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주기 특집] 세월호를 기억하라 ① 눈물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9명의 실종자, 팽목항은 변한 게 없어
“그냥 우리가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 외면받는 ‘남은자들’

 

▲ “잊지 말아 주세요!” 세월호 1주기를 맞았지만 세월호 희생자 눈물은 마를 줄 모른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1년,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들은 세월호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1년 전 304명의 승객이 차디찬 바다에서 숨져갔지만, 아무 것도 해결된 것 없이 비극은 진행 중입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는 묘연합니다. 교회도 고통당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는지 자문해 봐야할 때입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한 맺힌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을 지면에 담았습니다. 아울러 아픔을 외면했던 정부와 함께 아파하는 것에 주저했던 교회를 향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 ‘세월호를 기억하라!’입니다. <편집자 주>

그날 하늘도 울었다. 다시 돌아온 4월, 잔인했던 기억에 몸서리치듯 하늘은 울상을 지었다. 팽목항으로 향하는 여정, 지난 1년을 고통 속에 산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눈물 같은 빗줄기가 연신 쏟아졌다. 이르게 어둠이 깔린 길목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가로수마다 묶여 있는 노란색 띠가 이정표가 됐다. 얼마나 걸었을까. 당일 삭발했다는 4명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도보행렬에 합류해 동행했다.

마침내 도착한 팽목항. 그 고통의 현장은 슬픔을 머금은 잿빛 하늘과 분노에 찬 검은 바다 사이에 놓여 있었다. 취재진과 구호인력으로 붐볐던 세월호 참사 직후와 달리, 시골 항구는 한산했다. 하지만 팽목항에는 아직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컨테이너를 막사 삼아 1년을 버틴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그곳에 있다.

마주한 가족들의 목소리는 분노와 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1주일 전, 무책임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발표한 정부가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세월호 희생자 다영 아빠 김현동 씨는 “정부의 시행령을 듣고 또다시 참담함을 느꼈다”며, “그동안 희생자 가족들을 우롱한데 이어, 세월호 특별법까지 백지화하려는 정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국민들 기억에서 세월호가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렵다”고 탄식했다.

다른 가족들도 “사랑하는 자녀와 형제가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달라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과연 이 나라의 정부가 우리를 국민으로 생각하는지 의문이다”며 울분을 토했다.

가족들 곁에 선 성도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고난주간을 맞아 팽목항을 찾은 이현아 씨는 “단지 진실을 알려는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히는 정부를 이해할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까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함께 아파했다.

다음날 실종자들을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팽목항에서 25km 떨어져 있는 맹골수도. 세월호가 가라앉은 해역은 이날도 거센 파도가 휘감고 있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요동쳤지만, 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도들은 ‘세월’이라고 적힌 노란색 부표 위로 조화를 띄우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검푸른 바다를 향해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실종자 은화 엄마 이금희 씨는 아직도 바다 속에 있을 딸을 애타게 찾았고, 희생자 요한이 엄마 김금자 씨는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외쳤다. 세월호를 삼킨 맹골수도는 통곡의 바다로 변해갔다. 이금희 씨는 “벌써 1년이다. 매일같이 바다를 향해 딸 이름을 부른다. 내 딸이 뭍으로 나올 수 있도록 제발 세월호를 인양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더욱이 세월호의 충격과 상처는 희생자와 그 가족만이 아니라, 사고와 연관된 수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선의를 가지고 피해자 구조를 돕고, 봉사에 나섰던 이들까지 그 늪에 빠졌다는 점이다,

삶의 터전이 비극이 현장으로 바뀐 진도군 사람들도 또 다른 의미의 남겨진 사람들이다. 사고 직후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대원들을 위해 봉사캠프를 차리고 밤낮으로 봉사했던 목회자들이 잇따라 과로에 시달리다 쓰러지고, 진도군교회연합회 회장으로 섬기던 문명수 목사는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지역이라는 이유로 진도군민들은 모든 불편과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단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모든 생산물의 판로가 막히는 상황까지 맞닥뜨렸다. 이들의 억울한 처지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호소도 제대로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았지만 팽목항은 변한 게 없다. 남겨진 자들의 눈물은 샘이 되어 오늘도 흐르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무너진 사회안전망을 재건하고 물질적 보상을 넘어 정신적 치유까지 관심을 가질 때까지 그들의 눈가는 젖어 있을 것 같다. 단원고 2학년 조은화 허다윤 양 남현철 박영인 군.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여섯 살 혁규와 아빠 권재근 님. 그리고 이영숙 님. 이 아홉 명의 실종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팽목항의 눈물은 그칠 것 같지 않다.

송상원 정재영 기자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