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단 역사 그리고 정체성 ⑤ WCC 에큐메니컬 운동 비판

교회 일치 아닌 인류 일치 외친 제10차 WCC 부산총회…사실상 그리스도 복음 철회한 셈
‘협의회적 교제’는 거대한 바벨탑 쌓는 인본주의 산물…연합은 오직 진리로 주도 돼야


 
▲ 문병호 교수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1. 치부를 드러낸 제 10차 WCC 부산총회

2013년 10월 30일 개막하여 10일간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의 제 10차 부산총회가 끝난 지 일 년 반 남짓 지났다. 대체로 알맹이 없는 총회, 한계를 드러낸 총회, 실패한 총회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총회를 반대한 측은 물론 총회를 주최한 측에 속한 교회들과 성도들도 오히려 WCC에 대하여 반감을 더하게 되었다고들 한다. 한 교단에서는 부산총회를 개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로 교단내의 내홍(內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미 교단을 탈퇴한 교회도 있으며 탈퇴를 운운하는 교회들과 성도들도 적잖다고 알려졌다.

WCC 부산총회는 정부예산과 성도들의 헌금을 막대하게 퍼부은 사상 최고의 물량 총회라는 오명(汚名)을 안게 되었지만, 총회 내내 사회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논의만 무성하고 이질적인 행사만 다채로웠을 뿐, 교리나 복음전도 혹은 선교 등에 관한 사안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가장 말이 많았던 동성연애에 관해서는 대다수 회원 교회가 이를 지지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으며, 북한의 인권문제는 아예 공식적인 의제로 채택되지도 않았다.

WCC 부산총회는 그 어느 대회 때보다 종교다원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명함으로 그 치부를 드러냈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에서도 생명의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내세우지 말고 종교적인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선교의 본질이 다른 종교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범세계적인 친교를 이루는데 있다고도 하였다. 이는 사실상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회한 것과 다름없다.

WCC 부산총회는 그동안 은밀히 진행해 오던 로마 가톨릭과의 협력과 일치를 더욱 노골적으로 추구하였다. 일종의 로드맵(road map, 지침)에 따라 로마 가톨릭과 근본 교리를 공유하고 하나의 신앙고백에 이르기 위한 움직임을 더욱 가시적으로 표출하였다. 교황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수위권(首位權, primacy)을 언급만 하고 그것에 대한 어떤 반대 입장도 표명하지 않음으로 사실상 묵인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교회의 머리이심을 부정하는 처사와 다름없다.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우리 교단은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이에 대한 선도(先導)적 대응을 일사불란하게 해왔다. 수차례 WCC를 비판하는 심도 있는 책을 출판했으며 교단의 총합된 뜻을 여러 차례 선언문과 세미나 등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공표하였다. WCC 문제를 진리 문제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교단 내에 어떤 교회나 목회자도 부산총회에 참여하거나 협조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요컨대 이번 부산총회를 통하여 우리는 WCC가 복음이나 생명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세속적이거나 정치적인 이념에만 몰두하고 있는 비성경적이며 비기독교적인 단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2. WCC의 본질: 비(非)성경적 반(反)교리적
 
WCC는 현재 120개국의 349개 교단에 속한 5억 6000만의 회원들을 두고 있는 초대형 단체이다. 한국교회에서는 대한 성공회, 한국 기독교 장로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기독교 대한 감리회가 가입되어 있다. WCC의 가입 문제는 한국 교회 장로교 교단 분열의 핵이 되었다. 당시 보수 신학을 대변했던 박형룡 박사는 WCC를 ‘자유주의 광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무분별하게 사회복음과 타종교와의 교통을 추구한다고 비판하였다. 개혁신학의 보수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WCC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신(新)신학적이며 자유신학적이고, 단일교회를 목표로 하고, 용공적(容共的)이며, 세속적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왔다.

WCC의 외연이 획기적으로 확장된 것은 옛 소련과 동구 공산권 교회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속한 군소교단들 그리고 다수의 오순절 교회들이 참여하면서 부터였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WCC는 특정 교단의 권익을 성경적 진리보다 앞세우고, 공산권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제3세계의 사회운동에 공조하면서 폭력이라도 불사하는 등 세속적인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었다.

WCC는 기본 교리에 대해서 말하기는 하나 교리의 차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특정한 교리를 함께 고백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다원주의적, 혼합주의적 해석을 오히려 장려한다. WCC는 성경이 계시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계시는 주축(主軸)이 되는 한 전통으로서 여타 후속적인 전통의 기준이나 모범이 될 뿐이다. WCC는 성경무오(聖經無誤)를 믿지 않는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은 허구의 산물이거나 당대의 설화를 옮겨 적었을 뿐이라고 본다. 성경에는 많은 오류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비평을 통하여 뜻을 확정하기 전에는 그 어떤 절대적인 의미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WCC가 추구하는 소위 ‘에큐메니컬 해석학’은 이러한 성경관에 기초해 있다.

WCC는 기본적인 조항에 대한 형식적인 고백만 있으면 실제적인 교리의 차이가 있더라도 어떤 교단이라도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각 교회가 교리를 해석하는 방식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극단적인 세속주의, 다원주의, 심지어 신은 죽었다는 사신신학(死神神學)을 좇더라도 문제 삼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되지 어떻게 믿는지는 거론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이 공산주의나 동성애 등을 반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WCC는 총회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일치’가 아니라 ‘인류의 일치’를 주장한다. 인류가 하나 되기 위해서 종교간 연합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타종교를 개종하려들지 말고 그대로 두고 공통점을 찾자고 말한다. WCC가 말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이러한 사고의 산물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면 굳이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더라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하거나, 십자가와 부활이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망발을 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도 이러한 종교다원주의가 점점 스며들고 있다.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렸던 WCC 제7차 총회에서 한국의 정현경이 초혼제를 벌이더니, 이제는 불교의 설법이랍시고 무엇이 어느 교회 강단에 버젓이 올려지기도 하고, 무슨 불을 밝히는 이교(異敎)의 점등식에 교회 지도자가 동석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를 사실상 주도하는 단체가 WCC이다.

WCC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내걸고 있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WCC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시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WCC가 만들어 낸 ‘협의회적 교제’(conciliar fellowship)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WCC라는 기구가 머리가 되어 교회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발상에서 나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거대한 바벨탑을 쌓는 인본주의의 산물에 불과하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갈 1:12): 진정한 연합과 일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말씀 위에 서 있을 때만 참되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성경의 하나 되게 하는 진리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WCC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지만 교회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고 세속적이고 기구적인 활동을 주로 삼는다. WCC는 신흥교단은 흡수하는 역할을 일정 부분 감당하였지만, 서구와 우리나라의 예에서 보듯이, 오히려 기존교회를 분열시키는 온상이 되었다. 그것은 참다운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해치는 기구이다. 그러므로 WCC에 참여하거나 WCC를 돕는 것 자체가 성경의 가르침에 배치된다. 빛과 어두움, 의와 불법,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은 제44회 총회(1959년, 대전중앙교회-승동교회)에서 ‘WCC와 그 노선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우리 교회의 거룩함과 또 그리스도의 합일의 속성을 저해함을 확인하였음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이에 WCC에서 항구히 탈퇴하고 그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계치 않기로 함을 총회에 선언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45회 총회(1960년, 승동교회)에서는 ‘WCC를 탈퇴하고 WCC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폐하고’라고 이를 재차 확인하였다. 또한 WCC에 대하여 중도적인 입장을 가졌던 복음주의협의회(NAE)에 가입한 사람들도 모두 그곳에서 탈퇴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교단의 목사들이 ‘WCC 및 WCC적 에큐메니컬 운동이 비성경적이고 위태로운 것’이라고 서약하게 한 후 목회하게 하였다. 이러한 총회의 입장은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헌법사항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단의 구성원은 마땅히 이를 지켜야 하며, 교단으로부터 파송 받아 외부 기관에서 섬기는 경우에는 이를 철저히 새길 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진작시키는데 힘써야 한다. 교회의 연합 사업은 성경의 진리와 총회의 법과 결의를 넘어서서 수행될 수 없다.

칼빈 이후 개혁신학자들은 ‘교회는 그것이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의 진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에도 나타나듯이, 그리스도가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택함 받은 백성들의 총수(總數)로 이루어진 무형교회(無形敎會)의 머리이시므로 지상에서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예배를 드리는 유형교회(有形敎會)의 머리가 되심을 고백한다. WCC는 무형교회의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에 유형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실상 WCC 자체가 머리가 되는 유형적이고 기구적인 교회일치만 외치고 있다.

교회가 하나인 것은 주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누어지지 않으시듯이 교회도 나뉠 수 없다.(고전 1:13) 교회가 하나인 것은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머리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기 때문이다.(요 14:6; 엡 1:23; 골 1:18)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오직 진리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격을 갖춘 일치’(a qualified unity), ‘진리 가운데의 일치’(a unity-in-the-truth)여야 한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교세나 지략이나 리더십이 아니라 오직 진리로 주도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과 총회와 교회는 진리로 이 일을 앞장서서 감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주의 장로교 보수신학과 신앙을 굳게 붙들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도록 해야 한다.’(엡 4:3) 우리가 받은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이시다.(롬 8:9; 빌 1:19; 요 14:17, 26; 15:26) 아무리 수가 많고 외형적으로 결속하고 한 소리를 내는 듯해도 바알의 선지자들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고 위로부터의 어떤 응답이 없다. 오직 ‘주의 종’ 엘리야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불도, 비도 내려주셨다.(왕상 18:36, 38, 45) ‘다른 복음은 없나니’(갈 1:7), 오직 주의 말씀대로!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