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천 목사 (내수동교회 원로)

인류 구원하니 하나님께 영광
화목하게 하시니 땅에는 평화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3~14)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하면서 찬송하였다.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 중에는 평화가 되었다. 어떠한 뜻에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나님께 영광

▲ 박희천 목사
내수동교회 원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본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다(겔 33:11). 그러므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까지 원하시는 분이시다(딤전 2:4). 그래서 심지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까지 하였다(딛 2:11).

그러시다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고(눅 15:7)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는데(눅 15:9),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고(눅 5:32), 회개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완전히 구원하러(눅 19:10) 오셨으므로 전 인류를 다 구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도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를 다 구원하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이 되겠는가. 그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
 
땅에는 평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는 원수였는데 원수도 보통 원수가 아니라 아예 마음으로 원수였다(골 1:21). 왜? 하나님 편에서 사람들을 보실 때 사람들은 지은 죄 때문에 심판할 수 밖에 없는 심판의 대상자들이요, 사람들 편에서 하나님을 볼 때에는 나를 심판하실 심판자이시니 서로 원수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분의 육체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셨다(골 1:22). 화목케 하시되 우선 그동안 민족적으로 원수였던 이방인과 유대인을 화복시키시고(엡 2:15) 그 다음에는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시키셨다(엡 2:16).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기까지 하셨다(골 1:22). 그러니 땅에는 평화가 아닌가.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700년 전에 장차 오실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다(사 9:6).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 평화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하면서 예수님 나시던 밤에 찬송하던 천군 천사와 더불어 감사의 합창을 불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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