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혜신은 유명인사다. 지난해 부산 연산역에서 쓰러진 할머니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내 여기저기서 많은 언론을 탔다. 그러나 정작 그가 유명해지고 싶은 것은 국제의료통역사가 되어 힘든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난치병 환자로 힘들게 살았던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고 싶은 것이 고3 여고생 혜신이의 꿈이다.

‘긍정 소녀’ 기도의 힘을 믿다

지하철역서 목격한 쓰러진 할머니, ‘하나님 도와주세요’ 절박한 마음으로 달려가 생명 구해
자신은 난치병 아픔에도 ‘국제의료통역사’ 꿈 키워… “감사의 제목 많아 행복, 은혜 나눌터”


그는 달랐다. 영락없는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인데 행동은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선 중년의 선생님 같았다. 병을 앓고 치료하는 3년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을 얼핏 알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을 바르게 보려는 그의 씩씩한 삶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윤혜신(19·양산여고) 그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난해 부산 연산역에서 쓰러진 할머니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것이 뒤늦게 알려져 양산 지역신문은 물론 부산 서울 등 각종 공영방송과 언론매체가 나서서 이를 다뤘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10월 17일 학교에서 실시하는 현장체험학습을 마치고 그는 친구랑 같이 지하철을 타고 부산 연산역에서 서면으로 가기 위해 환승 중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막 내리려는 순간, 누군가 넘어지면서 쿵 소리가 났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119에 신고를 하고 있었고, 옆에서 할아버지께서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쓰러진 할머니의 입에 대고 인공호흡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친구랑 뛰어가서 할아버지께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앞이 캄캄했어요. 오로지 ‘하나님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습니다. 심장을 압박하고 두어 차례 심폐소생을 하는데 할머니께서 어지럽고 오한이 생긴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일단 살겠구나 생각했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심폐소생술로 인해 할머니는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다. 그는 신문지를 바닥에 깔아놓고 청남방을 벗어 할머니께 덮어드렸다. 이후 20분이 채 안된 시각에 119 구급차가 와 할머니를 싣고 병원으로 갔다.

윤혜신 학생은 중학교 3학년 때 말단비대증뇌하수체종양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난치병환자로 분류하여 관리대상자로 여긴다. 그런데 학교 보건실에서 쉬고 있는데 심폐소생술을 통해 사람을 살린 하트 세이버 상장이 죽 걸려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저거 했는데…” 했던 한마디가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중 3때 심폐소생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닥치면 누가 용기있게 합니까? 지난해 연산역에서 그 때 사건은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으로 기도하면서 달려갔던 겁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태권도를 하는 도중, 다리가 X자로 변형되는 것을 알았다. 턱도 대칭이 되지 않고 어긋나고, 손과 발도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더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갑자기 일어난 신체적 반응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말단비대증뇌하수체종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장애인이라고 놀리고 심지어 길을 걷다가도 “얼굴 좀 보자”며,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자체가 수치였다. 동료들은 그를 고릴라 혹은 괴물이라고 부르며 약을 올렸다.
 

▲ 양산삼양교회에 출석하는 윤혜신 학생이 기도하고 있다. 혜신이는 현재 영아부와 고등부의 피아노 반주를 맡아 봉사하고 있다.

“학교를 가지 않으면 저보다도 부모님이 더 속상하실 것 같아 기도를 하면서 이겨내기로 생각했습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무너지면 부모님은 더 큰 상처로 사실 것 같아 새벽제단을 쌓으며 이겨냈습니다.”

다행히 뇌종양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병은 많이 좋아졌다. 그럴 즈음 여기저기서 그를 두고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장호르몬 수술의 부작용이다”, “십자인대파열 수술 부작용이다.” 심지어 입양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신체적 변화에 따른 수술의 아픔은 그래도 견딜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쑤군거리며 놀리는 상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가슴에 남았다. 그래도 모든 수모는 이겨야 했다.

그는 모태신앙이다. 양산삼양교회(정연철 목사)에서 유년주일학교부터 줄곧 신앙생활을 해왔다. 지금은 영아부와 고등부의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데 아마도 멀지 않아 본당의 주일 오후예배 반주도 그의 몫이 될 것 같다.

원래 그는 기타를 배워 교회에서 보컬팀으로 활동하고 싶었다. 무대 앞에 서면 참 멋질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기타를 배웠다. 그래서 유투브를 통해 기타를 배웠다. 그러다가 피아노로 바꿨다. 건반에서 나는 영롱한 소리가 듣기 좋았다.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혼자서 피아노를 배웠다. 독학한 셈이다.

“교회에서 기타는 물론 베이스기타나 드럼 연주자들은 모두 전공자들입니다. 키보드를 맡는 저만 비전공자입니다. 그런데도 소리가 좋다는 얘길 많이 듣습니다. 물론 기분이 좋죠.”

그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한다고 해서 장차 꿈이 피아니스트나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이미 그가 육체적으로 아플 때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결심했던 국제의료통역사가 꿈이다. 국제기구에 들어가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것이 그의 소박한 희망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겪어왔던 경험을 토대로 주변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그는 미국에 다녀왔다. 오래 전부터 기도했던 일이 지난 해 이뤄졌다. 더 큰 세계를 보고 자신의 꿈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고 기도한 지 딱 7년 만에 이뤄졌다.

“하나님 이 땅 뿐만 아니라 더 큰 세계를 보여주세요. 먼저 미국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그는 새벽마다 ‘미국행’을 놓고 기도했다. 지난 해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영아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미국 비전트립자를 모집한다며 신청을 하라고 권면했다. 그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다는 것을 그 때도 깨달았다.

미국 동부지역을 여행하면서 광활한 대지 위에 하나님께서 펼쳐놓으신 자연에 대한 감사를 배웠다. 정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탄만 했다.

“저는 미국도 다녀왔는데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여행하고 싶어요.”

그는 지금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고백했다. 친구들한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혼자 괴로워서 살기 싫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가 더 많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평생 살아가면서 갚지 못할 것이 부모님에 대한 은혜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저를 보고 안타깝다든지, 속상하다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제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다리가 휘어 안짱다리로 걷지만 휠체어를 타지 않아 고맙고요. 턱을 부정교합하고도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저는 밥도 잘 먹구요. 말도 잘합니다.”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여태까지 측은지심인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위로를 많이 받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본인이 위로를 해줘야 할 때가 되었다며,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 한 적은 최근에는 전혀 없다고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고 3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야죠. 국제통상학과에 진학하여 일단 국제기구에 들어가고 그 다음은 의료통역사가 되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등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절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실 겁니다. 그 분만 믿고 나갈 겁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