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영환 교수(총신대학교)

설 자리 잃은 신, 인간이 대체하다
 

 

모더니즘의 근저에는 신으로부터 자유가 깔려있다. 모더니즘의 이러한 세속화 경향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가속화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치는 자유, 평등, 박애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존엄성을 이야기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것이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빵떼옹(Panthéon)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빵떼옹은 ‘모든 신들이 거하는 사원’를 의미하는 라틴어 ‘Pantheon’에서 나온 말이다. 빵떼옹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생뜨 주느비에브를 기념하기 위해 루이15세가 건립한 교회였다. 50년간 강력한 절대왕권을 행사한 루이14세와 달리 어린 나이에 즉위한 루이15세는 반 왕권 세력들의 부상과 얀세니즘 그리고 신흥 부르주아의 등장으로 인해 왕권의 약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1754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카르나티크 지역을 영국에게 양도한 사건, 영국과 프로이센동맹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동맹간에 벌어진 7년 전쟁의 결과 캐나다, 세네갈, 미국 등 거의 모든 식민지를 영국에게 빼앗긴 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루이15세의 통치력에 회의를 품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루이15세가 채택한 정책이 이미지를 통한 통치력의 강화였다. 생뜨 주느비에브성당 설립도 이미지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느비에브는 파리의 수호신으로 불렸다. 루이15는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딴 생뜨 주느비에브 교회를 건축함으로써, 그녀의 이미지 위에 자신의 이미지를 덧입히고자 한 것이다.

건축 담당자였던 수플로는 로마의 ‘판테온’을 모방해 교회를 건축한다. 수플로가 생뜨 주느비에브 성당을 설계할 때 로마의 판테온신전을 모방한 이유가 무엇일까?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르네상스-계몽주의로 이루어지는 시대적 흐름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속에서 자신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성은 고대로의 복귀라는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등장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18세기의 지배적 사상이었던 계몽주의는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예술적 욕구를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욕구는 가장 합리적이고 규칙적이며 원리에 충실하다고 평가 받는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수플로는 고전주의 건축의 미학적 효과를 고딕건축의 양식과 결합하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채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혁명의 주체 세력들은 이곳을 교회가 아닌 혁명가를 기리는 무덤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들은 과거 르네상스시대에 군주들이 문화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던 것처럼, 자신들도 문화를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빵떼옹은 이들의 의도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생뜨 주느비에브성당은 루이15세의 왕권강화 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혁명세력은 이 성당을 대체할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들은 이 건물이 로마의 판테온신전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대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것은 혁명세력의 일원으로 국민의회 일원이었던 빌레트 후작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빌레트는 지방의 한 작은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던 자신의 친구 볼테르의 유해를 생뜨 주느비에브 성당에 옮겨야 된다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수많은 자유의 금언을 우리에게 전수해준 그리스와 로마의 후예가 되고 유럽의 모범이 되고자 한다면, 이 성당을 종교적 성인의 공간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빵떼옹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성당이 우리의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성당의 지하가 그들의 유해를 간직하길 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랑스의 빵떼옹’ 과 ‘위대한 인물’이라는 표현이다. 이 두 개념은 프랑스혁명 당시 주도세력들에 의해서 전면에 내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혁명 당시 사용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빵떼옹’ 과 ‘위대한 인물’이라는 표현을 부각시켰을까? 아마도 그것에 대한 근거는 ‘프랑스의 빵떼옹’이라는 빌레트 후작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인물들의 유해를 생뜨 주느비에브 성당에 안치함으로써 프랑스의 빵떼옹이 되고자 하였다.

혁명의 주도 세력들은 이곳에 볼테르, 루소 등과 같은 계몽주의자들의 유해를 묻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위대한 인물의 유해를 안치하고 그 이름을 ‘빵떼옹(신들이 거하는 곳)’이라고 명명한 것은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체한다는 18세기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더니즘의 세속화 혹은 신으로부터 자유라고 하는 특성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생뜨 주느비에브 성당이 빵떼옹으로 바뀌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르네상스로 시작해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모더니즘이라는 사상적인 체계로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시대에 와서 신(God)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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