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영환 교수(총신대학교)

‘인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모더니즘의 토대가 되는 르네상스운동은 중세의 사고와는 궁극적으로 다른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변화였다. 이 시기에 와서 사람들은 인간을 자연 혹은 우주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였던 중세와 달리,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특별히 이 시기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부분적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수용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것은 라파엘의 ‘아테네학당’에 잘 나타나는데, 이 시기 사상적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 벽화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 둘을 묘사하면서 의도적으로 서로 대칭되게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나이가 든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보다 약간 앞에 서 있는 성숙한 모습으로 그렸다. 무엇인가 서로 이야기하는 듯이 묘사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오른쪽과 왼쪽의 얼굴을 보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대칭이 또 하나 있다. 플라톤은 손가락 하나를 위로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이들의 손가락이 각각 위와 아래를 향한 것은 형상과 질료에 대한 각각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은 후에 르네상스시기에 인간이해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보편에서 개체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던 플라톤적 세계관과 달리, 르네상스시기의 예술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개체의 의미를 찾고 각각의 개별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이 시기의 화가들이 이전에 강조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세계와 개인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사실에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개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그들로 하여금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영감을 얻게 하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안젤로 폴리찌아노 탄생에 대한 신화를 바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보티첼리는 조개껍질을 타고 바다에서 솟아나 바람의 신에 의해 해안에 도착한 비너스와, 이러한 그녀를 계절의 여신 님프가 외투를 가지고 맞이하는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그림을 조금 자세히 보면 비너스의 목이 부자연스럽게 길다는 것과 왼쪽 어깨가 너무 가파르게 처져있으며, 팔도 부자연스럽게 몸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포즈는 불가능할 정도로 보인다. 또한 바람이 부는 방향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라는 면에서는 조금 뒤떨어져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보티첼리에게 있어서 그 이전의 작품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비례, 대칭, 원근, 정확한 묘사 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집트 그림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사물의 이상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인간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그리스-로마의 부흥을 꾀하고자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중세의 인간이해를 거부하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던 화가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대표적인 스케치 가운데 하나인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인간의 이상화를 찾기 위한 시도였다. 비트루비우스는 로마의 건축가로서 고대 건축물들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이오니아, 코린트식 기둥과 엔타블러처의 올바른 치수와 비례에 관한 그의 책은 그 이후의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 다빈치가 이 스케치를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비트루비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올바른 비례와 치수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스케치한 이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다빈치 보다 20세 아래였던 미켈란젤로 역시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근육과 힘줄의 움직임을 가지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품을 연구하고 가장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특별히 그가 1520년부터 23년까지 포로를 주제로, 가운데 인간이 자신을 바위에서 떼어내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인간을 구속하는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케 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르네상스는 과거 그리스 문화를 통해서 인간의 재발견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만물이 형상과 질료의 혼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속에서 중세를 지배하던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인 토대를 발견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서 볼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미래를 기다리는 르네상스의 인간상은 18세기 계몽주의를 지나 과학의 발달, 산업혁명, 진화론 그리고 헤겔의 철학과 같은 것들로 인하여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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