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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고난을 뒤따르는 사람들, 순교자] (4)아르메니아 기독인 학살 100주년
‘기독인 말살’ 강풍에 수백만 명 쓰러지다

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제국에 의해 집단 대학살
이슬람 영향권서 교회 보호 ‘안간힘’

 

2015년은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조직적인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박해가 있어왔고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100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발생한 학살은 이 지역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을 인종말살 시키기 위해 어린이, 여자, 노약자 할 것 없이 학살해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더욱이 이 지역의 종교 분쟁은 단순히 100년 전 학살의 그 해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수세기의 해묵은 종교적 갈등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고, 여전히 기독교 박해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아르메니아, 종교분쟁의 역사

오늘날 아르메니아는 터키, 러시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이란의 국경이 접해 있으며, 이들 국가들이 둘러싼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언제든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토분쟁과 전쟁에 휩싸이기 쉬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유럽 강대국과 아시아 강대국의 중간에 위치한 독특한 지정학적인 특징으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반면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아르메니아는 중대한 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국가이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서기 4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지역에 기독교를 전래한 것은 예수의 제자 중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와 타데우스(Thaddeus)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아르메니아 교회의 정식 명칭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이다. 기독교는 전래된 후 300여 년간 잦은 외침을 받으면서 아르메니아의 국가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신앙적 근거가 되어가며 조금씩 교세를 확장해나갔다. 그리고 301년 티리다테스 3세(Tiridates Ⅲ, AD 238년~314년) 재위 중 국교로 공인됐다. 이는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337년보다 36년 앞선 시기였다.

그러다 450년 아르메니아를 점령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포기하고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다. 개종을 거부한 아르메니아인은 바르탄 마미고니안(Vartan Mamigonian)의 지휘 아래 페르시아 정부에 대항해 아바라이르 전투(Battle of Avarayr)를 하게 되지만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후 30년 동안 투쟁했다. 이 전쟁은 484년 마침내 아르메니아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이후에도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튀르크와 그 뒤를 이은 터키를 비롯한 아랍제국이 아르메니아 지배를 위해 수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이슬람 제국의 압력으로 주변 국가가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도 아르메니아는 수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개종을 거부하고 신앙을 지켜왔다.

100년 전 기독교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도 이 지역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충돌은 늘 존재해왔다. 1894년 아나톨리아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무슬림과 아르메니아인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해, 기독교인 2만 여 명이 사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아르메니아가 속한 코카서스(Caucasus) 지역은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간의 각축전이 전개되면서 기독교인 학살이 본격화됐다. 당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종교박해를 받아온 아르메니아인 다수가 러시아군에 참전하거나, 오스만 제국에 반발해 곳곳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며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오스만 제국은 1915년 4월 18세부터 50세에 이르는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강제 징집해 전쟁터로 끌고 갔다. 이들 대부분은 군사훈련을 받던 중 혹은 공사현장에 동원된 후 집단 처형됐다. 심지어 전쟁에서 보호받아야 될 노약자와 부녀자, 어린이들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사막으로 강제 추방돼 대부분 굶어죽거나 질병으로 사망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당시 사망자 수가 150만 명에서 2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이를 아르메니아 집단 대학살(Genocide)이라고 부르고 있다.

   
▲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와중 수백만 명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강제 징집된 후 처형됐다.(출처=www.facebook.com/armeniangenocide100)
 

아르메니아, 기독교신앙 수호에 안간힘

현재 아르메니아 국민의 90%이상이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이다. 이슬람 국가 사이에서 온갖 박해를 받으며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아르메니아는 이슬람은 물론, 기독교의 다른 종파에 대해서도 관용할 수 없다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의 주요 종교인 아르메니아사도교회의 배타적인 선교 권리를 헌법에 인정하고 있다. 또 아르메니아는 몇 년 전 아르메니아 의회에서 통과된 종교법과 형법 개정안에서 종교단체의 정부 등록절차와 요건을 이전의 200명의 신도수를 1000명으로 대폭 확대하는 등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에 더해 아르메니아사도교회를 제외한 다른 종교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사람에게 최고 2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그뿐 아니라 전도활동에 단순 참가한 사람에게도 최고 1년의 징역형 또는 아르메니아인의 평균 한 달 임금의 500배가 넘는 벌금을 내리도록 규정했다. 이에 더해 다른 종교의 교리나 활동에 대한 의심이나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다른 종교를 모독하는 행위를 금지해 일체의 전도활동을 막고 있다.

특히 중동에서 이슬람국가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한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젠, 나고르노-카라바흐, 이란 등 카스피 해 유전과 중앙아시아의 천연가스 이권과 수송경로 확보를 둘러싼 주변국과 강대국의 분쟁이 본격화되면서, 아르메니아는 자국 국민과 국가의 정체성 강화를 위해 아르메니아교회의 보호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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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자유 끝까지 지킨다”

100주년 맞아 세계 곳곳서 기념행사 예정
터키 공식 사과와 배상 요구 캠페인 벌여



기억은 그 자체로 저항이다. 뼈아픈 역사일수록 기억해야만 다시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기에 유태인들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벌어진 잔혹한 민족 학살의 역사를 대대로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제치하에서 고통 받았던 선조들의 핏빛 역사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인들은 100년 전 벌어졌던 잔혹한 기독교인 학살을 기억하고 종교 자유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 매년 4월 24일 해외와 전국 각지의 아르메니아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학살기념관을 찾아 희생자들에게 헌화를 하며 역사에 대한 기억을 자손대대로 이어가고 있다.(출처=www.genocide-museum.am)

아르메니아는 매년 4월 24일을 집단 대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경일로 지정해 지키고 있다. 매년 4월 24일에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학살 기념관(Armenian Genocide memorial)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이 기념관에는 둥글게 안으로 기울어진 12개의 기둥으로 둘러 쌓여있고 한가운데 원 안에 불꽃이 타고 있다. 참배객들은 이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는 조형물 가장자리에 희생자를 기리며 헌화한 후, 모두가 손을 잡고 기도한 후 불꽃 주위를 돌며 “아라랏 산(아르메니아 땅에 위치)은 이곳에 있지만 진정한 쉴 곳은 하늘에 있다”는 내용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특별히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아르메니아에서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 대학살을 알리는 기념식과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학살이 발생한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터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자행했던 대학살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터키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아르메니아인의 숫자로 30만 명이라고 숫자를 축소하며 ‘집단학살이나 대량학살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아르메니아 정부는 터키 정부에 공식적 사과와 희생자들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손해배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한편, 유럽의회는 물론 미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에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또 아르메니아사도교회에서는 아르메니아 학살로 희생된 이들을 성자로 추대하는 안도 검토 중에 있다. 그리고 민간단체에서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제작도 착수한 상태이다. 비록 아픈 역사일지라도 기억해야만 오늘과 내일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영 기자  chopin@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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