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교회와 스바여왕의 유적

▲ 지붕 보수 공사 중인 법궤보관소.

여전히 진한 고대 기독문화유산의 향기
“어서 와요” 에티오피아가 손짓하고 있다

해발 3000m 거대한 바위 뚫고 만든 ‘천사의 창조물’ 11개 암굴교회 ‘웅장’
‘성스러운 도시’ 악숨엔 스바 여왕 찬연한 흔적·거대한 오벨리스크 곳곳에


북동쪽으로 진로를 돌렸다. 4일째 본격적인 기독교유적 탐방이 시작됐다. 고산도시의 매력을 한껏 선사했던 곤다르를 뒤로하고, 에티오피아의 중세와 고대 수도로 발길을 옮겼다. 에티오피아 기독교성지로 꼽히는 랄리벨라와 악숨이 다음 행선지다. 북으로 향할수록, 시간을 거슬러 올라 적도의 나라가 지닌 옛 영광과 마주한 셈이다. 그곳에서 제2의 예루살렘과 스바여왕의 자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를 건너 교회를 넘어 교회로 가다.

비행은 짧았다. 30분 만에 자그왕조의 300년 도읍 랄리벨라에 안착했다. 공항에서 차로 40분 이동해 중심가로 진입하는 길. 인근 북부의 고산도시 곤다르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작은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옛 수도라기에 초라했다. 마을은 낙후한 모습이 역력했고, 도로는 비포장과 반포장을 넘나들었다.

▲ 메드하네알렘교회 전경.

하지만 이곳은 언제나 여행객이 넘쳐난다. 에티오피아 일정 중 가장 많은 여행객과 조우한 장소도 여기 랄리벨라다. 땅 밑에서 솟아있는 신비로운 중세교회들이 이방인의 발길을 당겼다.
후손들에게 위대한 관광유산을 선물한 이는 12~13세기 자그왕조의 전성기를 구가한 랄리벨라왕이다. 지명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2세기, 랄리벨라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한 뒤 제2의 예루살렘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당시 위세를 떨쳤던 이슬람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무슬림의 공격에도 안전하고 화재 위험도 없는 교회를 짓기로 한다. 이것이 랄리벨라의 자랑 암굴교회의 탄생기이다. 일각에서는 천사의 계시를 받아 암굴교회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해발 3000m에 거대한 붉은색 응회암을 11m 깊이로 굴을 파서 만든 11개의 교회.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 그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알 길이 없다. 유네스코가 ‘천사의 창조물’이라 칭송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윽고 첫 번째 교회 앞에 섰다. 메드하네알렘교회. 규모 가장 큰 교회이자 11개 교회의 관문으로 통한다. 세로 33m 가로 22m 높이 11m이고 32개의 각진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내부는 각각 7개 기둥으로 이뤄진 4개의 열주가 있고 천장은 반원통 모양이다. 악숨의 건축양식을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 북쪽 그룹 교회들은 모두 메드하네알렘교회와 연결돼 있다. 터널을 통해 마리암교회로 건너갔다.

▲ 랄리벨라 최고의 건축물 성 기오르기스교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마리암교회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사제와 순례자들에게 사랑받는 교회다. 랄리벨라왕도 이 교회를 가장 먼저 건축했다고 한다. 격조 높은 프레스코화와 조각으로 장식됐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묘를 복제한 유물도 있다. 그 명성답게 주일을 맞아 방문한 수백 명의 에티오피아 대학생들로 붐볐다.

바로 옆 메스켈교회는 7평 남짓의 아담한 교회다. 마치 한국의 개척교회 같은. 암소의 가죽에 그린 성화가 둘러싸고 있고 교회 안쪽에 아직도 은둔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여성의 출입을 금한 골고다미카엘교회와 여성을 위해 만든 데가겔교회 등 랄리벨라 암굴교회들은 저마다의 크기 모양 용도로 건축됐음을 알 수 있었다.

동쪽 그룹에서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다양한 테마를 간직한 가브리엘라파엘교회는 오랜 걸음으로 지친 일행에게 잔재미를 안겨줬다. 교회 앞 계곡과 계단을 요단강과 천국 가는 길로 꾸몄고, 어둠속에서 지옥을 체험할 수 있는 코스도 마련돼 있다.

▲ 마리암교회에서 만난 에티오피아 대학생들.

이어 번듯한 외형을 뽐내던 임마누엘교회와 예수의 생애를 그린 벽화가 보관돼 있는 메르쿠리오스교회, 3가지 이름이 있는 베들레헴교회를 방문했다. 그리고 10번째 아바리바노스교회까지 지나면 긴 걸음을 보답이라도 하듯 대망의 11번째 성 기오르기스교회가 등장한다. 건물 꼭대기에 조각된 3겹 십자가가 종착지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위풍당당한 성 기오르기스교회는 가장 늦은 시기에 건축한 탓에 랄리벨라 11개의 암굴교회 중 가장 우수한 건축물로 통하고 보존상태도 좋다. 천혜의 요새마냥 돌산을 깊게 파내 반듯하게 올린 이 교회의 형상은 노아의 방주에서 착안했다. 위장용 가짜 창문과 아라랏산 상징물, 비둘기 그림 등이 이를 대변한다.

랄리벨라 최고의 건축물 앞에서 여행객들은 한사코 적당한 사진촬영 시간을 할애한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온 이방인에게도 유독 친근감을 주는 교회다. 랄리벨라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사진마다 성 기오르기스교회가 등장한 덕분이 아닐까.

이렇듯 교회를 건너 교회를 넘어 제2의 예루살렘을 만났다. 성 기오르기스교회를 제외하고 연대순으로 보면, 교회는 점점 작아졌고 화려한 장식도 무뎌져갔다. 교회가 왕조의 흥망성세를 바로 보여주는 셈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영향력이 서서히 축소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천년 가까이 살아낸 랄리벨라 11개 교회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없었다. 방문 당시 유네스코가 다수의 교회에서 천정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다만 성 기오르기스교회는 건재했다. 하지만 공사 진척 속도로 보아, 빨리 방문하지 않으면 랄리벨라 대표교회의 본모습마저 아주 오랜 후에야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기록 없는 역사

▲ 하늘 높이 뻗은 오벨리스크.

랄리벨라에서 수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4000년 전 태동한 고대제국으로 향했다. 에티오피아 문명의 요람이자 성스러운 도시 악숨이다. 악숨은 3000년 역사를 지닌 악숨제국의 중추였으며 3~6세기까지 제국의 수도였다. 따라서 악숨은 오벨리스크와 성채 등 다양한 유적으로 가득했다.

 악숨 시가지 중심부에 수십 개의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오벨리스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다양한 굵기와 높이의 오벨리스크 사이에 네 동강난 채 무너진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 33m 무게 520톤이나 되는 이 돌기둥 비석은 스바여왕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나 누구의 묘인지 왜 무너졌는지 알 수가 없다. 생존한 다른 오벨리스크도 마찬가지다. 10단으로 웅장하게 솟아있건만 무덤의 주인은 세상에 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곧이어 스바여왕의 유적을 찾아 나섰다. 먼저 스바여왕의 목욕탕. 가이드는 분명 목욕탕이라고 소개했으나, 믿기 힘들었다. 차라리 수영장이라면 믿을 만 했다. 이틀 전 본 곤다르왕조의 목욕탕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길이 100m 폭 30m 깊이 12m. 목욕탕이든 수영장이든 축구장 크기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을 여기에서 수영을 즐겼고 식수원으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여전히 스바여왕의 은덕을 입고 있는 셈이다.

▲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만든 땅굴.

비포장도로를 굽이굽이 올라 도착한 곳은 스바여왕의 땅굴. 마차 2대가 지나갈 수 있는 이 땅굴은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으로 가기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 옆으로 크리스천이었던 칼렙왕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무덤에는 신앙심을 반영하듯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유적들은 농부가 발견했다고 한다.

스바여왕의 마지막 유적은 궁터, 둔구르이다. 오밀조밀하게 이어진 54개의 방과 화덕이 남아있는 부엌, 샤워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궁전 내 배수시설과 설계구조가 뛰어났던 것으로 추정되나, 제국 여왕의 궁터라기에 크기나 넓이가 초라했다. 알고 보니 고고학자들은 이 궁터의 건축연대를 스바여왕이 살던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 1500년 뒤인 7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본 스바여왕의 목욕탕도 연구 결과, 기원전 10세기보다 훨씬 뒤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악숨을 두고 성스러운 도시라고 칭하는 까닭은 모세의 십계명이 담긴 석판 원본의 궤, 즉 법궤가 보관돼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솔로몬과 스바여왕의 아들 메넬리크 1세가 법궤의 안전을 위해 악숨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 메드하네알렘교회를 지키는 사제.

현재 두 개의 성모 마리아 시온교회 사이에 법궤보관소가 있다. 관심을 끈 것은 그곳을 지키는 법궤지기이다. 정교회 사제 중 법궤지기를 발탁하는데, 일단 법궤보관소로 들어가면 평생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직분이 아들에게 세습된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뒤따랐다. 간간히 법궤보관소 주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법궤지기를 보며 의문을 품는다. “아들은 어떻게 낳았을까?”

악숨 일정을 끝마친 후 유일하게 실망이 앞섰다. 랄리벨라와 더불어 기대감이 컸던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 “추정된다”는 말로 일관한 가이드의 설명이 거슬렸다. 기록은 곧 역사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전설에 불과하다. 악숨이 그랬다. 농부들이 유적을 발견한 경우가 부기지수였고, 실록조차 없어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30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악숨은 고작 5% 정도만 개발됐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과거의 제국 악숨은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아이러니한 땅이 아닐 수 없다.

굿바이 에티오피아

▲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어르신들.

다시 찾은 아디스아바바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기념관을 찾아 헌화를 하고 마지막 행선지로 참전용사의 집을 방문했다. 좁은 골목 사이에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참전용사들에게 남겨진 삶의 터전이었다. 혈혈단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나 공산당이 에티오피아를 지배하면서 직업도 잃고 힘겹게 살아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환대를 베풀었다. 전통 커피 세레모니와 갖가지 음식으로 동맹국의 손님을 반겼다. 한국전쟁 참전 증서를 내보이는 주민이 있는가하면 어르신의 한국전쟁 경험담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언제나 마지막은 왜 이렇게 슬픈 걸까. 거듭 인사를 나누며 작별을 고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7일간의 여정을 떠올린다. 드넓은 타라호수, 영광과 상처를 지닌 곤다르성, 기독교문화의 번성을 짐작케 한 랄리벨라의 교회들, 아직 보여줄 것이 남은 악숨제국 유적지. 하나같이 가슴에 품었다. 아울러 아프리카다운 광활한 스케일, 진한 커피향, 그리고 정 많고 살가운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절친 에티오피아에게 나지막이 건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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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주2회 직항, 가까워진 에티오피아

16시간에 걸친 비행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편안하게 다녀온 이유는 인천공항에 주 2회 에티오피아행 직항 노선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지난해 6월 아프리카 항공사 최초로 인천-아디스아바바 직항 노선을 취항했다. 단 홍콩을 경유한다. 비행시간도 홍콩 경유시간 2시간은 빼면 14시간이다. 게다가 최고급 항공기 보잉 787 드림라이너로 운항 중이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에티오피아 국영 항공사로 1946년 첫 취항 이래 아프리카 대표 항공사로 성장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아프리카의 관문인 만큼, 아프리카 항공사 중 가장 높은 점유율과 최상의 서비스를 자랑한다.

아울러 에피오피아항공이 설립한 여행사 에티오피안 홀리데이즈는 여행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에티오피안 홀리데이즈는 에티오피아 전역을 비롯해 케냐와 탄자니아의 사파리 패키지와 세이셀 공화국 여행 패키지를 제공한다.
문의: 에티오피아항공(02-733-0325), 에티오피안 홀리데이즈(02-724-7199)

▲ 스바여왕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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