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빛’ 상처 입은 백성의 영혼 치유하다
민주화운동 과정서 마음 보듬어…지역교계 협력 탄탄, 사랑 나눔에도 앞장

 

 

양림동에서 쏟아져 나온 긴 행렬은 광주천이 아래로 흐르는 다리를 지나 금남로로 향한다. 촛불을 든 손길마다 은총 가득한 불빛들이 반짝인다. 행진이 멈추는 거리에서는 그 작은 불빛들이 빛고을을 환하게 밝혀줄 커다란 성탄트리의 조명으로 부풀어 오른다.

해마다 광주지역 성탄절연합예배가 열릴 때면 반복하여 재현되는 이 풍경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양림동은 그 옛날 선교사들이 복음의 등불을 들고 찾아갔던 가난하고 한적한 동네, 하지만 이제는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곳간이 되어 5·18의 아픔이 서린 옛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새로운 빛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사실 5·18은 지역교회들이 하나로 뭉치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광주 땅에서 저지른 참혹한 사건을 목도하며, 교회들은 교단과 교파,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상처 입은 시민들의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지기 위해 한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광주광역시기독교교단협의회(이하 광교협)이다.

광교협은 광주 시내 1500여 교회, 40만 성도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형식적으로는 29개 교단 40여 노회·지방회의 연합체로서 오랫동안 목회자 중심의 모임으로 운영됐지만, 최근에는 교회 선교단체 평신도기관까지 참여하는 거대 그룹으로 변신했다. 대표회장 맹연환 목사(문흥제일교회)는 광교협이 화해자, 사랑의 메신저 역할에 앞장서왔다고 말한다.

“아픔을 간직한 도시가 아닙니까? 정치적 색깔이 남달리 뚜렷하고, 사람들의 성향도 강한 편이죠. 그래서 저희들은 이 고장에 부드러움을 불어넣으려 합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 사회계층 간의 벽을 허무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역이 매년 성탄절을 즈음해 진행하는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이다. 광주광역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공동으로 전개하는 이 운동을 통해 광교협은 수많은 이웃들에게 따스한 겨울을 선물한다.

각 행정구별로 조직된 협의회를 통해서도 사랑 나눔은 또 다른 형태로 펼쳐진다. 특히 북구교단협의회(회장:홍용희 목사)가 8년째 이어온 ‘사랑의 쌀 나누기 1004운동’은 유명 브랜드가 되다시피 했다. 연말이 될 무렵 관내 교회들이 힘을 모아 쌀 1004포를 마련하고, 이를 지역사회 소외계층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을 통해 교회의 위상은 대단히 높아졌다.

중앙아시아 쪽에서 건너온 고려인들을 향해서도 교회들은 따뜻한 품을 내밀고 있다. 몇 년 사이 1500여명에서 3000여명으로 크게 증가한 고려인들을 위해 광산구에 ‘고려인마을’을 조성하여 지원하고, 어린 세대들을 위한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며, 시 차원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일에 지역 목회자들과 선교단체 사역자들이 큰 힘을 보탰다.
 

지난해에는 화해자로서 광주지역 교회들이 거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열매가 있었다. 바로 광주민중항쟁을 추모하는 연합예배와 기념음악회가 당시 피해자 및 유족들 그리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광교협 주최로 처음 열린 것이다.

오랫동안 5·18 추모 교계행사는 예장통합과 기장 등 진보적 성향의 교단들 중심의 광주NCC가 주도해왔다. 하지만 명실 공히 광주 교계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이 추모행사에도 발 벗고 나서면서, 교회는 시민들과의 거리를 한층 더 좁힐 수 있게 되었다.

사무총장 문희성 목사(광주 한빛교회)는 “약한 자들, 억눌린 자들을 돌보고 함께 하는 일은 과거 광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로부터 이어온 교회들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면서 “이 사실을 되새기고 간직하기 위해 역사를 보존·계승하는 작업에도 힘쓰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목회자들과 기독 역사학자, 문화사역자들이 참여하는 문화수도특별위원회(위원장:방철호 목사)는 옛 선교사들의 활동기지이자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로 각광 받는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을 발전시키고, 기독교적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에 애쓰고 있다.

특히 양림동을 무대로 박애와 헌신의 삶을 살다간 엘리자베스 쉐핑(한국명 서서평) 선교사에 대한 조명이 몇 년 사이 집중적으로 펼쳐지고, 문화선교단체들을 통해 연극 무용 회화 뮤지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화가 이루어진 것은 퍽 의미 있는 성과이다. 앞으로 이장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고인의 생애를 영화화하는 작업에도 광주교계는 적극 협력할 방침이다.

▲ 광주선교의 대표적 인물인 서서평 선교사를 소재로 제작한 무용극의 한 장면.

또한 올 9월 구 전남도청 자리에 문을 열게 될 아시아문화전당을 통해서 기독교문화와 연계된 사업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역사발굴과 보존을 위한 활동은 광주기독교유적지기념회(상임회장:맹인환 목사)를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다. 기념회는 광주지역 최초의 교회로 알려진 삼도교회의 보존과 조명작업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광주기독교역사기념관 건립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2015년은 이처럼 빛고을 기독인들의 왕성한 움직임을 전국은 물론 세계 앞에 내놓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바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축제인 하계유니버시아드가 금년 7월 광주에서 개막하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도 그랬듯이 광주교계는 이번에도 똘똘 뭉쳐 열방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고, 기독교문화의 아름다움을 선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빛고을에 임한 거룩한 빛은 이제 온 세상을 향해 쏟아져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신앙 정체성 사수, 흔들림 없다
 

▲ 광주지역 목회자와 성도들이 눈보라 속에서 신천지와 동성애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화해를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해서 광주의 교회들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복음과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에 대해서는 양보 없이 투쟁하는 것이 광주 교계의 기백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광주시청 앞에서는 목회자들이 선봉에 서고, 성도들이 뒤를 따르는 시위대가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 때로는 눈보라가 쏟아지는 중에도 아랑곳 않고 ‘신천지 아웃’과 ‘동성애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쳤다.

광교협 이단대책위원장을 맡아 신천지 광주시온교회의 대규모 증축사업 허가 반대운동을 이끌고 있는 남종성 목사(순복음송정교회)는 “이단 세력의 확산을 막아내는 것이 현재 광주 교계가 감당해야할 가장 큰 사명 중 하나”라면서 “이 사역에 가장 열심히 동참해주는 예장합동 소속 교회들에 감사드린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장합동 측 교회들은 이 시위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광주지역 8개 노회의 노회장들과 광주전남협의회의 적극적인 뒷받침 속에서 시위 참여, 서명운동 등의 확산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단 척결만이 이들의 화두는 아니다. 교황방문을 계기로 개신교 신앙의 근간이 흔들릴 위기에 처해있을 때도, ‘동성애 합법화’ 논란이 제기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인권헌장 제정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을 때도 광주지역 교회들은 어느 지역보다 앞서서 투쟁의 대오를 형성하고, 전국적으로 열기를 퍼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감당해왔다.

광주겨자씨교회 나학수 목사는 “신앙의 변질을 허용하는 순간, 광주 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면서 “절대 포용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바른 목소리를 내는 일이 세상의 빛 된 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유니버시아드를 선교 기회로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7월 3일부터 14일까지 광주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광주·전남 일원에서 열린다.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에 이어 12년만의 한국개최이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격년으로 개최하는 이 대회는 28회째를 맞은 올해 ‘창조의 빛, 미래의 빛’이라는 주제 아래, 스포츠 문화 교육의 제전으로 꾸며진다.

특히 21개 종목에 걸쳐 치러질 스포츠 경기는 ‘대학생들의 올림픽’이라는 명성답게,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관심을 광주에 집중시킬 것이다. 또한 170개국에서 선수단과 운영진을 포함한 2만 여명이 대회에 참여하여 지구촌 전체의 축제로 펼쳐질 예정이다.
 

▲ 광주유니버시아드의 마스코트인 ‘누리비’.

광주교계는 금번 대회를 선교와 봉사의 기회로 삼고자 벌써부터 많은 준비를 시작했다. 광주광역시(시장:윤장현) 및 대회조직위원회와의 교섭을 통해 선수촌 내 기독교관 개설, 각국 방문자들을 위해 교회 시설을 숙소로 개방하는 처치스테이 운영이 일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 편으로는 기독청년·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선수단 및 관람객들을 섬기는 봉사활동을 펼치며, 거리축제를 마련해 세계의 젊은이들을 위한 축제의 장을 만들어주려 한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광주지구 이종석 목사는 “선수촌 안팎에서 안내 통역 청소 등 자원봉사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3000여명의 기독청년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단을 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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