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재활원장 최창룡씨와 창훈대교회

참전용사, 전쟁고아·미망인 돌보다

보훈가족 공동체에 연이어 선행 … 후손들, 이웃섬김으로 받은 은혜 나눠

기독신문 창간호인 1965년 1월 4일자 제1면에는 '재활원장 최창룡씨의 미거'라는 제목의 작은 미담기사 하나가 실려 있다. 직업재활원장 최창룡씨가 성탄절을 맞아 창훈대장로교회에 고급 강대상과 긴 의자 열세 개를 헌납하였다는 내용이다.

앞서 창훈대교회 입당예배 시에 백미 두 가마와 긴 의자 열두 개를 희사한 적이 있는 최창룡 원장이 또 한 번의 선행을 보여주어, 한명수 목사(당시에는 강도사)를 비롯한 온 교우들이 감사한 마음을 금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기사는 이어지고 있다.

창훈대교회 교인도 아니었다는 최 원장이 이렇게 연달아 거액의 물품을 기부하게 된 데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창훈대교회가 자리한 수원시 영화동 광교산 아래동네를 찾아가보았다.

▲ 창훈대교회 설립 초창기의 모습. 왼쪽 두번째 삽을 든 사람이 당시 한명수 전도사. 기독신문 창간호에 등장하는 최창룡 원장은 이들의 순수한 복음의 열정과 정성다한 섬김에 감동했다.

1963년 이 동네에는 6·25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상이군인과 유가족 등 보훈대상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정부가 바로 이곳에 국립보훈원을 설립하고, 보훈가족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직업재활원과 112채의 주택들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공훈을 세운 이들의 업적을 널리 알려 드러낸다’는 뜻으로 ‘창훈대’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 오늘날도 장애인과 노숙자 등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창훈대교회 교우들.

이렇게 모여든 이들 중에서 출신 지역과 교파를 넘어선 기독교인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고, 수원제일교회 김홍규 목사의 추천으로 전도사 시절의 한명수 목사가 1964년 4월 26일 교역자로 부임한 것이 창훈대교회의 출발이었다.

예배 처소가 따로 없어 보훈원 강당을 빌려 집회를 가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이 가난한 자, 약한 자들에게 향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창훈대교회는 새로운 정착민들을 섬기는데 성심을 다했다. 성경에서 우리가 사랑으로 돌볼 이웃이라 가르쳐준 장애인, 과부, 고아들이 바로 이 공동체에 모여들었다. 오래 전 나사렛과 갈릴리의 풍경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최창룡 원장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목격자였다. 당시 기독신문 기사에서는 최 원장에 대해 ‘왕년의 독립투사이시며 피에 젖은 백마산 전투의 일선 고급 지휘관으로서 탈환작전의 용사’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 또한 참전 경험을 가진 당사자로서 창훈대 가족들에 동병상련의 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교회가 벌이던 노력과 분투를 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 원장의 이후 행적이나 후일담에 대해서는 교회나 보훈원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할 길이 없다. 생존해있는 초창기 창훈대교회 성도들 몇 명만이 어렴풋하게 최 원장의 존재를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 원장이 갓 태어난 작은 교회에 걸었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채우고도 남아넘치는 현실이 됐다.

창훈대교회는 밀알선교회사역을 통해 장애인선교를 왕성하게 펼치는 한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조화를 이루어 동역하는 대표적인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교회당 주변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과 영세민들에게 반찬을 제공하는 ‘예마’ 사역과,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목욕봉사, 매주 수요일 수원역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 사업을 오랜 세월 꾸준히 전개해왔다.

제3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이상복 목사는 “보훈원과도 이미용봉사팀 등이 정기 방문하고, 각종 자치활동을 후원하면서 우정을 이어오는 중이다. 특히 현충일이 되면 온 교회가 모여 기념예배를 드리는 데, 이 자리에는 보훈원 관계자와 옛 보훈가족 성도들의 후손까지도 찾아와 함께 한다”고 설명한다.

제1호 신문 기사에 등장한 한명수 강도사는 훗날 기독신문 주필이 되어 12년간 봉직한 데 이어, 2002년 열린 제87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피선되어 기독신문 발행인에까지 오른다. 은혜와 섬김은 이렇게 돌고 돌아 서로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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