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터뷰] 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 김미열 목사. 그는 고민이 많은 목사다. 성도들에게 모델이 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고민이다. 그는 실천가다. 바쁜 일정에도 전도를 나가고, 약한 자를 돌아본다. 그의 고민과 실천적 삶을 보면 나사렛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나사렛서 출발해야 골고다와 십자가, 소외된 자가 보인다
경건을 외치지만 경건의 능력 놓치고 있지 않은 지 살펴야
목회자가 복음의 결실 있어야 성도들이 전도, “목숨 걸어라”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그 교회가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김미열 목사 역시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목양자로서의 고민과 복음전도자로서의 실천력은 남다른 목회자였다.

“목사가 경건을 외치지만 경건의 능력을 놓치기 십상이다.”는 말 속에 그의 목회적 고민과 실천이 동시에 담겨 있다. 김미열 목사는 현재 목사로서 성도보다 못한 내려놓음과 포기에 대해 많은 고민과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성도들에게 모델이 되어야할 부분을 찾고,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내려놓고 포기하는 훈련을 실제로 하는 중이었다.

또한 김 목사는 매주 한 차례 이상 반드시 전도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만나기 힘들고, 연약하고, 소외된 성도들과 되도록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려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성도들에게 신앙적 삶과 인생의 모델이 되어야 할 목회자로서 자신을 향한 채찍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미열 목사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워하고, 말을 아꼈다. 아직 젊고, 내세울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못내 미안함이 커서였다. 하지만 깊은 고뇌와 실제적 삶이 있는 목회자의 마디마디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영광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고난의 나사렛과 골고다로 가야지만 교회가 회복되고 복음의 가치관을 비로소 실현시킬 수 있다는 김미열 목사. 그와 함께 경건의 능력이 역동하는 교회와 목사, 성도의 모습을 찾는 여정을 떠나본다.

 
▲ 김미열 목사(원주중부교회)
▲그간 목회여정은 어떠했나.
=총신대학교를 다니며 안산반월교회에 나갔다. 30명 모이는 개척교회였다. 대학 1학년 때부터 20년간 몸담았다. 군 복무시절 박명수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청량교회에 4년간 다니는 것 빼고는 줄곧 안산반월교회에 있었다. 안산에서 무엇보다 교회부흥을 경험한 것이 감사다. 교인 모두가 초신자인데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을 체험했다. 신대원 졸업 이후 신대원에서 기독교교육으로 강의하고 있었다. 담임목사가 공석이던 원주중부교회의 부탁으로 주일설교를 한 번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현재 담임목사로 사역하게 됐다.

사실 고향이 원주 인근의 문막이다. 고등학교때 원주로 유학 와서 원주중부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고향교회 같은 곳에서 목회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컸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좋은 판단이었다. 왜냐면 초중고 동창들이 이 지역에 많다. 편하게 동창으로 만나 교제하다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갈 곳이 너무 많다. 고향에서 목회하는 장점을 톡톡히 보고 있다.
개척교회에서 부흥을 경험하는 것이 내겐 너무 큰 복이었다. 개척교회 관심은 오직 전도해서 학습을 주고, 세례를 베풀고, 직분지로 임명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이것이 본질이다. 전도하고, 신앙고백하고, 책임 있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교회본질인 것이다. 이것을 배운 것이고, 그래서 감사하다.
 
▲원주중부교회 부임 전후 상황은 어떠했나.
=2003년 5월 22일에 부임했다. 원주중부교회는 1960년도에 설립된 40년 넘은 교회였다. 당시 현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말씀에 대한 순종과 교회사랑이 큰 교회였다. 이는 철저한 헌금생활과 보수적 신앙생활, 모이기를 잘하고, 영적 리더들의 모범 등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적성숙과 교회부흥에 대한 갈망이 넘친 교회였다. 반대로 예배와 삶의 역동성 약화, 복음전도와 제자도 인식 미약, 명료한 비전과 지역성이 결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사가 있는 전통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부임 후 교회가 약화된 분야에 대한 ‘처방적 목회’에 집중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전도였다. 3년차까지 복음전도를 목회 최우선 과제로 삼고, 지역사회 전도실천과 세계선교 정신구축에 힘썼다. 이를 위해 2년간 수요예배를 성경 속 전도인물을 소개하고, 전도를 실천한 교인 간증, 전도대상자와 전도지역을 위한 합심기도 등 전도중심으로 진행했다. 연 4회 전도간증학교를 열기도 했고, 결혼예비학교, 1일 아버지·어머니학교, 부부학교, 관계전도초청축제 등으로 전도대상자와 접촉기회를 계속 갖도록 했다. 이외에도 주보전도지 매주 3000부 배포, 매월 1회 3부 예배 후 전교인이 전도를 나가는 복음전도대회, 명절 기간 고속도로 IC전도축제, 각종 전도대를 운영했다. 선교정신 구축을 위해서도 매년 6월 낙도전도, LMTC 운영, 해외아웃리치, 매년 한 가정씩 해외선교사 파송, 진중세례식, 호스피스사역 등을 전개했다.
 
▲들어보니 빈틈없는 전도와 선교사역을 펼쳤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우리 교회는 전도에 목숨 건 교회라 보면 된다. 예전에는 전도할 경우 교회로 오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 전도 현장에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미자립교회가 요청할 경우 전도대원들이 찾아가서 전도를 지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위해 전도지를 일간지 신문 속에 넣어 배포도 했고, 케이블방송에 광고하는 등 전도확산에 힘썼다. 원주지역에 영혼구원 열정이 회복되고, 이를 통해 교회간 연합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랬다.

전도동력화에 있어 성도들의 전도간증이 전도 파급효과를 톡톡히 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것 같다. 이런 과정에서 초신자들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교회로 몰려왔다. 교회건축이 불가피해 부임 이듬해 시작했다. 사실은 교회 본질적인 사명이 세계선교인데, 매년 선교사 파송 계획을 잡았으나 건축으로 하지 못하다가, 2007년 이후 매년 선교사 파송하고 있다. 현재 8가정을 파송했다.
 
▲전도 외에 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복음전도와 제자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말씀과 기도운동이 왕성하다.

제자도를 가르치고 실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나를 배우면 그것을 바로 실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말씀에 은혜가 있으면 바로 은혜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제자교육원을 운영하며 제자훈련을 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집단적 제자도가 아니라 구역 소그룹과 개인 차원에서 제자도를 실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돌보지 못하는 이웃을 소그룹 또는 개인이 돌보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지역섬김에 있어 집단보다는 개인이나 소그룹이 관계성과 지속성에 있어 더 큰 효과가 있다.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달 셋째 주를 호스피스사역 집중주간으로 고정했다. 평소에 섬김을 실천하지만 이 주간에 섬김 집중과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크게 터트리는 것보다 지극히 사소한 일과 섬김에서 감동이 오기에 보람을 느낀다. “이것이 목양의 즐거움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호스피스사역을 통해 자연스레 교구나 지역에서 특정인물이 부각되고, 이를 통해 교회 일꾼이 자연스레 세워지고 있는 것은 덤으로 오는 효과다.

사실 전도와 제자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도사역이 필수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경건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위로부터 공급받는 은혜와 그에 반응하는 삶을 나누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도에 집중해야겠다는 판단에 부임 초기부터 기도에 집중했다.

특히 매주일 아침 8시 30분에 모든 장로님이 모여 20~30분 동안 주일예배와 교회의 본질적 사명, 교회 내 연약한 자, 파송선교사 등을 위해 기도한다. 장로님들의 기도가 지속적이다. 그리고 세밀하게 응답하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너무 감격적이다.

장로님들의 기도모임은 이제는 모이면 기도하는 공동체로 확산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이면 기도하는 것이 즐거움이 됐다. 주일이면 여기저기서 기도소리가 들린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비전이 공유되고, 비전이 실현되는 것을 체험했다. 우리 사역자들도 매일 아침 8시 45분부터 비전공유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기도사역에서 중요한 것이 새벽기도다. 매월 1일 새벽성찬예배를 실시한다. 이때 자녀와 함께 나와 성찬에 참여하고, 가정의 비전을 공유하고 기도하게 한다. 신앙 및 자녀교육과 가정의 비전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많은 기도 프로그램이 있다.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기쁨과 동시에 갈등도 있었을 법한데.
=본질적인 면에서 기쁜 점은 전도를 통해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회심해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식에 참여하는 사람을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의 즐거움이 있다.

반면에 초신자가 들어와 변화되는 과정에서 수평이동이 일정부분 생겼다. 지역의 동료 목회자들에게 불편함과 미안함, 아픔, 안타까움이 있다. 또 하나가 있다면 교인들의 인격적인 상호작용이 어렵다는 것이 힘들다. 가족 같은 느낌을 갖고 영적 돌봄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갈등과 아픔을 갖는다.

교회는 철저하게 지역교회 기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성이 산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고민이 크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교회가 활성화되기 위해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목회함에 있어 성도들을 데리고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경험상 그렇게는 안 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개인적 차원에서 일단 복음전도에 충실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전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목회자가 복음에 대한 결실이 있어야 성도들이 전도한다. 복음전도에 목숨을 거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설교에도 목숨 걸어야 하지만, 복음전도에도 목숨 걸어야 한다. 교회에서 목회자는 복음전도로 이미지화 돼야 한다.(김미열 목사는 실제로 거리전도나 아파트전도, 관계전도 등 1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전도를 실천하고 있다.)

두 번째로 끊임없이 예수의 제자로서 배우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배움의 개념은 어디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의 삶을 위해 계속 애쓰고 실천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기도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적어도 2년간 목회자는 전도, 기도, 돌봄의 삶이라는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기성교회의 변화와 부흥은 복음의 감격으로 변화되는 모습에서 영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일단은 목회자가 복음전도자, 제자도, 기도자가 돼야 한다.

또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교회를 잘 진단해야 한다. 구성분포와 영적 분위기에 대한 세밀한 진단에 따른 목회적 처방이 필요하다. 진단을 통해 선택을 해야 한다. 제자도로 가야할지, 복음전도자로 가야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높이는 교회,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라는 큰 틀에서 6대 비전을 이뤄가고 있다. 그것은 세계선교하는 교회, 민족에 전도하는 교회, 가정을 세워주는 교회, 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 일꾼을 양성하는 교회, 영성을 주도하는 교회인데, 각 비전속에 다양하고 전문화된 사역을 펼쳐가고 있다. 이 역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복음전도와 제자도에 초점이 맞춰있다. 따라서 교회는 주님의 일꾼들이 제자가 되어 복음전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성경적인 가치관을 내세우지만 한국교회는 침체를 넘어 퇴보하고 있다.
=신앙고백의 약화, 경건의 약화, 섬김의 실천적 활동 약화로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실천적 고백과 대화와 섬김, 세 분야가 잘 돌아가야 한다. 교회 교육이든, 교회 활동의 지향점은 이제 고백하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섬기게 하는데 두어야 한다.
 
▲얼마 전 설교에서 그리스도인은 ‘나조라이오스’로 살 것을 강조하셨다. 무슨 의미인가.
=나조라이오스는 나사렛 사람으로 살자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 섬김과 나눔의 삶, 고난 받으며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다. 나사렛의 삶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과 고단함이 있기 때문에 피하고 싶어 한다.

지명으로 따지면 갈릴리보다는 유대, 유대보다는 예루살렘이 여러 조건상 좋다. 그러나 이것을 놓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드러나고, 힘 있고, 권력지향성 강한 자리에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도 나사렛이 있고, 갈릴리가 있고, 예루살렘이 있다. 이것이 은연중에 갈등의 요소가 된다. 두 가지 요인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양육에 있어서 확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라가도록 끌어내야 하는데 실패했다. 또 하나는 사회현상이다. 사회 지향점이 힘과 권력과 돈에 두는데, 그것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이뤄지지만, 한 손으로는 잡고 한 손은 놓는 정도에 불과하다. 예수님처럼 두 손 다 놓는 완전한 헌신이 없다.
교회에 이런 헌신이 없는 것은 목회자 자신이 목회적 모범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성도는 목회자를 따라가게 돼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중적 갈등이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이단이 득세한다고 본다. 교회에서 소외되면 원망과 불만이 생겨 이단에 빠지기 쉽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교회도, 나 자신도 배우는 단계다. 사회 권력 구조가 교회에도 나타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사렛 사람이라는 철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나사렛에서 출발해야 골고다와 십자가가 보이고, 소외된 자가 보인다. 힘의 자리에는 십자가가 고난이 아니라 또 다른 영광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회가 이를 인지하고 깨트리는 구조로 가야 한다. 가르침과 언어를 통해 어느 정도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목회자가 삶이 따라주지 않으면 반드시 한계가 온다. 그 한계가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이다. 동료들이 그 고민 정도만 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만 완전한 죽음, 완전한 내려놓음이 없다면 능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고민이 크다.
 
▲개인적 한계를 거론하셨는데, 무슨 의미인가.
=완전한 내려놓음이 안 되는 부분, 왜 없겠는가. 첫 번째는 물질이지 않겠나. 목회자지만 물질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성도들은 선교를 위해 어려운 여건에도 기꺼이 물질을 바치는데, 목회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또한 전혀 아닌 것처럼 하지만 명예도 은연중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당 부분 목회자의 상함은 명예에 상처가 오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관계다. 가장 약한 자를 친밀하게 찾아가 돌봐야 하지만, 현재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시간적 필요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배운대로, 훈련한대로 사는 것인데 요즘은 한계를 느끼는 것 같다. 목사 한마디에 성도들의 가치가 형성되고 움직인다. 그러므로 말도 조심하기 위해 해야 할 말을 정리한다. 목양의 한계를 느낀다. 보편적인 단계를 넘어서는 헌신의 변화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먼저 챙긴 다음에 나누게 된다. 그러나 제자의 삶은 두 손을 다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못하는 한계를 느낀다는 의미다. 목회자인데, 은혜로운 부름 받았는데, 나 스스로 뛰어넘지 못하는 어려움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면 목회자로서 나조라이오스 삶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삶 전체를 돌아보면 시간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보다 필요가 덜한 사람과 관계를 더 많이 갖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출근 전 교회로 오는 길에 종합병원을 들른다. 꼭대기층부터 내려오면서 입원한 성도들을 찾아가 기도한다. 또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사회복지시설에 사용하려 한다.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

목사가 경건을 외치지만 경건의 능력을 놓치기 십상이다. 바로 이 부분의 고민인 것이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즐거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서 기쁨, 바로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훈련하고 있다. 예수 따라가는 훈련, 돈 벌어서 남을 주는 훈련 이것이 김 목사의 한계요 고민이요, 훈련하는 부분이다.

▲다시 돌아와, 나조라이오스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관과 노력이 필요한가.
=힘든게 사실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두 가지다. 계속해서 구별을 시도해 보는 것이고, 매순간 질문을 던져 선택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구별한다는 말은 모두가 편안하게 사는 것에서 스스로 불편하게 사는 구별, 모두가 여유롭게 먹는다면 생명 유지 수준에서 줄이는 것 등이다. 일반적 가치관에서 거꾸로 살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늘 질문해 보자는 것이다. 교육목회에 있어 중요한 것은 믿는 것을 넘어 ‘가치변화’다. 신앙의 실체는 현실로 나타나는 가치이기 때문에 설교나 행사, 광고 멘트 속에 의도적으로 ‘사랑-샬롬-자유-정의’ 등 네 가지 가치 중 적어도 하나를 반드시 강조하고 있다. 가치변화를 위해서다.

 
 
▲얼마 전, 리서치 기관에서 실시한 결과를 보면 기독교인의 종교적 열심은 강한 반면에 호감도와 신뢰도는 더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해석이 가능하겠는가.
=교회가 성도 개개인의 은혜 측면에서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신앙공동체로서 책임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데는 결여됐다. 개인적 차원의 신앙에 머물렀다는 말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가르침에 실패했고, 결국 공동체로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관심의 병폐로 나타난 현상이라 본다.

공동체성 약화는 역사성 결여에서 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교회와 공동체와 사회에 감당해야 할 사명과 삶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공동체성 강화를 위해서는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 공동체가 제사장 나라로서 세상을 축복하고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데 실패해서 그런 것이다. 전쟁과 고아, 세상을 보고 진정으로 아파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열방을 보며 아파함 없이 선교헌금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교회만의 공동체를 뛰어넘어 세계를 품어내는 공동체성이 필요하다. 참된 부흥은 지역사회를 섬기는 차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함께함 즉, 지역공동체성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쉽게 말해 사랑의 결여다.

교회 신뢰 추락 요인은 보수적인 공동체가 심화시킨 점도 적잖다. 사랑한다는 말을 안했으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느껴지지 않는 섬김을 사랑으로 치부해버렸다. 진정성 있는 사랑의 행위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교회, 목사, 성도의 정체성은.
=세계 속의 교회 정체성을 논하자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다. 정신적·영적 혼돈 상태에서 진정으로 질서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이 없다. 절대 진리를 선포하는 곳은 오직 교회 밖에 없다. 그러므로 육적 차원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위로와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목사의 정체성은 진실한 나눔과 모범과 삶의 모델링이 돼 줘야 한다. 완벽한 모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모델이어야 한다. 주님 원하시는 대로 살고자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링이 필요하다. 프로세싱 차원의 모델이 되는 목회자, 내려놓는 과정에서의 모델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다.

성도의 정체성은 삶의 현장 속에 있기 때문에 치열하게 생존하는 모델이라 본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 속에서 치열하게 영적 전투를 벌이며 축복과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거룩한 용사의 정체성이다.

성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은 예수를 알면 알수록 자기 포기와 내려놓음 쪽으로 가기 때문에 결국 한계를 뛰어 넘는 영적전투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는 선택이 필요하다.
 
▲설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계속 이어가겠다. 원고 없이 설교하시던데.
=원고는 A4 4장 정도 작성한다. 하지만 암기하고 원고는 들고 올라가지 않는다. 문자대로 암기는 하지 않더라도 전체적으로 암기하려 한다. 키워드나 요약하는 경우는 있지만 거의 원고 없이 강의한다.

신대원에서 강의하면서 많은 양의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인격적으로 반응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산지식이 되고, 영향력 있는 지식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담임목사가 되고서 5년 정도 원고설교를 했었다. 이후 설교를 대화식으로 하고 있다. 오늘 시대는 스토리텔링 설교방식이 필요하다. 원고를 외워 전달하더라도 감동 없는 내용 전달은 실패한다.

따라서 설교에 앞서 ‘스토리 메이킹’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설교에 본문 읽기와 성경주해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원고작성 시 성도들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작업도 하고 있다. 스스로도 묵상과 질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스토리 메이킹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주중에 성도들과 나 사이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교 적용이 가능하다.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돌려 시간이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하고, 오래 머물러 주고, 간증에 대한 경청이 필요한 사람과 평소 만남을 갖지 않으면 스토리텔링 설교가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목사님 설교에는 성경주해가 있다. 짧은 설교시간에 어려움은 없는지. 성도들이 잘 따라오는지.
=성경주해 없이도 설교하는 것이 지금 시대다. 적용이 강조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야기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주해 없이도 편안하게 설교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성경 팩트 자체를 모르는 폐단이 왔다. 성경공부가 다양하게 제공되는 교회는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많은 교회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주해 없는 설교는 팩트 자체를 모르는 폐단, 통전적으로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붙들지 못하는 폐단을 낳게 됐다.
 
▲성경해석을 하면 어려워하기에 설교는 쉽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을 많이 만난다.
=시간이 없어서 주해를 못하는 것은 경험상 아니다. 바쁜 스캐줄이지만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주해는 필수적이다. 주해가 충분히 이뤄지면 설교는 너무 자유로워진다. 반대로 주해가 이뤄지지 않으면 설교가 불안해진다. 윤리적·도덕적 적용은 가능하지만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결정되면 암송이 되고, 주해를 통해 묵상하면 시대에 필요한 전할 메시지가 모아진다. 원고 정리하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성경의 맥락을 따라가면 성도들이 더 집중하고 따라온다. 그래서 즐겁다.
 
▲교육목회를 하신다고 들었다.
=교회의 활동, 교육, 모든 사역에 있어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는 것이다.

성도가 성도를 바라볼 때, 누구든지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들어가야 할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과 참 좋은 사람이라 의식하는 의도적인 노력, 상대방 그 자체로 복 받은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일을 시작하며, 이 사람도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친다.
 
▲끝으로 <기독신문>이 창간 50주년과 신문발행 2000호를 맞았다. 신문사를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교단의 역사성을 보존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하는 역할을 기독신문이 해왔다. 면면이 교단의 복음전도 역사, 교회부흥 역사, 조국과 열방에 교회의 사명과 모습을 잘 증언해 준 공이 크다.

지령 2000호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앞으로 기독신문이 교단의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영성을 증진시키는 지면 계발과 심화를 부탁드리고 싶다. 아울러 교회와 교단, 성도들의 내적 개혁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신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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