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설교는 구원사역의 구체적 현장
 

 

기독교회의 설교는 교회의 흥망성쇠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가르쳐질 때, 교회는 부흥과 갱신을 맞이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에 의한 신앙과 삶의 개혁이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과 삶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성경 중심’은 오로지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 신자들의 믿음과 행동의 유일한 규범이 된다는 고백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이자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기독교회 존립의 유일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설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설교 없이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개개인 신자들의 삶도 역시 올바르게 설 수 없다. 더 나아가 이미 오래 전에 개혁교회가 전통적으로 고백하는 바, 취리히의 개혁자 불링거(H. Bullinger, 1504~1575)에 의해 작성된 제2스위스신앙고백서(1553년)는 설교가 지닌 고상하고도 거룩한 사명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설교는 하나님 말씀이다”(praedicatio verbi dei est verbum dei). 여기서 ‘est(...이다)’는 하나님 말씀의 설교와 하나님 말씀을 동등하게 만드는 엄청난 고백이자 선언이다. 이런 고백은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공유했던 보편적 사상이었다. 칼빈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종교개혁의 대원리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활동하신다’가 ‘성령은 설교된 말씀을 통해 활동하신다’의 원리로 굴절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설교가 무엇인지 설교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설교란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성경 말씀을 강해하고 오늘날의 회중에게 적용함으로써 구원의 유익을 전하는 것이다. 설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먼저 기억하자. 설교 사역은 인간 목회자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설교 사역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를 건설해 가기 위한 하나님 자신의 사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설교 사역에는 언제나 두 사역자(two agents)가 개입되어 있다. 인간 설교자는 언어와 행위라는 의사소통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청중들의 육신의 귀에 전달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청중들의 영혼의 귀에 복음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설교란 두 개의 다른 차원이 한 곳에서 만나는 역동적 사건이요, 신비적 조우이다. 인간 설교자의 수평적 차원의 의사소통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일하시는 수직적 차원의 구원 사역이 만나는 곳이다.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J. Calvin, 1509~1564) 역시 자신의 신명기 76번째 설교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의 말씀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 의해 설교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강단에서 외치는 이는 한 인간이고, 우리는 그 가르침이 요구하는 정도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그곳에는 하늘의 위엄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너무도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칼빈 전문가인 스토페르(R. Stauffer)는 칼빈에게 있어서 설교란 “진실로 신적 행위”이며,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현현, 혹은 하나님의 현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설교가 갖는 그 고상한 위치와 역할은 교회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강조되었다. 16세기 영국 청교도주의의 아버지이자 청교도 설교학의 창시자인 퍼킨스(W. Perkins, 1558-1602)는 설교의 역동성과 신비적 사건을 예정론과 교회론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창세 전 시간을 초월한 영원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자들을 오늘 복음이 선포되는 이 순간, 시간 세계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불러 모으고, 교회로 회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는 단순히 오늘 우리 신자들만의 모임이 아닌 것이다. 설교란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 실현되고 구체화되는 현장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하신 구원의 목적을 설교라는 수단과 방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다. 설교에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 설교자가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설교를 통하여 영원히 형벌 받아 마땅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이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이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금 가슴 절절히 감격하며,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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