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순교적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평소 순교적 삶 걷다가 기꺼이 생명 바친 순교자들은 값진 유산
무서운 세속화의 시대, 성령 충만한 영적 무장 필요성 더 커졌다



 
▲ 박용규 교수
총신신대원·역사신학
구태여 터툴리안이 ‘순교는 교회의 씨’라고 한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기독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였다. 사도시대 스데반의 순교와 야고보의 순교가 복음의 확장의 전기가 된 것처럼 신앙을 지키다 생명을 잃은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복음은 생명력을 지니며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될 수 있었다. 초대교회는 물론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중세에도 이얀 후스와 위클리프를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개신교 신앙 때문에 로마 가톨릭에 의해 너무도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순교하기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온 이들 믿음의 선배들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순교는 교회의 씨였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주교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것을 널리 홍보하고 있지만 개신교도 참으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 역사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한문성경을 가지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통해 평양에 들어왔다가 순교했다. 어디 그 뿐인가? 한국선교는 실제로 순교로부터 시작되었다. 1889년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했다 입국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1890년 4월 순교한 헨리 데이비스, 1885년 입국해서 광혜원을 비롯하여 은둔의 나라 조선에서 질병에서 고생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다 생명을 잃은 헤론,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했다 소래에서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움막에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다 생명을 잃은 매켄지, 그리고 심혈을 기울이며 청일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료하다 세상을 떠난 제임스 홀. 모두 순교적 삶을 살았고 자신들의 생명을 주를 위해 온전히 바쳤다. 평양, 서울, 소래, 부산의 놀라운 복음의 진전은 이들의 순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성경번역을 위해 목포로 가다 군산 앞바다에서 순교한 아펜젤러는 또 어떤가? 1885년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에 입국해서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기독교서회의 전신 예수셩교셔회를 설립하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협력과 연합운동에 앞장서고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민중의 손에 들려주는 일에 자신의 생을 불태우다 순교했다.
 
생명 바친 수많은 선교사들
 
한국인들은 초기 이 땅에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복음 들고 미지의 땅을 밟은 이들이 보여준 신앙을 그대로 본받았다. 복음전도 때문에 만주 우장에서 활동하던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다 외국인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봉천 감옥에 투옥되었다 얼마 후 세상을 떠난 백홍준,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일경의 고문으로 인해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 제암리교회를 비롯하여 1919년 삼일운동 당시 순교한 전국의 수많은 교우들,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한 손양원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남북한의 순교자들은 이 땅의 짧은 역사가 순교의 역사였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로마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이와 같은 순교자들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전혀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이들의 순교적 신앙이 아름답지만 결코 그들이 완벽한 인간도, 순교 그 자체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공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순교는 한국교회사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순교자들이 순교를 하게 된 환경은 각기 또 시대마다 달랐지만 순교의 동기는 동일했다. 박해 시대 복음을 전하러 왔다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로 입국해서 주의 사역을 감당하다 생명을 잃은 헨리 데이비스, 매켄지, 아펜젤러 모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다 생명을 잃은 것이다. 이것은 105인 사건과 3.1운동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과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생명을 잃은 이들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다.

둘째, 한국의 순교자들의 순교 그 자체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들이 순교하기까지 보여주었던 순교적 삶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단 칼에 순교하기는 순교적 삶보다 더 쉬울 수 있다. 평소 순교적 삶을 살다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쳤던 한국의 개신교 순교자들은 한국교회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온갖 고문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앞에 당당하게 맞서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 옥중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보여준 신앙은 너무도 값진 것이다.
 
목숨과 바꾼 신앙절개
 
셋째, 초기 순교자들이 한국교회 신앙의 롤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토마스의 순교는 언더우드를 비롯하여 이 후 국내에 입국한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롤 모델이 되었고, 초기 선교사들의 순교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 신앙의 롤 모델이 되었다. 제임스 홀의 순교는 소래교회에서 활동하던 매켄지에게 너무도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폴리갑의 순교는 주기철 목사에게 롤 모델이었고, 주기철 목사의 순교는 손양원 목사에게 롤 모델이 되었다. 신사참배의 강요에 맞서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를 위해 바쳤던 순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일제에 의해 도태되지 않고 신앙의 맥을 이어 올 수 있었다. 한국교회 총회는 배도했지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인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다시 성경적인 신앙을 회복하고 계승할 수 있었다. 이들 순교자들은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고 이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

넷째, 한국교회 순교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북한과 이슬람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앙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고 있는가? 특히 한반도 북녘에서는 너무도 많은 지하 교인들이 기독교 신앙 때문에 순교를 맞고 있다. 탈북했다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다시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거나 북에서 신앙을 접하고 순교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북한 전문가들이나 북에서 탈북한 새터민들, 북한의 기독교인들과 접촉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교 소식통을 통해 직간접으로 유사한 북한의 종교상황 소식을 접하고 있다. 수백 수천의 순교자들을 배출하고 지금도 순교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을 위해 우리는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시대적 요청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통일의 시대를 앞당겨 아시아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 이슬람에서 계속되는 순교
 
마지막으로 오늘 이 시대만큼 순교적 신앙이 필요한 시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초대교회 물리적 박해를 통해 기독교를 말살하려던 사탄은 초대교회가 순교를 통해 오히려 더 놀랍게 복음이 확장되자 전혀 예기치 못한 무서운 기독교 말살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2가지 방향이었다. 하나는 이단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변질시키려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공인을 통해 박해받는 종교가 군림하는 종교로 바뀌면서 무서운 세속화가 진행되게 만든 일이다. 유세비우스는 이와 같은 사탄의 전략을 소상하게 기록하면서 초대교회가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었는가를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사탄은 양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탄압하는 것으로 남한에서는 세속화를 통해 신앙을 버리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박해를 받는 신앙인들은 박해 가운데서도 신앙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며 무장해야 하고 박해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 할 것이고, 박해가 없는 번영의 시대에 살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맘모니즘, 자유방임주의, 성적타락을 비롯한 복음의 세속화를 통해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하고 영적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주기철이 그립고 손양원이 그립다.
 
순교적 신앙 회복할 때

 한국교회는 2016년 내년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을 맞는다. 한국교회는 다시 순교적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의 흩어진 신앙의 옷깃을 여미고, 토마스, 주기철, 손양원이 전해준 순교적 신앙을 우리 개인의 삶과 교회의 사역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 가능하다. 일곱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이 성령충만을 받았기 때문에, 폴리갑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토마스가 1859년 웨일즈 부흥운동을 통해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에, 주기철 손양원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순교적 삶과 순교가 가능했다. 한국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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