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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집] 성탄문화 바로세우기
초대교회·한국선교 초기 “성탄은 마라나타”
정령숭배로 물든 크리스마스 문화 경계 … 십자가 복음 다시 새겨야



“네 이놈!”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금의 성탄절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인데 언제부터인가 산타클로스가 주인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동방박사가 화려한 조명을 받고 밝게 빛나는 성탄트리가 이목을 끌지만, 정작 구유 안에 누우신 예수님은 온데 간데 없군요. 캐럴은 어느 때보다 신명나지만, 그 안에 복음은 없습니다.
“에이~ 그건 세상 사람들 이야기잖아.”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안을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다들 성탄 준비로 분주하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지, 복음은 담겨 있는지….
 
   
▲ 1910년 YMCA 성경교실의 성탄절 풍경.

초대 교회 “성탄이 뭐요?”

성탄을 앞두고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탄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한국 선교 초기에는 성탄절 행사가 있었나?”

이런 궁금증으로 기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 자료를 뒤지고,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옛날에는 성탄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이교도적인 성탄문화를 단호히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순간 기획을 접을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2월 한 달 내내 성탄이 아닌 X-mas에 정신줄을 놓고 있지 않나”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달리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성탄은 무엇일까?”
 
   
▲ 1894년 발행된 <찬양가>에 실린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예수님 당시나 초대 교회에는 성탄절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스승의 생일상을 차렸다는 기록도 없고, 사도시대에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성경이 이미 증명하고 있고요.

오히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고난과 다시 오심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습니다. 예배 때마다 성찬을 나누며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고난,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마라나타’ 즉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라고 끝 인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생일‘날’보다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종말론적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성탄문화 = 이교도의 정령숭배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정한 것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라고 합니다. (이 주장도 학자들마다 다릅니다.) 이후 중세 교회는 이교도가 교회에 유입되면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신화, 즉 유울(Yule)과 태양숭배 사상과 성탄절을 연관시켰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오심보다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축제로 탈바꿈하게 됐죠.

문제는 이러한 미신적인 요소가 지금도 교회 안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성탄절이 되면 교회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구를 달고, 종을 매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트리는 애굽의 동지제 나무장식 또는 로마의 성목 숭배사상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고대 유럽인들의 나무 숭배사상이 그대로 남아 크리스마스 트리로 접목되었다고 말합니다.

어찌되었건 크리스마스 트리는 정령 숭배사상이 뿌리입니다. 그러니 성탄의 기분을 만끽하겠다고 섣불리 트리에 전구를 달 생각하지 마세요.

중세 교회가 미신적 크리스마스 축제를 벌였다면,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신적 행위를 비판하며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초대 교회의 순수성을 잘 간직했다고 봅니다.
 
   
▲ 퇴색된 성탄문화를 엿볼 수 있는 1934년 12월 9일자 <조선일보>.

한국 교회 “변질이 더 쉬웠어요”

그렇다면 한국 선교 초기에는 어떠했을까요? 외국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 성도들과 성탄절을 기념한 것은 1887년입니다. 선교사 언더우드는 세례 받은 한국인 성도들과 함께 12월 25일 성탄일에 자신의 집에서 성례를 했습니다.

즉 초기 선교사들도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축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례를 통해 예수님의 성육신을 강조하고, 십자가 사건과 다시 오심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교사님들의 신앙과 정신이 참 순수했다고 봅니다.

이처럼 한국 선교 초기에 선교사님들은 성탄절에 그리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본국에 있는 친지들과 편지나 선물을 주고 받는 정도가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890년대 후반부터 크리스마스가 의미 있는 날로 변했습니다. 관심은 한국인이 더 컸습니다. 이들은 외국에서 물 건너 온 코쟁이들의 특별한 날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많은 이들이 교회로 ‘구경’을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은 그것을 역이용해 예수님을 전하고 기독교의 문화를 알리는 날로 활용했다고 하네요. 이처럼 성탄절은 초기 한국 교회에서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만나는 연결 통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변화는 어렵지만 변질은 쉬운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19세기 말 계몽운동에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시대가 열리면서 유럽과 미국은 더 이상 성(聖)탄이 아니라 장사치의 축제가 되어버렸습니다.
 
   
▲ <찬양가> 겉표지.
성탄절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의지를 보였던 한국도 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 1934년 12월 9일자를 보면 ‘귀여운 크리스마스 인형’이라는 제목과 함께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1938년 12월 25일자에는 ‘오늘이 크리쓰마쓰’라는 제목과 함께 산타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장식합니다.

당시 윤치호 선생님은 일기에서 퇴색해져 가는 성탄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윤치호 일기> 1933년 12월 24일 일요일.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게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가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곗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다시 마라나타를 외치자”

성탄특집을 취재하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입니다. 인간은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낸 성탄문화도 변질되기 쉽죠.

독자들께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성탄절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 안에 십자가가 있습니까? 복음이 있습니까?

퇴색해 가는 성탄 시즌에 외쳐 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정형권 기자  hkjung@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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