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

영적 전쟁 최전선, 교단의 책무는 막중하다
신앙 순수성은 목숨처럼 지키되 세속의 거센 도전에는 협력 손길 굳세게 …
기독신문이여, 교회 미래 밝히는 등불 되라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1959년 WCC 문제로 인하여 눈물을 머금고 분리를 감행했다. 그 당시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나왔다. 그러나 허허벌판 황무지에서 총신대를 비롯해서 총회건물을 세우고 한국 최대 장자교단으로 부흥하는 눈물겨운 교단사를 기록하였다. 오늘 우리는 혼합주의에 맞서 순결한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고 주님만을 사랑했던 선진들의 그 눈물겨운 신앙을 가슴 깊이 존경하며 잊지 않아야 한다.

 
▲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오늘날 교단의 눈부신 발전이 있기까지는 기독신문이 사상적 기초요 미래의 이정표 역할을 해 왔다. 교단이 가야 할 길 위에 등불을 밝히며 나침반이 되어 온 복음의 정론지 기독신문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날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장자교단으로 우뚝 설 수 있었겠는가. 창간 50주년 지령 2000호를 맞는 기독신문이야말로 교단의 자산이요, 긍지요, 역사의 보고다. 이제 기독신문은 교단과 교계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이요, 연합의 정신과 여론을 주도하는 대안지요, 새로운 부흥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연합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을 정도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동로마제국 멸망의 비참함을 기억하고 있는가. 서로마제국이 망한 것은 오히려 복음의 진일보가 되었다. 훗날 게르만족의 왕 크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기독교가 전 유럽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로마는 멸망 후에 완전히 이슬람화가 되어 버렸다. 동로마의 황제 마누엘 2세와 요한네스 등은 제국의 멸망을 감지하고 서구 기독교 국가들을 순방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교리와 신학이 다르다고 외면하였다. 결국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5월 29일, 이슬람의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 성벽 높이 바람에 펄럭이던 십자가기는 땅에 곤두박질 당하였고 이슬람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였다. 튀르크 군사들은 굶주린 사자처럼 노략과 겁탈에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얼굴이 반반한 처녀들을 겁탈하려고 서로 칼부림을 하다가 그 아리따운 딸들이 팔다리가 잘려 죽었다. 교회 사제들은 목 베임을 당해 죽고 예배당에서 쓰던 휘장을 찢어 만든 밧줄로 어린 아이들은 노예로 끌고 갔다. 그리고 100여 개에 달하는 정교회의 거대한 성당이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뀌어졌다.

터키를 가 본 사람들은 그 웅장한 성 소피아 성당과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한 이레네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동로마 교회의 찬란한 기독교 문명이 꽃 피웠던 곳이 지금은 완전히 이슬람 천지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다시 터키를 방문하여 성 소피아 성당과 이레네교회를 본다면 땅을 치고 가슴을 쥐어뜯을 것이다. 그때 서구교회에서 연합의 정신을 발휘하여 동로마교회를 도와 줬으면 오늘날의 터키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이슬람은 또 다시 유럽 전역을 이슬람화시키려는 거대한 야망을 품었다. 그때 메흐메드2세의 손자인 메흐메드4세가 무스타파를 앞세워 30만 대군을 이끌고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모스크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출정하였다. 그런데 유럽으로 가는 첫 관문이 비엔나였다. 비엔나가 무너지면 신교도 구교도 없고 유럽 전체가 순식간에 이슬람화 되어 버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오스트리아에는 군사가 1만 5000명 밖에 없었다. 이슬람의 30만 대군 앞에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때 베네치아의 수도사 마르코가 전 유럽 교회들이 뭉쳐야 한다고 피를 토하도록 호소하였다. 마르코의 메시지를 듣고 전 유럽이 비엔나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특히 폴란드의 왕 얀 소비에스키가 연합군의 사령관이 되어 진두지휘하였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폴란드는 앙숙관계였다. 그럼에도 폴란드의 왕 얀 소비에스키는 군사를 모집하여 가장 적극적으로 오스트리아를 도왔다. 왜냐면 비엔나가 무너지면 폴란드도 무너질 것이고 유럽 전체가 이슬람화가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얀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7만의 연합군이 메흐메드 4세가 이끄는 30만 대군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다. 군사 숫자는 훨씬 적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니까 이길 수 있었다. 비엔나 전투 패전을 기점으로 이슬람은 유럽에서의 패권을 잃어버렸다. 반대로 서구 기독교는 단결하고 뭉치면서 찬란한 기독교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바로 이런 때에 우리 교단이 마르코와 얀 소비에스키와 같은 역할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우리는 우리의 순결한 보수 개혁 신학과 신앙을 지켜야 한다. 교단의 정체성도 사수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신학과 순결한 신앙을 사수한다고 하면서 교단에서 정치적 싸움을 왜 그리도 많이 하는가. 이런 때에 마르코와 같이 사자후를 토하는 화해의 메신저가 나와야 한다. 얀 소비에스키와 같은 연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단을 넘어서 한국교회 전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진정한 장자교단으로서 시대와 역사를 주도해갈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반기독교 정서가 확산되면서 기독교가 밀리고 쇠퇴하고 있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한국사회는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사상의 공격이 더 심각하다. 90년대부터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의 흐름이 시작되고 2000년 초까지 점점 더 거세지더니 2007년 아프카니스탄 피랍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노골적으로 반기독교적 사회 분위기가 폭발하고 무차별한 공격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래서 지금은 대형교회도 안티 세력으로부터 한 번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그런데 대부분이 이런 현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뒷짐 지고 바라보기만 한다. 그저 자신의 교회만 괜찮으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에 빠져 있다.

미국교회의 ADF를 아는가. 한동안 미국교회도 교단간의 경쟁하는 모습이 치열했다. 또 개교회주의적인 목회 양상을 띠었다. 미국은 거의 기독교 국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가능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누가 교회를 크게 짓고 어느 교회가 많이 모이며 독특하게 설교를 잘 하는가”하며 스타플레이를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필자는 미국교회가 이렇게 보낸 20여 년 세월을 미국교회의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는 순간에 몇몇 주는 동성애를 합법화 시켜 버렸다. 또한 이슬람이 독버섯처럼 자라면서 점점 진화론이나 무신론주의 등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에 포위를 당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미국교회의 위기를 감지한 뜻 있는 교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미국 교회를 방어하는 기관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ADF다. ADF는 변호사 2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60여 명이 넘는다. 과거에는 미국 교회들이 법률적인 소송을 할 때 80% 이상이 다 패소했다. 그런데 지금은 90% 이상이 다 승소할 뿐만 아니라 각 주마다 교회에 불리한 법이 입안되지 못하도록 활동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교회의 미래 대안을 제시하는 씽크탱크 역할을 하고 이미지를 쇄신시키는 홍보 기능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떤가. 여전히 교단 우선주의, 개교회주의에 빠져 있다. 미국 같은 나라도 교단 우월 경쟁과 개교회주의만을 추구하다가 이렇게 치명적 손상을 입었는데, 한국교회는 지금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물론 우리는 교단의 신학부터 지켜야 한다. 아니, 지금껏 지켜온 신앙의 순수성을 더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키는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면서 오히려 순수한 신학과 신앙의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특별히 반기독교 정서를 배격하고 안티 기독교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작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을 때 가톨릭은 지상파 방송에 수십억의 방송지원금을 전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TV만 틀면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될 정도로 홍보를 했다. 그런데도 우리 교단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교단간의 경쟁, 개교회주의에 빠져서 내부 소모전과 파워게임,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는 퓨리티와 유니티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퓨리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신앙의 순결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요 재산이요 덕목이다. 그런데 퓨리티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만 옳고 순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정죄하면서 대부분 분리주의자가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본질을 잃어버리고 낡은 전통과 문화만을 고집하다가 역사 속에서 소멸되어 버린다. 반대로 유니티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퓨리티를 모른다. 또 무조건 하나와 일치만을 강조하지만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그리고 그저 평화나 정의만을 앞세우며 퓨리티를 주장하는 자들을 분리주의자라고 정죄한다. 그러다가 혼합주의와 세속주의의 물결에 다 흡수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을 가진 지도자라면 퓨리티와 유니티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신학의 정체성, 신앙의 순수성을 목숨처럼 지키되, 때로는 유니티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순수한 신학과 신앙을 뒤로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앙의 일치, 직제 일치를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반기독교적인 정서나 세력, 즉 동성애와 종교차별금지법 등을 저지하거나 이슬람을 비롯한 각종 이단의 공격에 대응할 때는 함께 연대하고 연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때는 신학과 신앙이 좀 차이가 있더라도 범교단적으로 연대하고 하나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일을 우리 교단이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단은 신학이 가장 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얼마나 신앙이 순수하고 보수적인가. 이런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자라면 어찌 정치적인 야합을 하고 혼합주의에 물들겠는가. 더구나 우리 교단은 장자교단이 아닌가. 장자는 맏형이다. 형제간이 많다보면 가정에 이런 동생도 있고 저런 동생도 있듯이, 성경과 좀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 교단이 있으면 장자로서 오히려 바른 신학과 신앙을 지도하고 영향력을 끼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규모가 가장 큰 장자교단인데 교계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아니, 왜 이렇게 주변으로 밀리고 있는가. 심지어 이런 것을 아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 교단 안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 싸움, 파워게임만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윤식 박사의 말대로 한국교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이러한 때 기독신문이 교단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물론 기독신문은 지금까지도 교단의 등불을 밝히고 나침반 역할을 잘해 왔다.

그러나 창간 50주년, 지령 2000호를 맞아서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첫 삽을 떠야 한다. 허허벌판에 나와 교단을 처음 일굴 때처럼,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운 언론의 문향을 다시 발해야 한다. 이제 다시 거친 파도와 광풍에 맞서 연합의 돛을 올리고 3000호를 향해서 나가자. 언론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그러므로 다시 기독신문이 교단을 대표하는 복음의 정론지요, 교계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요, 연합을 위한 헤럴드가 되어 더욱 큰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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