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인터뷰] 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자기를 부인하며 성화 추구하는 리더십은 결국 모두에게 인정
억압과 강요 아닌 ‘균형과 선교’ 추구가 ‘행복한 목회사역’ 핵심
숫자 집착하면 모든 것 망가져 … 긴호흡으로 ‘천천히 빠르게’

 
▲ 홍문수 목사의 23년 담임 목회의 여정은 자기부인이었다. 자기부인으로 그는 주도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신사적인 성도들과 함께 참 좋은 교회, 행복한 목회를 누리고 있다.
홍문수 목사는 진심으로 행복한 목회자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시무하는 신반포교회가 진짜 좋은 교회라 자부한다. 신사적인 장로들을 자랑하고 싶어 하고, 심지어 업어 주고 싶을 정도라 한다.

이쯤이면 홍 목사가 얼마나 편한 목회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23년 넘게 담임목회 했으니 교회를 평정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홍문수 목사에게서 행복한 목회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부인’. 그랬다. 23년간 그는 처절할 정도로 자기부인의 삶을 살았다. 자기부인에서 비롯되는 성화의 과정이 인내하게 했고, 모든 것을 품는 넉넉한 인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목회적 야망이나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부단히도 찾은 결실이 바로 행복한 목회, 좋은 교회의 목회자라는 고백이다. 23년 넘는 장기 목회 여정이 어찌 평탄만 했을까? 숱한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추구하고, 가족 같은 교회가 됐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순응하는 리더십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이끄시는 일에는 목회자로서 단호함과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십분 발휘한다.

지금 나타나는 현상만 봐도 앞으로의 목회환경은 녹록치 않다. 그러기에 실력 뿐 아니라 영성과 인성, 도덕성에 탁월함을 가져야 목회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홍문수 목사. ‘예배-교육-선교’라는 트라이앵글 미니스트리를 통해 균형적인 목회를 펼치는 그의 목회 여정에서 장기 목회의 가능성과 교회의 방향성을 찾아본다.
 
▲신반포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진 교회인가.

=평안하고 화목한 교회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로 선교지향적인 교회이기도 하다.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겠지만 평안한 교회를 추구하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고, 이것을 목회 최우선에 두고 있다.

우리 교회는 평범함과 균형, 평안을 추구하는 교회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초대교회의 교회 원형이고 좋은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 모형을 따라가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치명적 오류가 타문화권 선교를 놓친 것이다. 스데반 순교가 그런 배경에서 나왔고, 이방 선교가 시작됐다. 이후 안디옥 교회가 탄생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배, 가르침, 공동체 교제, 구제, 봉사가 골고루 있는 균형 있는 교회였다. 그러나 이방인 선교를 놓쳤다. 이방인 선교는 안디옥 교회를 통해 보완됐다. 성경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제일 표준이 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다. 따지고 보면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러므로 ‘균형’이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넘어 ‘선교’가 있는 안디옥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목회의 핵심적 줄기다.
 
▲부목사에서 담임목사로 청빙된 사례가 드문데, 어떻게 담임 청빙을 받게 됐나.

=1988년 11월에 신반포교회 부목사로 부임했다. 부임 당시 교회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임 목회자와 장로님간 불화가 있었다. 그걸 모르고 교회에 왔다. 결국 분열이 생기게 됐다. 그 와중에 성도 500명 정도가 빠져나갔다. 300명 정도는 전임 목회자를 따라가 교회를 개척했고, 200명은 디아스포라로 곳곳에 흩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장로님 15명중 이탈자가 전혀 없었다.

이후 새로운 담임목사 청빙이 이어졌지만 11개월간 공전상태가 이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선임 부목사가 미국으로 갔고, 갑자기 담임에 나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부목사가 담임되는 것과 35세의 젊은 나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부 반대가 있었다. 논의 끝에 결국 임시목사 청빙으로 투표해서 거의 대다수가 찬성했다. 이때부터 저 중심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얼떨떨했다. 객관적으로도 그렇고, 주관적으로 생각해도 나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된 것이다. 갑자기 담임이 되니 부목사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난감했다. 게다가 1년짜리였다. 너무 황당했다. 당시 교인들의 상처도 큰 상태였고, 1000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 젊은 나이에 목회한다는 것이 그랬다. 나를 봐도 한심했다. 그래서 새벽마다 눈물 흘리며 어떻게 하냐고 계속 기도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침을 주셨다. 현재 교회가 처한 상황의 원인 중에 선교에 집중하지 않았고, 기도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마음을 주셨다. 기도와 선교, 두 축이 교회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켰다. 1년이 지난 이듬해 연말에 위임투표를 제안해 당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공동의회에서도 위임목사로 청빙 받게 됐다. 100퍼센트 찬성을 받았다.

 
▲ 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언제부터 균형과 선교를 축으로 하는 목회를 꿈꿨나.

=담임 목회를 시작하는 처음부터 그랬다. 분열이 생긴 교회에 얼떨결에 부목사가 담임이 되었기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도와 선교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서 ‘트라이앵글 미니스트리(triangle ministry)’로 목회사역의 기초를 놓게 됐다. 삼각형 꼭짓점에 ‘예배-교육-선교’를 두고, 예배와 교육을 기초로 선교하는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담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요즘 말하는 특새가 없던 시절에 사순절 기간 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동안 기도하지 않음에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00명 이상이 참석하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 금요기도회에 열댓 명이 모이고, 새벽기도회에 고작 20~30명 밖에 나오지 않은 교회였는데, 특새 첫날에 200명으로 시작해 고난주간에는 300명, 부활절 새벽에는 무려 528명이나 참석했다. 이때 성도들이 스스로 놀랐다. 패색이 깊다가 승리의 자신감을 맛보게 됐다. 교회가 된다는 가능성을 경험한 것이다.

1년 만에 그렇게 분위기가 반전됐다. 특새 기간 선교에 참여하는 헌금이 쏟아졌다. 목적헌금인 관계로 다른 명목으로 쓸 수 없기에 선교를 시작하게 됐다. 선교와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목회를 자리 잡게 됐다.
 
▲신반포교회하면 선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선교는 교회의 마땅한 사명이지만, 전교회적으로 동력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어떻게 선교를 교회적 가치로 삼고 동력화했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등을 떠미셨다. 선교지향적 교회로 내모셨다. 선교할 수 있는 교회였는데 안 하고 있었기에 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도 나름대로 했지만 이방인 선교에 소홀하다가 시련을 당하고, 선교로 극복해 변화된 교회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멘토링하신 것이다. 담임 초창기 교회가 복잡하고 어렵다보니 누구한테도 말을 못했다. 다른 곳에다 말을 하게 되면 목사가 교회 흉보고 다니는 꼴이기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갈 수밖에 없었다. 순수하게 대화식 기도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일일이 가르쳐주셨다.

우리 교회는 피난민이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모토가 ‘절약제일주의’다. 선교하면 돈 나가기 때문에 허락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당회를 하면서 순간적인 기도와 은혜로 잘 추진하게 됐다.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싸우지 않는 지혜가 필요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장로님들이 설득이 되었고, 갈등의 위기를 잘 넘기게 됐다.

초기에는 원로목사님과 장로님을 후원하며 선교지에 나가도록 했다. 이것이 발전돼 전교회적으로 선교 분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접촉이 되면 무조건 강단에 세웠고, 단기선교 선교축제 선교컨퍼런스 단기선교학교 등을 꾸준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선교사 헌신이 이어졌다. 9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91호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 중에 90%가 우리 교회 출신의 청년과 장년, 목회자들이다. 풀뿌리선교의 열매다.


▲신반포교회만의 선교적 특징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말 그대로 풀뿌리선교다. 교회 자체가 선교공동체가 되도록 ‘전교인 선교사화’를 추구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됐다. 20년 이상 되다보니 이제는 선교가 자리 잡히고 체계화됐다. ‘가든지 보내든지’의 마인드가 교회에 녹아있다. 신반포교회에서 선교를 반대하면 간첩이라 할 정도가 됐다. 초등학생 이상 교회 구성원 절반 정도가 어떤 식으로든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교회가 선교를 하게 되면 선교뿐 아니라 월드 비전(world vision)이 생긴다. 선교적 노하우와 경험이 쌓이다보니 체계적인 선교 매뉴얼이 생겼고, 초등학생조차도 매뉴얼에 따라 선교 현지에서 역할을 하고 온다. 얼마 전 우리 교회 초등학생들이 선교지의 무슬림 학교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놀라운 일이다. 또래의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등학생이라고 선교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훈련과 선교현지와 긴밀히 협의하며, 선교지 맞춤형으로 준비해 보내면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이 변화되고, 선교사 헌신이 이어지고 있다. 병원, 교도소, 농어촌교회 등 국내 사역에도 적극적이다. 여름에 200여명이 농어촌교회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이주민선교도 하고, 의료선교도 한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풀뿌리선교이며, 전방위적 융합선교를 펼치고 있다.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이제는 선교 필드에 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앞서 신반포교회는 화목하고 평안하다 하셨다. 진정으로 그러한가.

=외람되지만 진짜 외람되지만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교회다. 과거에는 교역자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교인 중심으로 사역을 진행한다. 교역자는 기도와 말씀 사역에만 집중하지, 모든 사역은 교인들이 한다. 그래서 성도 수에 비해 교역자가 적다. 평신도 중심 사역 교회다.

지상 교회로서 어려움과 갈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짜 평안하고, 든든하고, 건강한 교회다. 교인들이 정말 신사(젠틀)답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서 행복한 것이 절대 아니다. 평신도 중심이고, 규모에 비해 공동체성 지수가 상당히 높다. 모든 부서가 교회 스피릿과 맞물려 돌아간다. ‘팀스피릿(team spirit)’이고, ‘원스피릿(one spirit)’이다. 우리 교회는 선교 마인드로 완전 하나다. 억압과 강요가 아니라 20년 넘는 목회의 결과다.
 
▲한국교회 내에 갈수록 교회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교회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 때문이라 보는가.

=교회분쟁의 근본원인은 사람으로 치면 목회자에게 있다. 듣기 싫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교회의 긍·부정의 요인은 담임목사 중심인 한국교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분쟁의 핵이 목사다. 담임목사의 왜곡된 목회관과 인격, 세속적인 과욕 등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분열의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가 있다. 심지어 신학교에서조차도 잘못된 목회관을 심어주는 경우도 있다.

인본주의적 목회로 인해 분파가 생기게 된다. 통합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자신을 지지하는 친위대 같은 사람을 편애하게 되면 결국 교회는 갈라진다. 그렇다고 완전한 하나됨은 불가능하다. 미운 짓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내 가족이고, 내 양이라 생각해야 한다. 내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내침으로 오는 반사이익은 단기적으로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목회자 자신에게 안 좋다. 인내하고 내려놓는 목사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부목사로 있다가 갑자기 담임목사가 돼 지금도 여전히 부목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장점이 있다. 하나님을 담임목사로 여기고, 욕심 내지 않고 서둘지 않게 됐다. 인간적으로 좌지우지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 지시받고 멘토링 받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라 했는데, 나는 예수 믿고부터 늘 그런 기도를 했다. 일방적으로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기도를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결론적으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부인’이다. 자기부인은 계속적으로 ‘성화’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단편적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핵심 속에 믿음으로 변화되는 성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바로 자기부인이 선행돼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 성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싸우겠는가? 겸손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된 줄로 생각하면 싸우게 된다. 어떠한 제도적인 장치도 불가능하다.

한국교회 분쟁은 욕심싸움, 자존심싸움, 주도권싸움, 감정싸움이다. 사리를 분별하는 싸움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자기부인의 길을 걷고, 성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년 넘게 교회를 분쟁 없이 평화롭게 이끌어 가시는 비결은 무엇인가.

=목사가 위임 받는 것은 마치 결혼하는 것과 같다. 교회와 결혼하는 것이다. 결혼을 했으니 교인의 대표인 장로님과 서로 맞춰가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사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평화를 위해 인격적으로 맞춰가는 것이지, 무조건 참고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의 기본사역 방향과 본질적 모습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럴 경우에도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이때는 완급의 지혜가 필요하다.

아울러 목회자가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세상적인 욕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인간적으로 섭섭함도 없게 된다. 갈등의 소지도 없게 된다. 선교적이고, 본질적인 목회를 한다면 세상적 욕심을 갖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현재 장기 목회를 하고 있다.

=신반포교회에 담임목사로 23년 2개월, 부목사 시절을 포함하면 26년 5개월 몸담고 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이다. 내 편에서는 기본에 충실했다.

하여간 성장이 일순위가 아니라 “교회 모습이 성경적인가” 하는 잣대에 근거해 목회했다. 성장기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성장조급증이 있다. 이것은 목사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있다. 다행히도 나는 목회 초기부터 성장을 스스로 포기하게 됐다. 성장은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환으로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한다면 은혜 주시고, 거기에 감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급하게 굴지 않고, 방향 맞추는데 집중했다. 거북이 같이 일 했지만 20년을 돌아보니 많은 일을 했더라.(웃음)

장기 목회 할 수 있던 것 중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좋은 장로님들을 주신 것이다. 저와 장로님의 마인드가 같다. 우리는 듀얼 멤버십을 갖고 있다. 신반포교회를 ‘로컬 처치(local church)’와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 관점에서 동시에 보니, 마음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되었고 굉장히 관용적이 됐다. 재정집행에 있어 외부에 흘러 보내는 것도 자연스럽게 됐다. 장로님들이 신사다. 속된 표현으로 우리 교회 장로님들을 업어주고 싶을 정도다. 부부조차도 의견이 갈리지 않는가? 이것을 감안하면 우리 장로님들은 진짜 신사다. 그런 분을 뽑아준 교인들에게도 감사하다.

 
 
▲23년간 장기 목회하고 계시는데,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강점은 안정적이다. 한 목회자가 꾸준하고,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도모할 수 있다. 가족공동체가 형성되는 장점도 있다.

반면 안정성이 역동성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목사들이 순환되기 때문에 그들의 다양한 은사에 의해 교회 분위기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분들 나름의 특성과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부목사들에게 위원회와 교구 사역을 동시에 맡기고 있다.
 
▲장기 목회함에 있어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장기 목회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기본적으로 익숙함이다. 익숙함이 성숙함으로 가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늘 경계했다. 독서를 통해 많이 배우고자 했다. 일반서적을 오히려 더 많이 읽고 있다. 시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교인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설교의 경우, 20년간 모든 원고를 보관하고 있다. 설교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교 목록을 만들어 성경별, 절기별로 내용이 겹치지 않도록 했다. 같은 본문이라도 새로운 설교가 되도록 애썼다.

오래하다 보니 성경 주석과 주해보다는 예화와의 싸움이 되더라. 물론 묵상과 해석이 중요하다는 전제다. 시대의 흐름에 대해 성경적으로 해답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업데이트된 예화가 재산이다. 오래된 성도들을 보면 성경본문 보다는 예화를 기억하더라. 예화 업데이트를 위해 독서, 인터넷 서핑, 좌우 스펙트럼을 포괄해 10개 이상의 일반 신문과 교계 신문을 정독한다. 기본 경건생활은 당연한 말이다.
 
▲신반포교회는 흔히 말하는 강남에서도 최근 뜨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른바 ‘강남 목회’가 무엇이 다른가.

=70년대 말에 아파트가 조성되었고, 최근부터 인근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말 그대로 핫(hot)한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강남은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그 자원을 잘 쓰는데 있다. 그런데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다 보니 영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자기의 분명한 선이 있다. 말씀을 대면할 때도 그렇고, 교회와 목회자에 대해서도 자기 판단이 강하다. 설득이 돼야 순종을 한다. 모든 면에서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모빌라이즈(동력화)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목회자는 계속 변화해야 하고, 성숙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부교역자 시절 인천의 가난한 동네에서 사역했던 목회경험이 지금의 목회 기준이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성도들이 열정이 있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은 인간적인 조건보다는 신앙과 영성이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헌금하는 것이다.

강남에는 풍부한 자원이 있지만 그것이 교회로 나와야 교회의 자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만만치 않은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성과 지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목회적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리더십은 영향력인데, 상대보다 나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강남은 돈, 학력, 나이 모든 면에서 교역자보다 뛰어나다. 그렇다면 결국 목회자는 인성과 영성에서 탁월함을 가져야 한다.

어떤 면에서 고달프다. 강남 목회가 세상적 기준으로 좋은 것만 아니다. 물가가 비싸 경제적으로 버겁다. 강남에 있지만 우리 교회는 서민풍이고, 나 역시 서민출신이다. 그렇다고 불편하지 않다. 화려하지 않고, 내적으로 긴축하고, 선교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쁘게 감당한다.
 
▲최근 <기독신문>이 우리 교단 목회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에 ‘인격과 품격’ 이어 ‘높은 도덕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왜 이런 답이 나왔다고 보는가.

=사실 강남 지역 뿐 아니다. 세속화로 인해 한국교회에 보편적인 싸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인성과 영성에 탁월함 보여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목회에 있어 설교가 힘들지만, 그렇다고 설교 때문에 힘들어지지 않는다. 장기 목회를 해야 한다면 결국은 인격싸움이다. 인격은 다 드러나게 된다. 신앙의 본질 속에서 성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교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겸손할 수밖에 없고,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
 
▲보편적 개념에서 성직자라면 높은 도덕성과 인품을 기본적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럼에도 목사님들 스스로가 인품과 도덕성 결여를 꼽은 것인데, 실제로 목회함에 있어 어려운 문제인가.

=목회자는 유리 상자 속의 삶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숨기고 살 수 없는 인생이다. 예를 들어 미국을 다녀도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다. 피할 데가 없는 존재다. 우스갯소리로 하나님 눈보다 CCTV가 더 무섭다는 말을 할 정도니. 하나님 눈보다 더 무서운게 교회의 눈이다.

우선 나부터 부족하다. 교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목회자의 가치관이다. 교인 중에 잘 나가는 사람과 부족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똑같이 대하느냐, 차이 나게 대하느냐를 본다는 것이다. 목사가 의도하지 않아도 힘 있고, 부자랑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 쉽다. 나은 환경의 사람을 실제로 좋아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목사의 평가가 되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것을 의식해야 한다. 신앙은 인격과 가치관에 녹아나게 해야 한다. 자기부인, 죄성, 욕심,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목회를 한다. 따지고 보면 교인들은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봉사한다. 돈 버는 것 따지면 교인들은 처절하게 돈을 번다. 그것으로 헌금한다. 그 헌금을 먹는 것이 미안하다. 우리가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게 아닌가?
 
 
▲한국교회의 침체와 퇴보, 탈종교화, 종교소비주의 등으로 목회환경이 갈수록 어렵다. 여기서 요구되는 목회자의 자질과 교회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무엇일까.

=일반적 추세가 도덕성을 강조하는 시대다. 시대가 타락했지만 역설적으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시대는 실력, 전문성, 고결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인들조차도 성직자 수준의 고결한 도덕성을 갖도록 요구하고 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청문회에서 보듯이 공직자 입문에 앞서 무서울 정도로 검증이 따르는 현실이다. 앞으로는 도덕성 싸움이다.

목회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보다 못하면 어떻게 성직자로 설 수 있겠나? 종교소비주의 입장에서 목사를 보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가? 목회하면서 종교소비주의가 실감날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인성, 영성, 도덕성, 이 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야 한다.

지성부분에서 말하자면, 성경(text)에 능하지만 상황(context)에도 탁월함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교단 목회자들이 주석과 경건서적 외에도 ‘문사철’이라하는 인문, 역사, 철학 분야의 일반서적을 통해 교인들에게 삶의 방향과 답을 제공해 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
 
▲목회환경이 실제로 어떻게 바뀌었나.

=교회도 세속화됐다. 목회자조차도 영향을 받는다. 교인들이 굉장히 똑똑해졌다. 목회자로서는 부담스러운 환경이다. 성경적인 이야기를 해도 시대와 맞지 않는 이야기로 취급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젊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주일성수, 십일조, 동성애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도 무너지고 있다. 자신의 기준에서 성경을 판단하려 하고 있다. 기도 역시 약화되는 시대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시대가 왔다.

점점 목회환경이 좋지 않다. 숫자도 그렇고, 신앙상태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목회하기 녹록하지 않는 시대가 성큼 왔다. 미래 담임목회를 꿈꾸는 목회자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장기 목회를 하는 목회자로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절대 조급하게 목회하면 안 된다. 장기 목회 관점에서다. ‘천천히 빠르게’ 하는 것이 목회다. 담임을 하게 되거나, 새로 부임해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기본 욕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통해 보여주시도록 긴 호흡을 갖고 목회하면 좋겠다. 숫자에 초점을 두는 것을 버리지 않으면 목사도 교인도 모두 힘들게 된다. 성장은 당연히 해야 한다. 성경적 교회를 하면 건강해지고, 건강하면 성장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숫자를 먼저 잡으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성경적이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는 교회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만도 큰 것이다. 크지만 비만하면 좋게 보지 않는다.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는 70~80년대의 성장 환상주의를 버려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강소교회에 가치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운 목회 환경 가운데 목회할 후배 목회자들을 이런 측면에서 응원하고 싶다.
 
▲부활절을 앞두고 있다. 해마다 맞는 것이지만 이번 부활절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나.

=목회나 신앙생활 기본이 자기부인이다. 그래야 변화된다. 그래서 허물 많은 부족한 존재라는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새롭게 집중적으로 고쳐야할 인격과 태도, 신앙생활을 찾아가는 중이고, 고치려 결단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홍문수 목사는 진심으로 행복한 목회자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시무하는 신반포교회가 진짜 좋은 교회라 자부한다. 신사적인 장로들을 자랑하고 싶어 하고, 심지어 업어 주고 싶을 정도라 한다.

이쯤이면 홍 목사가 얼마나 편한 목회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23년 넘게 담임목회 했으니 교회를 평정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홍문수 목사에게서 행복한 목회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부인’. 그랬다. 23년간 그는 처절할 정도로 자기부인의 삶을 살았다. 자기부인에서 비롯되는 성화의 과정이 인내하게 했고, 모든 것을 품는 넉넉한 인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목회적 야망이나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부단히도 찾은 결실이 바로 행복한 목회, 좋은 교회의 목회자라는 고백이다. 23년 넘는 장기 목회 여정이 어찌 평탄만 했을까? 숱한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추구하고, 가족 같은 교회가 됐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순응하는 리더십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이끄시는 일에는 목회자로서 단호함과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십분 발휘한다.

지금 나타나는 현상만 봐도 앞으로의 목회환경은 녹록치 않다. 그러기에 실력 뿐 아니라 영성과 인성, 도덕성에 탁월함을 가져야 목회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홍문수 목사. ‘예배-교육-선교’라는 트라이앵글 미니스트리를 통해 균형적인 목회를 펼치는 그의 목회 여정에서 장기 목회의 가능성과 교회의 방향성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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