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영환 교수(총신대학교)

하나님 떠난 자유, 답을 얻지 못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한 인간이 결국 자신이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을 예술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미래를 바라보던 ‘위대한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미래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지구의 멸망과 좀비(zombie)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인간 스스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라진지 이처럼 이미 오래이다.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인 존재들도 아니라 단지 본성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낸 골딘(Nan Goldin)이 그녀의 작품 ‘구타당한 지 한 달 후(1984)’라는 작품에서 묘사하고자 하였던 것도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함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한 어떤 여인의 얼굴을 찍은 것으로, 사진에 등장하는 여인은 퍼렇게 멍이 든 눈과 삐뚤어진 코 그리고 입술은 터진 모습이다. 그녀는 이 사진을 통해서 현대인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를 향한 욕망이 불일 듯 일어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욕망이 식어지면 결국 남는 것은 상처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좀비영화는 이 보다 더 심각하다.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지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하다. 자신의 의식을 통제할 기능이 마비된 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굶주린 동물과 같은 존재들이다.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는 소변, 젖, 혈액, 정액 등과 같은 신체의 분비물을 그의 주요 작품 소재로 삼았다. 그가 이러한 재료들을 사용한 것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고 동물적이라는 것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윔 델보이(Wim Delvoye)는 ‘클로카(Cloaca)’라는 설치작품에서 인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파란 불이 들어오면 기계가 먹을 준비를 한다. 음식물이 음식물분쇄기 안으로 주입된다. 분쇄기 안에서 나온 음식은 산, 췌장액, 담즙액과 같은 인간의 소화액과 동일한 것들이 들어있는 가지런히 배열된 여섯 개의 병 안으로 차례로 들어간 후에 배설물로 나온다. ‘클로카’는 이 시대의 인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더 이상 영적인 존재나 다른 어떤 것과 구별된 특별한 존재가 아닌 섭취한 음식물을 배설물로 만드는 존재일 뿐인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현대미술이 죽음과 그 신체적 편린들, 곧 시체, 두개골, 내장기관들, 소변, 혈액, 정액과 같은 각종 분비물들을 사용하는 것은 모더니즘의 종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자신을 자율적인 존재로 높였지만, 그 마지막 결과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절망에 빠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신으로부터 떠난 자유, 자율적인 인간 그리고 진보에 대한 신념과 같은 것들은 모더니즘이 지어낸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시편기자가 말한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시 69:20)라는 고백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긷던 여인에게 “지금까지 네가 추구해온 것들이 일시적으로 너를 만족시켰을지는 모르지만 너에게 지속한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네게 주는 물은 네게 지금까지 추구하던 것과 달라서 이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신 것처럼 인간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더니즘적인 희망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는 말씀처럼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자유를 찾으려고 한다. 신을 떠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던 인간이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도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어둠의 권세아래 들어가 자신의 도피처를 삼으려 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 예술이 고발하는 인간의 실존은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귀결이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다. 인간은 모더니즘의 이상과 같이 자신의 이성으로 이 세상의 문제들에 의해서 충분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오성과 의지가 다 부패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 예술에서 나타나는 삶의 파편화라는 주제는 칼빈이 지적한 바와 같이 부패한 본성을 추구한 결과이다. 모더니즘이 한계에 도달한 이 시점에서 이제 우리는 칼빈이 역설한 바,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온전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재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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