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현 선교사(청년 설교가·주청 프로젝트 대표)
양적인 승부에 혈안이 된 한국 교회의 모습은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성도=돈’이라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교회는 좀 달랐으면 좋겠는데 사회와 똑같아서 불안감을 느낀 양들은 쉴만한 물가를 찾아 산길을 방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천지와 같은 이단에게서 쉬기도 한다.
얼마 전 변태스러운 이단, 일명 ‘홍무당’이 12월 14일 한국 전쟁이 날 것이라는 말을 들먹이면서 개신교가 우스운 신세가 되었다. 국민들은 홍무당을 개신교 전체의 모습으로 치부했다. 문제는 이 이슈를 덮을 만한 거룩한 이슈가 개신교 내부에 없다는 것이다. 집안싸움을 하느라 예루살렘에 모여 있으니, 사마리아 땅 끝에는 한국 교회의 발자국이 없다. 단지 길 잃은 양들이 사마리아 땅 끝을 서성일 뿐이다.
또 어쩐 일인지 교회가 화합을 드러내지 못한다. 필자는 소년원에서 설교하는 선교사로 일하며 한국대중음악계에서 음반 제작자로 살고 있다. 내가 만나는 소년원 아이들과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교회는 더 이상 화합의 아이콘이 아니다. 내 시선 또한 그렇고 이 글을 읽고 있는 혹자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내부에서나 외부인에게나 동일하게 교회는 이제 낱낱이 흩어져 보인다. 수많은 내부 대립이 대중들에게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노출되고 있다. 균형미 없이 배만 볼록한 모양새가 꼴불견이다. 타국과 전쟁이 터졌는데, 전쟁 중인 나라 내부에서도 내전이 터진 꼴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3일 만에 한강철교가 폭파됐다. 북한군이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진격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미처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시민들은 서울에 남게 되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남겨진 서울 시민들은 살기 위해 공산주의를 환영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은 시민을 버린 국가에게 있는가, 아니면 공산주의를 환영한 시민에게 있는가. 비슷한 예로 교회분쟁, 목회자성문제 등으로 교인이 교회를 떠난다면, 교인이 문제인가, 아니면 교회가 문제인가.
‘땅콩 회항’이 뜨거운 감자다. 사과만 제대로 했어도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텐데, 보여주기식 사과에 국민들은 독이 올라 화를 멈출 줄 모른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사과가 없어 국민들이 한국 교회를 향해 날선 시선을 보낸다. 나는 한국 교회가 ‘사과성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스스로 신이 되려했음을 세상 앞에 고백해야 한다. 먼저 필자가 여러 신학교 회장단과 교회 청년부 임원단과 연합하여 사과성명을 진행할 계획이다.
선교는 자장격지(自將擊之)다. 즉 선교는 장수가 솔선하는 전투다. 붓을 든 청년들은 사과의 그림으로 그릴 것이고 음악을 하는 청년들은 마이크 앞에서 과오를 사과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지 않았으면서 여러분께 예수님을 강요했습니다. 이제 주님 말씀하신대로 살고 싶습니다”라며.
필자의 외조모님은 부처를 모신다. 젊은 시절 한 교회에서 헌금으로 사기 당한 사건 때문이다. 그 사기꾼이 나의 외조모님께 깊은 사과를 했다면, 그래서 외조모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셨다면 얼마 전 마주한 외조모님의 쇠약이 내게 이토록 초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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