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영환 교수(총신대학교)

성경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이 토대
 

 

‘기독교 인문학’이 가능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의문은 부분적으로는 인문학(humanities)과 인본주의(humanism)를 혼동한데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더니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본주의는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해서 계몽주의에 와서 확립된 하나의 사상 체계로서 인간의 자율성에 강조점을 둔다. 물론 18세기 이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전통을 따라 인본주의적인 인문학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계몽주의적인 휴머니즘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르네상스 운동 시기의 인문주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종교개혁이전에 개혁사상의 토대를 형성했던 사람들이 르네상스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인문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요소들 가운데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오해는 아마도 르네상스 운동이 두 갈래로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본다.

옥스퍼드 사전을 보면 ‘인문주의’라는 말은 “신(God)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보다는 인간에게 최고의 중요성을 부과하는 합리적인 체계”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나님과 어떤 연관성이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반종교적인 사상 혹은 운동으로 보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적어도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인문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다르게 인식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인문주의(humanism)라는 용어는 그리스와 라틴의 고전문학에 강조점을 둔 교육의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엔 사용하지 않았다. 르네상스시기에 이탈리아에서 ‘umanista’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이 말은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을 가르치는 대학의 교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는 인문주의를 해석하는 두 개의 중요한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인문주의를 고전학문과 언어학에 몰두한 운동으로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르네상스의 새로운 철학으로 보는 견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양자의 견해가 심각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라틴어 ‘ad fotes’, 즉 “원래의 자료들로 돌아가자(go back to the original sources)”는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는 문학적 혹은 문화적 프로그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으로 돌아가자’ 핵심 슬로건

당시 중세가 처한 패러다임을 해결하기 위해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은 모더니즘을 형성했던 주체들이나 종교개혁운동의 토대가 되었던 인문주의자들에게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들은 중세의 패러다임으로는 중세가 직면한 한계들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보고, 그것을 극복할 대안을 고전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모더니즘의 주체들에게는 그리스-로마 문화였고, 종교개혁의 토대가 되었던 북부 유럽의 인문주의자들은 성경을 의미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개혁가들은 중세의 전통이나 교회의 해석이 아닌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을 외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고전의 본문은 고대의 경험을 후세에 전달해 주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것은 본문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에 의해서 비로소 획득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르네상스 사상가들에 의해서 발달된 언어학적, 문학적 방법들은 고대의 생명력을 포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중세에 의해서 왜곡된 메마른 복음이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기 시작하였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루는 것이다. 인문학은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그 앞에 인본주의 혹은 세속주의를 붙이면 인본주의적인 인문학이나 세속적 인문학이 될 수 있고, 기독교를 붙이면 기독교적 인문학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인문학이란 반틸이 말한 바와 같이 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에 관한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통해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설명하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 “인문학의 답은 하나님께 있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는 반드시 인간이 직면한 문제들을 정확히 파고들어갈 수 있는 날카로움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세속적 인문학이 다루는 문학, 역사, 철학, 예술 그리고 종교와 같은 분야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을 토대로 그들이 찾고자 하는 문제들에 대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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