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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일어나세요"[부활절특집] 사역현장보다 외로운 아픈 선교사
   
▲ 암 투병을 하며 재활 중인 석원제 최경희 선교사가 복내전인치유센터 원장 이박행 목사(왼쪽)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꽁꽁 얼어붙었던 냇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비쩍 말라있던 나뭇가지들에는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퍼덕이는 새들의 날갯짓에도 힘이 느껴진다. 시나브로 봄이 스며든 전남 보성의 천봉산에는 생명의 기운이 물씬 감돌고 있다.

석원제 선교사(63세)는 이곳에서 두 번째 바뀌는 계절을 맞는다. 그는 지난해 이맘 때 폐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았다.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으로 15년 동안 선교가 제한된 지역에서 복음을 위해 분투해왔고, 곧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선교사들은 현지에서 의료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강검진은 커녕 감기 치료조차 받기가 어려워요. 어쩌다 큰 맘 먹고 병원을 찾았다가도, 복잡한 절차며 지루한 대기시간 때문에 후회하고 그냥 돌아오기 일쑤지요. 여러 차례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어지간한 고통은 참고 지내는 게 습관이 됐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병을 키우게 됐네요.”

아픈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니었다. 예정에 없던 사역지 철수를 받아들여야 했고, 귀국 후에는 후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허망한 상황을 겪었다. 치료는 둘째 치고 당장 받아주는 데도, 마땅히 갈 데도 없었다. 선교지에서보다 더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최경희 선교사(42)는 캄보디아로 파송을 받아 사역하던 도중, 몸에 심각한 이상을 느껴 귀국했다. 두려움 속에 망설이다 찾아간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3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종양이 이미 신체 다른 부위에까지 전이된 상태라는 말도 덧붙였다.

“해외로 나가기 전, 몸담았던 출판사에서 종양에 관한 서적들을 여러 차례 발간해보아서 암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전정보는 충분히 가진 상태였죠. 그래서 이미 제 상태가 수술이나 치료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픈 본능을 억누를 수 없더군요.”

심지어 그녀는 동역하던 다른 여선교사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도 있었다. 의지할 가족조차 없는 독신 여성선교사가 아무 대책 없이 홀로 감내해야했을 슬픔과 공포를 과연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선교사라는 신분, 그리고 절망적인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빼고는 아무런 공통점이나 연결고리가 없던 두 사람이 보성 복내전인치유센터에서 한 식구가 됐다.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선교사들을 위한 전인치유캠프가 마련된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왔고, 한 달간의 무료요양기간을 보낸 후 둘 다 장기유료요양을 선택해 이곳에서 머물게 됐다.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싼 요양비도 부담스러웠고, 전인치유라는 생소한 개념에 신뢰를 갖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말씀 의료 상담 예술 식사 운동 등 온갖 치유프로그램들을 경험하며 보낸 이곳 생활이 여러 달 지난 지금, 두 사람의 가슴에는 새로운 소망의 씨앗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입소 당시만 해도 스스로 한 걸음 내딛기조차 힘들어했던 석 선교사는 요즘 산길을 홀로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여전히 호흡은 거칠고, 무서운 속도로 피로가 몰려오곤 하지만 이 또한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붙었다. 무엇보다도 ‘버려진 존재’로 전락한 충격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새롭게 누리면서 그의 표정은 몰라보게 밝아졌다.

최 선교사는 이곳에서 암과 건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전에는 하루 두세 시간 밖에 못 자고 몸을 혹사하는 것이 참다운 헌신이라 여겼지만, 암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 모두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 청지기의 본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복내전인치유센터가 로하스캠프라는 이름의 전인치유교실을 통해 본격적으로 KWMA GMS 바울선교회 시니어선교한국 등의 선교단체들과 동역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이곳을 찾는 선교사들의 발길이 크게 늘고 있다. 다가오는 6월에도 안식년을 맞은 GMS선교사 20여명이 여기서 재충전 프로그램을 가질 예정이다.

센터 원장인 이박행 목사는 지난 20년간 이루어낸 전인치유 사역의 열매들로 선교사들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선교사들이 이토록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도록 방치하는 한국교회의 세태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장병들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는데, 그들을 책임져 주어야할 정부가 아무런 일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봅시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라 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영적 전투의 현장으로 내보낸 선교사들이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는데, 모두가 나 몰라라 한다면 어떻게 교회나 교단이 신뢰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목사는 계속해서 건강문제 등으로 위기에 처한 선교사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교사 발탁과 훈련단계에서부터 스스로 건강을 체크하고, 자기관리를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반드시 도입하고, 난치병으로 귀국한 선교사들을 위한 치료와 요양 시설 및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지원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가며 병든 선교사들을 섬기는 일을 복내전인치유센터와 같은 시설이나 기독병원 등의 의료기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교영역으로 간주하고 선교단체들이 더 직접적,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석 선교사는 자신의 건강이 회복되어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 다른 선교사들을 돌보는 일에 투신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전인치유의 가치와 방식들이 선교사 자신 뿐 아니라, 선교현장의 실제사역에도 도움이 되도록 접목하는 일에 한몫을 하고 싶단다. 최 선교사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른 암환자들의 영적 양육과 내적치유에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이들의 기대와 소망은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과연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시간과 건강을 허락하실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에게 이제는 한국교회가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부활의 감격스러운 역사가 거기에서 시작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복내전인치유센터가 안식년을 맞은 선교사들을 위해 마련한 로하스캠프의 모습.

정재영 기자  jyjung@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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