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영환 교수(총신대학교)

불안한 인간, 유일한 길은 하나님
 

 

종교개혁과 모더니즘은 중세의 세계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각각 출발하였다. 인간을 자율적 존재로 보았던 르네상스-계몽주의와 달리 인간은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타율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르네상스-계몽주의는 자율적인 인간에 집중했지만, 칼빈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가 상호교환적인 상호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으로부터 출발해서 세계를 이해하는 모더니즘의 시도에 대해서 칼빈은 이러한 시도들이 인간의 현실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모더니즘의 인식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모더니즘은 그 사상적인 출발점을 그리스의 문화에서 찾았다. 그리스 문화의 특징은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합리성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주장한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의 말은 이 시대의 가치기준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신을 인간과 유사한 존재로 보았던 그리스인들에게 신들은 자신들의 삶의 토대로 삼을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이 자기들이 만든 인간사회에 의지를 하였고, 그 사회가 붕괴되었을 때에 신들 역시 몰락하였다. 이러한 신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삶의 준거점으로서 인간을 내세우게 하였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르네상스-계몽주의는 그리스문화에 내재되어 있던 인간에 대한 강조와 합리성을 그 사상적인 토대로 삼았다. 모더니즘의 주창자들은 인간에 대한 강조와 인간의 이성 혹은 합리성에 대한 낙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빵떼옹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이 없어도 스스로 완전한 삶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자율성을 토대로 출발한 모더니즘은 결국 인간성 파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소외와 파괴 그리고 상대주의라는 문제들은 보편적인 실재가 아닌 개별적 객체로서 인간을 그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칼빈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가들, 특별히 칼빈은 인간의 지성이 그 영역 속에서 모든 지식을 갖추고 무한한 존재인양 활동한다는 인간의 자율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만이 인간과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칼빈은 인간이 자신을 올바로 알기 위해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던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이성만을 가지고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오성과 의지가 다 부패되었기 때문이었다. 모더니즘이 그 말기에 도달하면서 보였던 인간소외현상, 삶의 파편화는 칼빈이 이미 인식한 바와 같이 부패한 본성을 추구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라고 보는 칼빈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모더니즘의 말기적인 현상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한다고 보여진다.

모더니즘이 한계에 도달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존재론적 상관관계에 있는 인간을 역설했던 ‘종교개혁의 인간관’의 가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보편적인 가치로서 개인에 대한 강조로 출발했던 모더니즘이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빠진 이 시점 속에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보편적 실재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했던 종교개혁가들의 외침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모더니즘이 그 출발선상에서 믿었던 것과 같이 자율적인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더 이상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에서 보여주고자 하였던 확신에 찬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불안 혹은 절망이라는 병에 빠진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하나님뿐이다. 개혁가들은 인간 안에 내재된 의가 아닌 전가된 의만이 인간이 직면한 죄와 소외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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