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릴레이] 우리 시대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17)산정현교회
[희망 릴레이] 우리 시대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17)산정현교회
  • 박용미 기자
  • 승인 2015.01.26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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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현교회는 ‘뜰’ 사역으로 대표되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섬김으로 농어촌 돕기, 해외선교, 지역복지 등 다채로운 사역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진은 라오스 폰싸앗 학교에 세워진 산정현 샘물.

‘즐거운 헌신’이 열방 섬김 이끌어 간다
뿌리 깊은 순교신앙 전통 바탕, 농어촌교회 살리기 진력 … ‘삶의 현장서 영향력’ 감동 공유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는 그 귀중한 역사만큼이나 풍성한 사역으로 교계에 모범이 되고 있는 교회다.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 받아 ‘행동하는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며, 교회 건물 안에서 보다 삶 속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를 꿈꾼다. 각종 선교와 섬김 사역으로 교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 내막에는 자원함을 통한 봉사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성도들의 헌신이 있다.

주기철 목사로부터 시작된 신앙의 모태

산정현교회를 지금까지 지탱하게 한 중심에는 신앙 선배들의 순교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6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4번째로 분립한 산정현교회는 1936년 부임한 주기철 목사를 필두로 신앙의 뿌리를 지켜나갔다. 주 목사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와 궁성요배 등을 거부하다가 다섯 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으며, 옥중에서 순교해 현재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산정현교회의 상징이다. 주기철 목사 외에도 산정현교회는 민족의 지도자 조만식 장로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등 보석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을 배출했다.

산정현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교회를 옮겼다가, 환도에 맞추어 회현동과 후암동을 거쳐 현재 위치인 서초동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부산에 산정현교회가 남아 있으며, 통합 측 산정현교회도 회기동에서 사역하고 있다. 산정현교회는 신앙의 선배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선조들에게 당당한 후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농어촌에 부교역자를 파송하는 마음으로

산정현교회 하면 첫번째로 이렇게 고난에도 굴하지 않았던 순수한 신앙이, 그 다음으로 ‘농어촌교회 사랑’이 떠오를 것이다. 농어촌 살리기의 대표 주자인 산정현교회는 섬김의 기쁨을 아는 성도들의 헌신으로 무너진 한국교회를 보수해 나가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산정현교회가 농어촌교회 사역에 적극 나선 계기는 김관선 목사의 목회철학에서 비롯됐다. 교육전도사 시절, 섬기는 교회의 성경학교가 끝나면 남은 도구들과 간식을 챙겨 농어촌교회를 방문했던 마음이 담임목사가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김 목사는 “남은 간식에도 기뻐하고 작은 교재에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여주던 농촌 교회 아이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그 감동을 교인들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제2호 형제교회인 동부의령교회 헌당예배.

여러 농어촌교회들을 돕다가, 김 목사는 선교사를 농어촌에 파송한다는 생각으로 한 지역과 꾸준히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제1호 형제교회인 전북 진안 배넘실교회(이춘식 목사)다. 2007년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형제교회가 된 배넘실교회를 위해 산정현교회는 재정적인 지원에서부터 농활, 지역잔치, 농산물 직거래, 찬양대 파송, 서울 초청 등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했다. 꾸준한 노력은 단순히 교회를 부흥시킨 것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를 변화시켰다. 주민들은 농산물의 판로가 트이면서 표정부터 달라졌고, 마을은 이제 지역을 이끄는 문화 단지로 성장했으며, 이춘식 목사는 2013년 농촌마을 발전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여세를 몰아 작년에는 경남 의령에 위치한 동부의령교회(류순규 목사)를 제2호 형제교회로 지정해 노인복지목회를 정착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매년 농어촌 목회자 부부를 초청해 위로여행을 가는 것도 벌써 6년째다. 김관선 목사는 “교회가 건물이 아닌 사람, 우리의 부흥이 아닌 한국교회의 부흥을 먼저 생각하면 이 일은 어렵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섬김의 원동력은 삶으로 드리는 예배

산정현교회가 이런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는 데에는 성도들의 헌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농어촌 사역에서부터 해외 선교 사역, 노숙자 사역과 지역을 위한 장학사역까지도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나선다. 해야 하는 사역에 재정이 끊어진 적이 없고, 사람이 없어 가지 못한 적이 없다. 김관선 목사는 “작년 한해 다른 헌금은 줄었어도 지역복지나 선교사역을 위한 헌금은 재작년 대비 700~800%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서초구라는 다소 부유한 지역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성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산정현교회는 섬김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은 주일 봉사도 마찬가지다. 2008년부터 ‘뜰’이라는 구역을 만들어 한 성도 당 뜰에 관련된 한 가지 사역만 하도록 만들었다. 주보봉사 뜰, 카페봉사 뜰, 기도 뜰 등 소속된 뜰 안에서 섬김과 구역예배, 교제가 다 이루어진다. 예배도 주일예배 말고는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삶에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한다. 주일예배로 힘을 얻고 삶의 현장에서 목숨을 걸어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그것이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로 이어졌다.

▲ 새가족 뜰 모임 모습.

때문에 산정현교회는 주일예배에 교회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다. 김관선 목사는 미리 5주치의 설교문을 준비해놓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틈날 때마다 고치고, 새로 쓴다. 토요일에는 주일에 교회 카페에서 팔 빵을 만들 밀가루를 반죽하는 등 섬김의 본을 보인다. 주일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거나 주말에 놀러 다녀오는 성도들을 위해 5부 저녁 예배도 신설했다. 주일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도전하며, 담임목사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통해 섬김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김관선 목사는 “주일에 바쁘고 교회 일 열심히 한다고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들어도 그 중 한 가지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데, 그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산정현교회는 ‘교인들이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목표로 사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일예배에서 은혜 받아 행복하고, 교회생활에 매몰되지 않아 행복한 산정현교회 성도들은 오늘도 받은 사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더 큰 행복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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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교회 세워나가겠다”
성도의 기도에 감사 … ‘제2 청빙’ 자세로 보답

 

 

인터뷰/ 김관선 목사

작년 한 해는 김관선 목사에 대해 무성한 소문들이 돌았던 해였다. 광주 모교회 청빙과 관련, 간다 안 간다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광주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는 김 목사는 현재 분명히 산정현교회에 남아있고, 이제는 절대 떠날 수도 없다며 웃었다.

2014년은 김관선 목사가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지 19년이 되는 해였다. 1년만 더 사역하면 원로목사 자격이 갖춰지는데다, 은퇴 후 준비까지 끝낸 상황이었다. 그런데 더 큰 교회도 아닌, 어려운 교회로 옮겨가겠다니 모든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산정현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안주하고 있지는 않나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았고, 서울이 아닌 더 힘든 곳에 가는 것이 주님 뜻이라면 언제든지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더 큰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어려운 교회를 살리는 일에 나선다면 교계에 신선한 도전을 줄 수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김 목사의 뜻과 상관없이 광주에서는 공동의회가 열려 김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의했고, 김 목사는 떠밀리듯 후임목사 청빙위원회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번번이 후임목사 청빙은 실패했고 산정현교회 내부에서도 김 목사를 보낼 수 없다는 비상당회까지 열리면서 김 목사는 산정현교회에 남기로 결심했다.

“아직까지도 내가 안 간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가, 나의 욕심으로 남은 것은 아닌가 불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떠난다고 할 때 울어주고, 가지 못하게 끝까지 붙잡은 산정현교회 성도들을 위해 더 헌신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부임 2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새롭게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주기철 목사를 팔며 목회했지만 주 목사처럼 산 적이 없었다”고 겸손한 고백을 하는 김관선 목사는 앞으로도 제2의 주기철 목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압적인 신사참배에 대한 거부로 성도와 목사들이 자존심을 지켰는데, 지금은 돈과 권력 앞에서 자발적인 신사참배를 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며 초기 한국교회의 순결한 모습을 지켜가는 교회를 세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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