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냄새나던 그 곳에 예수가 계셨다”

반듯한 신학 울타리서 지내다 뜻하지 않은 부르심에 무작정 남아공
빈곤과 범죄의 땅에서 구체적으로 삶을 바꾸는 놀라운 섭리 발견
사람 변화시키는 사역에 역점둬야… “맨손이지만 여전히 행복”

 

“어느 노파에게 두 개의 단지가 있었다. 그녀는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갈 때마다 어깨에 걸치는 긴 장대의 양 끝에 단지를 하나씩 매달았다. 두 단지 가운데 하나는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물을 긷고 먼 거리를 돌아와 마침내 집에 도착하면 물이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서슴지 않고 본인은 금이 간 항아리마냥 결점이 많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런대도 하나님은 그런 ‘못난’ 항아리를 들어서 사용하신다며 싱글벙글 했다. 총회세계선교회 소속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하다가 귀국한 김경열 선교사(51)는 튀는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목사다.

“결국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연약한 자를 들어서 역시 연악한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예수를 심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보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는 영웅담론에 빠져 있는 이 시대에 본인 같은 어줍잖은 사람도 선교사가 되고, 책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무명인의 소박한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보기와 달리 굴곡진 청소년 시기를 잘 버텨온 하나님의 자녀다. 둥글둥글한 인상을 보면 구김살 없이 탄탄대로의 귀공자처럼 살아왔을 법 한데 사실, 남에게 말 못할 아련한 추억이 그에게도 있다. 그런 그가 본인의 속살 한 줌 내보이듯 자서전인 <냄새나는 예수>(홍성사)를 출간했다.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는 속칭 방석집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겪고, 평범한 가운데서도 아프리카 선교사로 부름받아 사역했던 내용을 담담한 무채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울한 회색빛의 책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남아공화국 앞바다의 코발트색 바다색만큼이나 청량하다, 그래서 그의 삶이나 책에서는 생명미가 물씬 풍긴다.
 

 

그는 <냄새나는 예수>에서 아프리카인들의 ‘냄새나는’ 틈바구니에서도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선포하며, 그 또한 예수의 제자가 되어 비록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냄새나는 곳이라 할 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특히 그는 아프리카에 대해 ABC도 모르는 가운데 늦깎이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아 빈민촌 목회를 하고, 몇몇 선교사와 성경학교이자 신학교를 공동사역하면서 기적을 일궈나가는 기쁨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냄새나는 예수>를 펼쳐보면 하나님의 일은 돈이 아니라 인간이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거기다 사람을 진정으로 섬길 때 선교도, 하나님 나라도 건설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만큼 그는 머리로서 사랑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아프리카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을 어루만지며 함께 했다. 그는 느닷없이 아펠레스를 만나 보라고 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이 마무리 인사를 하는데 35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중에 딱 한 문장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그렇습니다. 저는 비록 평범하고 무의미한 존재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아펠레스라며, 바울처럼 되려고 몸부림 치지 말고 바울을 돕는 이름없는 동역자도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또한 그러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그와 같은 일을 감내하며, 바울을 뒷받침 하는 사역을 어디서든지 앞으로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죽고 예수만 산다면 그것만큼 행복할 일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국내로 복귀하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남아공을 떠날 무렵,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일하러 오는 현지인 제인이 저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온 가족이 변하고 생각도 달라졌고, 꿈도 생겼다며 고백했습니다. 그리곤 헤어짐이 서러운지 펑펑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0년간 남아공에서 사역하면서 결실이 뭔 지를 잘 몰랐는데 제인처럼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삶이 변화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며, 아프리카에서 사역이 결코 물거품이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낯선 아프리카로 향할 때 많은 두려움과 염려가 밀려왔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인해 오히려 담대함과 기쁨으로 10년을 하루같이 보냈다고 고백했다.

또 한 가지, 그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자원을 둘러싼 국가 분쟁이나 내전 뒤에는 여전히 강대국과 백인들의 이익집단의 영향이 끼어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아프리카를 수탈의 대상으로 보고 선진국들의 경쟁적인 진출이 계속되고 있다고 그는 대놓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와 에이즈 등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놓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정죄하여 백안시 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알량한 자존감으로 우물쭈물 우월의식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저렇게 만든 것은 식민지배 국가의 백인들입니다. 그들은 군대를 동원하거나 돈과 물질로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의도적으로 술과 마약을 뿌려 종족들을 이간질시켜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영혼을 마비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자행해 왔던 것입니다.”

그는 그래서 아프리카를 구호의 대상으로 생각지 말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거나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말한다. 무분별한 물질의 지원에 앞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역점을 두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퍼주기식’ 선교는 단호하게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선교지가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戰場)이라면 조국 교회는 전투를 지휘하는 사령부인데 선교의 전술이 잘못되면 패착은 현장에서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인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문제를 그들이 풀 수 있도록 측면에서 도와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복귀한 지 서너 달 되었습니다. 레위기 주석을 비롯한 저술에 집중하면서 방학 중에 짬을 내어 해외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 동원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틈틈이 국내 어려운 교회를 다니며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프리카에 날아갈 때와 똑같이 비록 손에는 쥔 것 하나 없이 맨손으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두려움은 전혀 없고 감사만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국내에 복귀하는데도 거처도 없고 갈 곳도 모른 채 귀국했습니다. 지금도 나그네와 같은 생활입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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