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설교문은 박윤선 박사…첫 화보는 ‘제2회 목사장로기도회’
2호에 중국선교 보고서…만평 ‘벼이삭’· ‘금주의 인물’ 연재 시작



첫 번째 설교
<기독신문> 제1호에는 당대 최고의 성경 주석가이자 훗날 총신대 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박윤선 박사의 설교가 실렸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워지자’는 제목의 설교에서 박윤선 박사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힘을 입어 영적인 속사람이 새로워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첫 번째 만평
<기독신문> 제4호에 첫 번째 만평이 실렸다. 만평에는 달리기 출발선에서 독자들에게로 뛰어가고 있는 기독신문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59년 예장통합과의 교단 분열 이후 <파숫군>이라는 소식지로 명맥을 이어오던 교단의 언론기관이 1965년 1월 <기독신문>으로 발행된 것을 축하하는 동시에, 교단 소식을 독자들에게 빠르게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만평이다. ‘벼이삭’이라는 만평가의 낙관이 만평 오른쪽 아래 찍혀 있다.

첫 번째 선교기사
<기독신문> 제2호 신문에는 ‘중국 주화팅전도사의 보고서’라는 제목의 첫 번째 선교 기사가 실렸다. 이 글은 대만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던 계화삼 선교사가 중국인 전도사 주화팅 씨가 보내온 편지를 번역해 올린 것이다. 이 편지에서 주화팅 선교사는 계화삼 목사의 지도로 1964년 10월 가정예배로 시작된 투청교회가 그해 성탄절 입당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보고하며, “총회여전도대회에서 10월부터 매월 50달러의 선교비로 송금되어 본인(주화팅)의 생활비와 집세로 받게 된 것”을 감사했다.
 
첫 번째 국제기사
<기독신문>에 처음으로 실린 국제 기사는 영국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 경의 사망 소식이었다. 제4호에서 ‘처칠경 별세’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기사는 처칠경의 얼굴 사진과 함께 1965년 1월 24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첫 번째 연재물
<기독신문> 제13호부터 ‘금주의 인물’이라는 제목의 연재물이 시작됐다. 매주 1명의 기독교 역사상 위인들을 선택해 소개하는 연재물이었다. 이 연재물은 부산온천제일교회를 시무하고 있던 이찬영 목사가 맡아서 인물을 선정하고 인물의 생애에 대해 기술했다. 제13호에 첫 번째로 소개된 ‘금주의 인물’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던 벨기에 출신 죠셉 따미엔(Joseph Damien) 선교사였다.
 
첫 번째 문화기사
<기독신문>에 실린 첫 번째 문화 기사는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 <사랑의 원자탄>에 관한 기사였다. 이 기사는 <기독신문> 제14호에 ‘순교자 손양원 목사 신앙실화 사랑의 원자탄 전편 <영국에서 번역출판>’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965년 4월 5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IVF 영국 본부가 <씨앗은 죽어야 한다(The Seed Must Die)>라는 제목으로 만든 영문 초역판을 저자 안용준 목사에게 항공편으로 보냈다는 기사다.
 
첫 번째 화보
<기독신문>에 처음으로 실린 화보 기사는 1965년 2월 22일 열린 ‘제2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장로기도회’ 현장을 담은 화보이다. 제8호 신문에 ‘렌즈에 비친 기도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화보에는 기도회 장소인 서문교회당 모습부터 개회식 장면, 통성기도 하는 목회자들의 모습, 경북노회 연합성가대 특송, 준비위원회 모임, 대구역 앞에서 서문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안내하는 모습,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서문교회 부인전도회 회원들의 모습 등 다양한 장면이 담겨 있다.

첫 번째 르포기사
<기독신문> 제105호(1967년 4월 22일자)에는 첫 번째 르포기사가 특집으로 게재된다. ‘10대의 윤락, 구할 길 없는가?’라는 제목의 이 르포기사는 가출 후 식모살이라도 해보겠다고 서울에 올라왔다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서울역 주변을 전전하며 끼니를 잇기 위해 윤락의 길에 빠져든 10대 소녀들의 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이 기사는 기사 말미에 교회가 윤락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선도하는 일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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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제 풀고 선물도” ... 독자 대상 코너 ‘인기’

<기독신문>에는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재미난 퀴즈 코너가 마련되기도 했다. <기독신문>에 실린 첫 번째 퀴즈 코너는 1986년 2월 22일자 신문(통권 955호)에 실린 성경 낱말잇기 퀴즈이다. ‘가족이 함께 풀어 봅시다’라는 제목의 이 코너는 가로와 세로로 나뉜 퀴즈를 푸는 형식이다. 문제는 성경에 대한 퀴즈로 꾸며졌다. 독자들은 매주 제시되는 퀴즈의 정답을 적어 관제엽서에 오려붙여 편집국으로 보냈다. 그러면 신문사에서 정답자를 추첨해 기독교 관련 도서를 선물로 보내줬다. 17번째 퀴즈부터는 퀴즈 출제도 일반 독자가 직접 해, 신문사와 독자가 소통하는 코너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퀴즈는 1988년 연말까지 연재됐다. 이후 교회교육면에 ‘묻는 말’이라는 어린이를 위한 객관식 성경 퀴즈 코너가 운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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