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도의 시대 (기독신문 지령 1~500호)

조용히 시작된 ‘1만교회운동’ 강력한 전도운동이 되다

1 일만 교회 시대를 향하여

기독신문의 전신인 기독신보가 복간된 1972년부터 제500호가 발간된 1983년 사이 지면 첫 머리에 가장 많이 등장한 주인공은 ‘1만교회운동’였다. 시작은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제60호(1974년 1월 26일자)에 실렸던 ‘1만교회 운동 전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와 교계의 동향에 대하여 보다 효과적이고 진취적인 총회운영을 위하여 본 총회 산하 중견지도자 20여명이 지난 17일 대전 유성에서 일련의 모임을 가졌다…이 모임은 교단의 진로에 대하여 숙의한 끝에 몇 개의 합의점을 찾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마련된 세 항의 합의문의 내용은 ‘1.우리는 우리 총회의 총화를 열망한다’ ‘2.우리는 80년대까지 1만교회운동을 전개한다’ ‘3.우리는 국내외 정책에 있어서 적극적 자세를 취한다’ 등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히 시작된 1만교회운동은 교단과 전국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 속에서 점차 큰 동력을 받는다. 그해 11월에는 ‘1만교회 운동 전개키로’(9일자) ‘교회 부흥 위해 전도 매진’(16일자) ‘복음화 위한 구체적 플랜 발표’(30일자) 등으로 1만교회운동을 주제로 한 기사들이 연속해서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이후에도 1만교회운동을 통해 강력한 전도운동이 전개되고 새로운 교회가 설립된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전해졌고, 282호(1978년 10월 7일자)에는 총회의 교세가 3685교회 110만 성도로, 4년 후에 제작된 465호(1982년 7월 10일자)에는 교단 분열의 충격 속에도 3866교회 153만 성도의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소식이 게재됐다.

1만교회운동본부는 이미 2005년 ‘2만교회운동본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2014년 현재로 우리 총회의 교세는 교회수 1만 1538개, 교역자 수 3만 189명, 평신도 수 299만 4873명에 이른다.

2 강력한 도화선 엑스폴로 74

▲ 1980년 8월 12일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기도하는 전도자의 모습

“전국민·교우들의 시선은 여의도 대회장에 쏠렸고, 복음의 메시지를 경청한 교우들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도 아랑곳없이 전도자의 사명을 재다짐했으며, 이제 곳곳으로 흩어져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기에 바빴다.”(본지 제87호 ‘연 6일간 은혜의 잔치 메아리쳐’ 기사 중에서)

세계기독교대회, 흔히 ‘엑스폴로 74’로 불리는 이 행사는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여의도광장에서 연인원 650만 명이 동원된 가운데 치러진, 사상 유례가 없는 큰 규모의 교계 행사였다.

특히 대회를 앞두고 전국에서 32만여 명의 성도들이 등록해, 전 세계 84개국에서 찾아온 3400여 명의 외국인 신자들과 함께 전도훈련을 받고, 실제로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면서 ‘민족복음화의 역군’으로 배출된 것은 향후 한국교회 급성장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본지 86호(1974년 8월 17일자)에서는 8월 14일 개회예배 당시의 뜨거웠던 모습을 ‘성령의 제3폭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담아냈다. 다음 호인 87호에서는 후속기사가 첫 머리를 장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회 기간에 발생한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서거 기사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3 전도의 시대

▲ 1981년 7월 30일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창립 직후 열린 부산 해운대 해변전도대회.

1만교회운동의 발족이나 엑스폴로 74 개최 이전부터 기독신문의 시야에는 각지에서 분출하는 전도의 에너지가 포착됐다.

제13호(1973년 1월 13일자) 톱기사를 대도시 순회강연회 소식이 장식한 것을 신호탄으로, 총회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도대회가 개최된다는 내용과 그 열매들이 연신 지면에 등장했다. 특히 ‘우리의 살길은?’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전도의 절실함을 강조한 40호(1973년 8월 18일자)와 ‘산업전도에 새 방향제시’라는 제목으로 점점 구체화·다양화 되어가는 전도사역들을 소개한 144호(1975년 11월 8일자) 기사가 눈에 띈다.

제65회 총회의 결의로 조직된 전국남전도회연합회의 활약도 눈부셨다. 397호(1981년 2월 21일자) 창립총회 기사에서부터 ‘대도시 성령강림절 특별집회’를 통한 전도사역에 매진할 포부를 밝히더니, 그해 7월 30일과 31일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해변전도대회’를 열며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백사장서 열린 구령잔치’라는 제목의 740호(1981년 8월 8일자) 기사에서는 당시 현장을 생생히 보도했다.

4 복음의 손길은 군부대까지

초창기부터 군선교는 민족복음화를  달성하기 위한 황금어장이라는 혜안이 있었다. 21호(1972년 3월 17일자)를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전국교회에 ‘군목주일’을 지키자는 제목의 기사가 1970년대 해마다 빠짐 없이 등장했다. 또한 군복음화를 위한 전도강연, 군목수양회, 군종감 선출 등이 본지에 단골로 보도되는 소재였던 것을 보면, 당시 교단의 흐름이 군선교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5 시대의 아픔 공유하다

총회는 이리역 폭발사건의 충격(246호, 1979년 12월 24일자 ‘이리재해교회 형제께 위문금품 전달’) 앞에서 함께 슬퍼했고, 북한군의 판문점 만행(182호, 1976년 8월 28일자)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적 망언(362호, 1980년 5월 31일자)에 대하여는 총회장 명의의 성명으로 분노를 쏟아냈다.“현재 광주시민이 당하는 고통은 ‘강도 만난 어떤 사람’을 방불케 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우리 국민들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상처 입은 광주시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위로하고….” 광주사태 직후에 발행된 683호(1980년 5월 31일자) 기사내용이다. ‘역사적 난국 해결 시범’이라는 제목을 단 당일 시론의 부제는 ’지도자·왕의 폭언이 민족분열 초래‘였다.

6 총신 신대원 인가

‘수준 높은 교역자 양성’(384호, 1980년 11월 8일자) ‘예년보다 높은 경쟁률과 우수학생 입학’(396호, 1981년 2월 14일자) ‘예비고사 성적 고득점자 많이 지망’(492호, 1983년 2월 12일자) 등.

7 이단·사이비에 맞서다

‘극동방송국 선교부장 권신찬씨 설교 조사위 구성’(78호, 1974년 6월 8일자) ‘용문산 건전 운운 한 적 없다(191호, 1976년 11월 6일자) ’통일교 관련자 면직 출교키로(425호, 1981년 9월 19일자) 등.

8 제64회 총회의 격랑

▲ 분열의 기운이 고조되던 제64회 총회를 앞두고 전남노회장로회연합회가 1979년 7월 31일 무등산제일기도원에서 개최한 총회 분열 방지를 위한 기도회

활발한 전도의 기세를 타고, 보름달처럼 차오르던 교단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교단 분열의 비극이 1979년 제64회 총회에서 발생했다.

총회 전부터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본지는 ‘성령으로 화목하게 하소서’(326호, 1979호 8월 25일자)라며 호소했지만, ‘태풍 속에서’ 개회한 총회의 격동(330호, 1979년 9월 29일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상처가 메워지기까지는 2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9 선교사역의 약진

▲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3회 선교사 세미나 참석자들의 모습. 맨 오른쪽이 고 서만수 선교사.

국내 전도의 열기 못지않게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던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도 초창기 기독신문의 지면에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제7호(1972년 11월 25일자) 신문부터 등장하는 인도네시아 서만수 선교사는 역대 총회장들을 제외하고는 본지 첫 머리를 가장 자주 장식한 인물 중 하나였다.

선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소개되면서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졌고,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 15국에 31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었다는 교단 선교부의 보고(436호, 1981년 12월 12일자) 소식과 총회 직영 선교훈련원이 설립된다(482호, 1982년 11월 27일자)는 반가운 소식도 잇달아 들려왔다.

10 총회회관 건립 추진

‘센터 건립에 전 교회의 참여를’(23호, 1973년 3월 31일자) ‘노회마다 총회센터 건립위 조직’ (380호 1980년 10월 11일자) ‘총회센터 기공예배-강남구 삼성동 현장서’(424호, 1981년 9월 12일자) ‘총회회관 건축 공사 순조’(469호 1982년 8월 21일자) 등.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