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심장이 기억하는 아픔

▲ “마지막 한 사람까지 돌아오라.” 팽목항을 찾은 교계 단체 관계자들과 성도들이 지금도 세월호에 남겨진 9명의 실종자 귀환을 기도하며 현수막에 소망을 적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은 ‘세월호 침몰 참사’의 한 해였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이 참사는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 사회와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세월호 아픔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은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바다에서 자식을 건져낸 엄마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다. 2014년을 보내며 잊을 수 없는 그들을 팽목항과 안산에서 만났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만나 ‘세월호 이후’를 들었다. 안산에서 유가족 상담을 펼치고 있는 이명수 대표(치유공간 이웃)는 교회가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위한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발탁된 박종운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만이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말한다. “교회가 유가족의 아픔을 나누고 끝까지 함께 할 때,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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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으셔서…감사합니다”
아침이 가장 힘든 팽목항에 오늘도 실종자 가족 위로의 발길 이어져
 

팽목항은 흑백사진 같았다. 찬란했던 빛을 잃고 탈색하는 흑백사진처럼 그렇게 보였다. 영하 10도의 추위와 함께 몰아치는 바람이 더욱 팽목항을 어둡게 만들었다. 바다색과 하늘빛 역시 검었다. 그 검은 바다에 지금도 단원고등학교 양승건 고창석 선생님과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허다윤 학생, 그리고 일반인 실종자 권재근 권혁규 부자와 이영숙 씨가 있다. 양승건 선생님 부인 유백형 씨, 동생 권재근과 조카 혁규를 기다리는 권오복 씨 등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매일 남편 얼굴을 보며 32년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남편이 올 것 같습니다.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남편이 없구나, 나 혼자구나 생각합니다. 팽목항은 아침이 가장 힘듭니다.”

유백형 씨의 말에 40여 명의 성도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른 아침 서울과 대전에서 발길을 재촉한 성도들은 지금도 남편과 조카를 기다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팽목항을 찾았다. 기윤실 새벽이슬 평화누리 IVF 목회사회학연구소 등 교계 단체들은 해마다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을 찾아 성탄예배를 드리고 있다. 올해 그들은 12월 20일 팽목항 실종자 가족을 찾았다.

6시간을 달려 팽목항에 도착한 성도들은 짧은 성탄예배를 드리고, 실종자 가족의 억눌린 마음을 들어주고, 모든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에 돌아오길 바라는 현수막을 팽목항에 걸었다. 조성돈 교수는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평화는 바다 속의 세월호가 인양되고 진실은 밝혀져야 가능합니다.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이영숙 씨와 권오복 씨를 위로했다.

 

권오복 씨는 식당 한편에 빼곡이 적힌 칠판을 가리켰다. 칠판은 실종자 가족을 잊지 않고 계속 편지와 물품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름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김장김치 귤 가래떡 된장 꿀 한우곰탕 고추장 된장 참기름 라면 등 식료품부터, 목도리 귀마개 머그컵 구급약품 믹서기, 심지어 호남신학대학교 학생들이 보낸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실종가 가족을 생각하며 보낸 온갖 물품이 적혀 있었다.

권오복 씨는 “정부는 11월 중순 이후 지원을 딱 끊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전국에서 이런 음식과 물품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우리 실종자 가족에게는 큰 힘을 줍니다. 택배 박스 주소까지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둡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날 팽목항을 찾은 대학생 박에녹 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도보순례를 하고 광화문 단식현장도 여러번 방문했다. 하지만 학업 때문에 팽목항에 처음 왔다고 미안해했다. “정부는 실종자도 포기하고 세월호 인양도 안해준다고 하고… 이 사건이 이렇게 묻히면 안됩니다. 세월호와 가족을 잃은 이 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팽목항에서 남편과 동생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 그들을 격려하며 힘을 보태는 방법이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가족식당’ 이곳으로 마음과 정성을 보내면 된다.

진도 팽목항=박민균 기자 min@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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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사회건설 대책 수립, 감시의 눈길 멈추면 안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박종운 변호사… “지금부터가 중요”
 

 

2015년 1월 1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가동된다. 세월호 참사 발생 9개월 만에,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지 두 달 만이다.

지난 4월 16일,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를 살릴 수 있는 첫 번째 골든타임을 놓쳤다. 아울러 한국 사회 전체에 뿌리박힌 안전 불감증과 규제 완화로 점철된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보았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골든타임이 시작된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건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시점이다.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304명의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박종운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를 만났다. 박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직후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특위 대변인과 현장대응지원단장 등으로 활약했고, 세월호 특별법 초안을 작성한 장본인이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대한변협 추천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총 17명으로 구성되며, 세월호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 진상규명 소위원회, 재난재해 예방과 대응책을 마련하는 안전사회 소위원회, 피해자 지원대책을 점검하는 지원 소위원회를 둔다. 앞으로 최장 1년 9개월까지 운영된다.

그런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여당추천 위원들이 진상규명에 반하는 인물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부위원장과 사무처장을 겸하는 여당추천 상임위원에 조대환 변호사(법무법인 하우림)가 선정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박 변호사의 생각은 어떨까.

“부위원장이 겸하는 사무처장은 사무처 직원관리와 재정에 관한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위원회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조대환 변호사에 대해 말이 많지만 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에서 신뢰한다. 법의 기본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특별조사위원회 조각은 끝마쳤지만 아직 할 일이 산더미다. 120여명에 달하는 사무직원을 파견이나 공채를 통해 모집해야 하고, 별도의 사무공간도 필요하다. 불과 10여일 남았다. 때문에 제반사항을 연내에 마무리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가동될지 미지수다. 또한 특조위에 주어진 시간 1년 9개월. 길다고 생각하면 길지만, 위원 간의 대결양상으로 흐를 경우 허송세월을 보낼 우려도 있다.

“세월호 관련 범죄조사는 법원에서 맡고 있고, 이미 밝혀진 사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일방적인 방해나 공작이 심해지면 곤란하다. 세월호 참사만큼은 당리당략을 빼고, 진실과 원인을 알아내고 대책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박 변호사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 1년 9개월 중 보고서를 작성하는 마지막 3개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상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국민의 의식을 바꾸는 전환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대형 참사가 벌어져도 진상보고서 하나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안전한 사회건설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여부도 매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안이다. 다행히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제대로만 된다면 대한민국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박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져올 두 번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한국 교회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교회가 특별조사위원회의 감시자가 되어 철저한 진상규명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관심이 컸지만 이제부터 관심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감시의 눈길을 멈추면 안된다. 진실이 규명되고 재난재해 대응방안이 나오고 실현하는 과정까지 한국 교회가 감시자 겸 조력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박종운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교회개혁운동에 몸담았다. 처음에는 온갖 얼룩을 보며 한국 교회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농어촌 다문화 장애인 이주민 사역지에서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을 보며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유가족과 아픔을 나누고, 끝까지 함께할 때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교회가 희망이 될 때,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작이 도래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다.”

송상원 기자 knox@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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