는 만남이 삶과 운명을 결정합니다. 모든 만남이 중요하지만 어떤 만남과 비교되지 않는 만남이 있으니, 곧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것,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맺어진다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영원히 망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정말 당신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하여 주신 이 명령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저는 총각전도사로 있을 때 고향교회를 갔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창이 찾아와 자기가 이 여인을 사랑하는데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고백과 함께 이런 자기 마음과 선물을 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절하지 못하고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언제 어디서 만나면 좋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만나서 동창생의 이야길 하며 선물을 주었습니다. 받고는 조금 생각하더니 돌려주며 이런 선물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1%의 마음도 없다고 잘라 말하고는, 목사 사모를 많이 생각해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한숨도 못자고 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생각나게 하시며 나를 책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반한 여인의 간접적인 청혼을 받고도 설레는 가슴으로 밤을 뜬 눈으로 지낸 네가 창조주인 내가 너와 관계를 맺겠다고 하는데 그렇게도 무덤덤하냐?”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상의 무엇보다, 아니 내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고, 육신의 생명이 다함과 함께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는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이 관계가 곧 영생입니다.

 
둘째, 이 관계를 위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관계를 위하여 최고의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짐승의 초태생까지 죽음의 사자가 다 죽이면서 유월절의 은총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8장 6~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영원히 보전하시려고 치르신 값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비교될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죽어야 할 죄를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서 우리와의 영원한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하며, 갚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확증인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부인하며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임을 명심하고 전해야 합니다.

 
셋째,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고, 또한 영생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거룩은 곧 하나님의 성품이며 존재양식입니다. 어찌 감히 육을 가진 인간이 거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거룩하지 아니하면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꼭 이루어야 합니다. 거룩이란 단어의 뜻을 안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이론을 정립했다고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룩해집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서도 분명히 답을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할 수 없는 것을 명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쳐 주신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강조하고, 말씀을 아는 것에만 치중하면 성경은 지식에 머물게 됩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하며 외식하게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기도는 기복신앙의 출발일 뿐입니다. 한국인은 한국의 법 안에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 곧 천국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기록되게 하시고 성육신하게 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에 의지하고 기도하면 성령님이 바로 깨닫게도 하시고 순종할 지혜와 능력까지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으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하나님 백성으로 가장 심각한 죄인 것을 알았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며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인 것을 알았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지혜와 능력을 간구하는 기도를 계속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확실하게 합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 중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광스럽고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왔고,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이며 명령입니다. 아버지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아버지와의 영원한 관계를 통해 영생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거룩하라신 명령에 아멘하고 항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놓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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