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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2000호 기념] 머리기사로 다시 보는 시대별 10대뉴스(4) 변화의 시대(기독신문 지령 1501~2000호)

형제교단 합동, 발전 디딤돌 … 파행 97회 총회, 아픔 남기다


1 다시 만난 형제, 역사가 되다

“1979년 제64회 총회에서 분열됐던 예장개혁과 교단 합동이 마침내 성사됐다. 이로써 한국교회 분열의 역사를 종식하고 새롭게 화해와 화합의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며, 교단발전의 견인차는 물론 세계적인 장로교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26년 만에 다시 만난 형제들. 제95회 총회에서 예장합동 총대들이 예장개혁 총대들을 박수로 환영하고 있다.

2005년 9월 27일 형제의 극적 상봉을 본지 1550호는 이렇게 표현했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한국교회에 새로운 역사를 남기는 순간이었다.
“합동결의 직후, 개혁측 총대들이 모든 총대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하여 바로 감격의 합동예배를 드렸다.

합동운동은 1987년에도 있었다. 당시 11월 23일 서울 YMCA에서 개혁측과 합신측 등 3개 교단 합동위원들은 3가지 항에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노력이 이어지지 못해 합동이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2004년 물밑작업이 시작됐으며, 8월 19일에는 예장 개혁교단영입위원회와 예장개혁 합동추진위원회가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전체회의를 갖고 교단합동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2005년 9월 27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린 제90회 총회에서 26년 만에 역사적 합동이 이뤄졌다. 그러나 미묘한 어려움도 있었다. 총신 학적으로 논란이 이어졌으며, 총회는 특별교육을 통해 이를 해소해 나갔다.
   
2 97총회 파행, 치욕의 사건

“불 꺼진 총회…100주년 기념 97총회, 일방적 파회선언으로 파행…‘무효’ 주장 총대들 ‘정상화 비대위’ 구성…총회장·총무 부도덕성 책임 촉구” 2012년 9월 26일자 1884호 머리글은 총회의 치욕스러운 파행을 이렇게 밝혔다.

   
▲ 제97회 총회 마지막 날, 정준모 총회장이 기습적으로 파회를 선포해 총회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총회설립 100주년은 우리에게 영광과 치욕으로 기억된다. 2012년 9월 17일 대구성명교회에서 개회된 제97회 총회는 총회설립 100주년을 맞는 영광의 순간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총회에 용역이 동원되고, 총회총무는 성총회에서 가스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총회 마지막 날인 21일 정준모 총회장은 일방적 파회를 선언하고 단상을 서둘러 떠났다. 100주년 성총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것이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미래 100주년을 밝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역사적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다. 또한 총회의 위상이 추락하는 오욕을 남겼다.

총회파행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2013년 2월 19일에는 제97회 속회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정준모 총회장은 112개 노회 798명 총대들에게 큰 절을 올리며 사과하기까지 했다.

3 새로운 성경·찬송가 시대 열다

“개역개정 성경·21세기 찬송가 합본 나왔다”

본지 2006년 11월 29일자 1606호는 새로운 성경과 찬송가 출간을 반겼다.
“<개역개정판성경>과 <21세기찬송가> 합본이 출시되자마자 전국 교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7년 신년을 한달 가량 앞두고 출시된 <개역개정판성경>과 <21세기찬송가> 합본은 11월말 현재, 개 교회의 수요가 급증해 물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 된 성경과 찬송가는 한국교회 신앙을 연결하는 끈이었다. 물론 1990년 초반부터 성경공회에 대한 우려가 끊이질 않았고,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등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찬송가도 수없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물론 성경번역과 찬송가공회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문제의 핵심은 성경과 찬송가를 신앙의 본질과 연합사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논리로 보기 때문.

4 총회 의혹으로 몸살

총회세계선교회(GMS) 미주사무소, 은급재단 납골당 사업, 아이티 구호헌금, 찬송가공회의 독자 행보. 2010년을 전후로 일명 4대 의혹사건이 총회를 강타했으며, 일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납골당은 최악의 수렁으로 기억될 것 같다. 2002년 늦가을 은급재단이 20억을 투자하면서 시작한 납골당 사업은 총회 내외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확대되어 갔다. 결국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5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

2005년 통계청의 발표는 한국교회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통계청의 발표 이후 곳곳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오히려 목회자의 윤리가 추락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교회 재정유용을 비롯해 성윤리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특히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터진 윤리성 문제는 가뜩이나 실추하고 있는 한국교회 신뢰도를 더욱 떨어트리는 동기가 됐다. 이와 함께 급증한 분쟁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성도들까지도 실족시키는 아픔을 낳고 있다.

6 신천지 한국교회 강타

   
▲ 2010년 5월, 부산 새학장교회가 의문의 화재로 전소했다. 경찰의 조사로 신천지 신도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1980~1990년대가 통일교(문집단), 단군상(단월드)과의 전쟁이었다면 2000년대는 신천지가 한국교회를 강타했다. 2002년 신천지는 호남권 대학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1980년에 시작한 신천지는 이단들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신천지에 빠진 사람 중 90%가 기성 교회 성도였다. 이들은 산 옮기기, 추수꾼 등 교회에 직접 침투해 교회를 무너뜨렸다. 그동안 이단에 무지했던 교회와 목회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넘어졌다. 본지는 2013년 8월 6일자에서 전국에 침투한 신천지 위장교회 67곳을 폭로해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 신천지 위장교회가 예장합동 간판을 걸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취재 중인 본지 기자를 강제로 끌어내고 있는 위장교회 관계자들.

이밖에 제90회 총회를 앞둔 2005년 9월 7일 1547호에서는 서북노회를 통해 총회에 가입하려는 평강제일교회에 대한 전국교회의 저지운동을 보도했다. 또한 이와 관련한 총신 교수의 보고서와 대법원 승소(교단 순수성 지킨 값진 승리…대법원 승소 이끈 총신신대원 교수, 2010년 9월 27일)의 기쁨도 나눴다.

7 한기총 사태, 연합에 찬물

2010년 11월 26일 예장통합 예장고신 예장합신 3개 교단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항의 방문했다. 이유는 한기총이 이단해제를 시도했기 때문. 그리고 우려대로 다락방과 평강제일교회 등을 잇달아 이단해제 했다. 이와 함께 2011년 2월 9일 한기총 전 회장이 금권선거 양심선언을 하면서 한기총에 대한 불신임과 개혁의 열망이 커져갔다. 결국 2012년 3월 29일 한기총에서 한국교회연합이 갈라져 나오면서 ‘두쪽 난 교회연합’(1861)이 본지 1면을 장식했다.

총회도 2013년 12월 18일 한기총과 결별을 선언했다. “총회임원회 한기총 탈퇴…박윤식 씨 이단해제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 이어 제99회 총회에서 이를 확정했다.
 
8 세대교체 바람 불다

누구는 ‘교회세습’이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세대교체’라고 부른다. 일명 교회세습이 한국교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세습이 이뤄지고, 곳곳에서 부작용이 드러났다. 김창인 증경총회장은 2012년 6월 12일 “무리한 후임자 선정 회개한다”며 교회세습을 후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성과 개혁의 노력도 있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만들어지고, 기감은 2012년 9월 25일 29회 임시총회에서 세습금지법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이어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장 등도 잇따라 세습금지를 결의했다.
 
9 잇단 100주년 사업

   
▲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2007년 7월 8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2007년 7월 8일,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 상암서울대회’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10만 여 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008년 9월 24일,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총회를 개최한 예장합동을 비롯한 예장통합·예장합신·기장 등 4개 장로교단이 60여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국 교회가 그동안 저질렀던 신사참배와 교회분열에 대해 공개회개 했다.

비록 제97회 총회 파행으로 빛이 바랬지만 2012년 교단의 최고 관심은 총회설립100주년이었다. 2년 전부터 준비하여 마련된 100주년 행사는 3월 27일 올림픽홀에서 열린 기념음악회가 좋은 출발을 알리며 서막을 올렸다.

10 정체성 흔들린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로 갈라졌다. 2009년 5월 13일 WCC 유치단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WCC 반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9년 10월 증경총회장들은 “WCC 부산총회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교단적으로 대책위원회가 조직됐다.

본지도 WCC가 열리던 2013년 한 해 동안 WCC 관련 특집을 보도했다. 또한 WCC를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태동하고 지속적으로 WCC의 문제점을 홍보해 나갔다.

“총회장은 10월 22일 총회장 서신을 발표 WCC 부산총회를 계기로 총회 산하 교회들은 신학적으로 흔들리지 말고, 비성경적 화합이나 평등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 기독교를 자축하는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1935)

정형권 기자  hkjung@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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