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예수님 못자국은 구원과 부활의 증표
영원한 영광의 상흔…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
 

 

알렉산더 대왕이 대제국을 건설한 후 자신의 초상화를 후세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러 화가들을 불러 그리게 했지만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 전상으로 인한 흉터가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한 화가가 알렉산더에게 손으로 턱을 괴여 흉터를 살짝 가리게 하고 그렸습니다. 그제야 흡족해하며 그 화가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전혀 달랐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얼마든지 상처를 없앨 수 있었을 텐데 그 몸의 상처를 그대로 남겨 두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못 박힌 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못자국:영광의 십자가 상흔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입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두 사람이 제자들에게 간증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원수들의 핍박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는데(요 20:19), 예수님이 한 가운데 나타나셨으니 깜짝 놀라며 유령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37절). 그러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셨으므로 문이 잠겨 있어도 얼마든지 들어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먼저 손과 발을 보여주셨고(38~40절), 심지어 그들이 보는 데서 생선을 잡수심으로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의 손과 발에는 못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요 20:24~29). 물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당시의 흉측한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 빛나는 모습으로 변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언젠가 이런 성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손바닥의 못자국을 보여주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못자국이 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의 콘텍스트를 통해 유추하건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25장 2절도 그런 사실을 노래합니다.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그 손과 몸의 상처가 영광 중 빛나네 하늘의 천사도 그 영광 보고서 고난의 신비 알고자 늘 흠모하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체에 남아있는 상흔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영광의 상흔입니다.

 
십자가 상흔의 의미:구원, 부활, 승리, 심판의 증표

예수님의 상흔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동시에 다음의 네 가지 사실에 대한 증표가 됩니다.

첫째, 구원의 증표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합니다(롬 10:9~10). 그 근거는 십자가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못자국은 우리의 죗값을 다 치르셨음(요 19:30)을 확증하는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못자국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으로 구원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부활의 증표입니다. 예수님의 못자국은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표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부활에 대한 증거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장래 부활에 대한 보증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증거하는데(고전 15:20), 그 말은 부활의 보증이요 샘플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못자국을 바라봄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셋째, 승리의 증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환난을 많이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승리합니다. 그것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천상사역과 중보사역으로 가능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때마다 일마다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혹시 범죄해도 하나님 앞에 못자국을 보이면서 우리의 사죄를 위해 대언해 주십니다(요일 2:1). 또한 우리가 세상 살면서 연약해지거나 위험에 처할 때 우리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해 주십니다(롬 8:33~34). 그러므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롬 8:35~37). 아무쪼록 예수님의 못자국을 바라봄으로 환난 중에도 당당히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심판의 증표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십니다. 그때는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예수님은 무턱대고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복의 절차를 거치게 한 후 판결하십니다. 예수님은 못자국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자, 봐라! 죄인들을 위해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 살아났노라. 그리고 내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 주었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믿지 않고 기회를 놓쳤으니 이제 심판할 수밖에 없노라.’ 불신자들은 유구무언으로 영원한 심판에 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통곡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못자국을 바라보면서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험한 세상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제자도:영광의 상흔을 계승하는 삶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상처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것들을 영광의 상흔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고난을 영광의 상흔으로 승화시킵시다. 고난을 겪으며 얻은 상처들로 우리는 수치스러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극복하면 오히려 자랑이 되고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갖고 있었습니다(고후 12:7~10). 남의 병은 잘도 고쳐주었던 바울이지만 대장간 식칼이 노는 격으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기도했지만 끝내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이 약점을 통해 나타난다는 말씀을 듣고 다 내려놓습니다. 그 후에는 평생토록 가시를 안고 살면서 약한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수치스런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영광의 상흔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상처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면 오히려 감사하며 승리할 수 있는 영광의 상흔이 됩니다. 재미교포 시각장애인 고 강영우 박사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는 이제 장애 때문에(because)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despite)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애를 통해(through) 영광스런 인생이 됐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영광의 상흔으로 승화시킵시다. 우리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정죄를 위한 최후의 심판은 면제되지만 상급의 심판은 받습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부활의 몸은 다 영광스럽지만 각각 그 광채가 다릅니다(고전 15:41). 과연 어떤 사람이 더 빛나는 영광을 얻을까요? 당연히 주님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며 헌신한 사람입니다. 특히 사명을 위해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영광의 상흔으로 인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학자요, 이스라엘의 귀족이며, 로마시민권자로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복음만 들고 세계를 누볐습니다. 가는 데마다 핍박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고후 11:23~28). 그로 인해 생긴 모든 상처는 훈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에 가지고 있던 ‘예수의 흔적’(갈 4:17)이 바로 영원히 빛날 영광의 상흔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못자국은 영원히 빛나는 영광의 상흔입니다. 그것이 불신자에게는 심판의 증표지만 우리에게는 구원과 부활, 그리고 승리의 증표입니다. 부디 그 못자국을 바라보며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로 고난을 이기고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영광의 상흔을 계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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